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는 지난 대선에 대해 “핵심 지지층 결속과 잠재적 지지층 신뢰 회복이라는 선거 목표를 달성했다”며 “대선 투쟁을 통해 당과 이정희 전 후보가 정치적으로 부활했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15일 대선평가 토론회에서도 동일한 맥락의 평가가 기조를 이루었다고 한다. 대선패배는 노무현 유산이 드리워진 민주통합당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통합진보당 외에 어느 누구도 이런 평가에 동감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민주통합당과의 연대와 단일후보에 목매왔던 당이 대선 패배 후에 이런 평가를 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민주통합당과의 연대가 잘못된 대선 전략이었고, 그 책임은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이 져야하는 것이다. 사실 민주통합당은 통합진보당에 거리를 두고 후보단일화를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통합진보당 후보가 자진해서 단일후보를 위해 사퇴하지 않았던가?

정말 가관인 것은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전 후보가 대선을 통해 정치적으로 부활했다는 평가다. 대선 기간 내내 1% 남짓한 지지율로 대중들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은 이정희 전 후보와 이 당이 어떻게 이런 바닥 지지율을 가지고 핵심 지지층을 결속하고 잠재적 지지층의 신뢰를 회복했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통합진보당 외에 누구도 알고 있는 것처럼, 1% 지지율은 작년 총선 이후 이 당의 비례대표 경선부정을 둘러싼 정파투쟁과 내분 그리고 분당으로 이어진 막장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절대적인 불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집중적으로 언론의 톱뉴스를 장식한 이 사건에 대해 당시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는 초지일관 경선부정은 없다며 자신들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오로지 당권파에 대한 음모, 공안당국의 표적수사, 그리고 언론의 왜곡과 선동 탓으로 돌렸다. 부정경선의 의혹을 받았던 이석기, 김재연 당선자의 사퇴요구도 막무가내로 끝까지 거부하였다.

   
이정희 의원
 

주지하다시피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부정 사건은 이미 대선 전에 검찰 수사가 일단락되었다. 검찰은 이 건으로 467명을 기소하였고, 그중 비례대표 후보자 3명도 포함하여 20명을 구속 기소하였다. 그럼에도 이 당은 아무 일도 없던 양 어떤 정치적 책임도 끌어내지 않았고, 결국 이 사안을 그냥 뭉개버렸다.

이 당이 집단적인 곡해와 편견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석화된 당임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명색이 진보정당이라면서도 부르주아 정당만도 못한 이런 행태에 대해 대중들의 혐오와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고, 지난 대선은 대중들의 이와 같은 정서 위에서 치러진 것이었다. 오죽하면 한 표가 아쉬운 민주통합당조차 이 당과의 단일화를 기피하였을까?

이정희 전 후보는 막장정치의 공식적 중심에 있었고, 또한 작년 총선 때 관악을 경선 여론조작 문제로 후보사퇴 경력도 있어 대중들에게는 부정과 비리, 독선과 패권의 상징이었다. 퇴출대상인 이런 인물을 이 당의 대선후보로 내세운 것은 대선 지지를 호소하는 게 아니라 대중의 정서와 싸우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전 후보가 대선기간 중 어떻게 예리한 비판과 합당한 논박을 들이대었다 하더라도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반감과 역효과만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대중들에게 이 전 후보는 정작 자신에 가해지는 합당한 비판에 대해서는 독선과 권력으로 묵살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물이 준동할수록 진보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도 가중될 수밖에 없다.

   
김재연, 이석기 의원
©연합뉴스
 

대선이 끝난 후 이른바 진보개혁진영은 사실 망연자실한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 5년의 실정과 참상이라는 유망한(?) 조건 속에서 치러진 선거에서, 그것도 야권 단일화를 하고도 패배한 충격 탓이다. 할 수 있는 카드를 다 썼는데도 실패했으니 새로운 좌표를 찾는 게 쉬울 리가 없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 그리고 두 명의 노동자 후보가 받은 참담한 성적표를 바라보는 진보정치는 더 더욱 그러하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진보정치의 재구성, 이를 통한 진보정치의 재활성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진보정치가 어떤 활로를 모색하든 현재를 짓누르는 과거의 오류에 대한 자기비판과 청산 없이 새로운 시작은 가능하지 않다. 또한 대중들에게 통합진보당이 진보정치의 대표자로서 각인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당의 문제를 정리하는 것 없이 새로운 미래가 열리지도 않는다.

   
김성구·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소장
 

이런 점에서 이정희, 이석기, 김재연의 퇴출은 진보정치의 미래의 시금석이고, 대중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불가결한 조건이다. 이들의 퇴출 없이 진보정치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 달로 예정된 통합진보당 당 대표 선거에서 이정희 전 대표가 추대될 것이라는 암울한 소문이 나돌고 있다. 정말로 이정희 전 후보가 다시 대표 자리를 차지한다면, 그건 아마도 막장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도권 정당으로서 통합진보당은 사실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 상태다. 다음 총선까지 3년 여 정도의 시한부 생명을 부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 당이 우리나라 진보정치의 재건을 가로막는 질곡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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