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미국 오리건 주에서 새로운 거미 종류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한국 언론 대부분은 보도를 하지 않았고 몇몇 언론에서만 기사가 나왔다.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1년에 다섯 번 갈까말까 하는 네이버 메인을 지나다, 뉴스캐스트 과학/IT 항목에 톱기사 중 하나로 떠 있어서 보게 되었다. 매체는 <매일경제신문>의 종편 방송인 MBN, 제목은 '미국서 '육식'하는 새 거미과 발견'이었다.

제목을 눌러 들어가 봤더니 다음과 같은 모양이 나타났다(광고 검은칠은 내가 했으며, 아래도 마찬가지다).

   
 
 
쪽광고 끼고 달랑 일곱 줄이다. 광고가 없었다면 더 적었을 것이다.

분량이 문제가 아니다. 이 기사는 과학 기사다. 그러나 튀는 제목으로 독자를 이끌고 나서도, 과학적 궁금증이나 호기심을 거의 풀어주지 않는다. 본문은 거미를 발견한 곳과 임시로 붙인 이름을 제외하면, 제목에다 각종 조사와 어미를 붙여 문장으로 늘인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러고도 자기네 매체를 대표하여 네이버에 톱뉴스로 내보냈다.

같은 내용을 보도한 외국 언론을 찾아봤다. 수많은 매체에서 해당 뉴스를 보도했다. AP 기사를 전재한 한 미국 신문의 모양은 다음과 같다.

   
 
 
방송 기사를 신문하고 비교하는 것은 불공정한가? 방송사 기사는 다음과 같다.

   
 
 
웹브라우저(크롬) 화면을 모두 똑같이 67%로 하여 갈무리한 그림들이다.

내가 찾아본 미국 신문 중에서 한국 기사와 비슷한 분량으로 내보낸 경우가 있긴 있었다. 다음과 같다.

   
 
 
그래도 한국 기사보다 양이 많고 내용이 풍부하지만, 그나마 비교적 간략한 기사다. <워싱턴포스트> 기사인데, 기사 맨 위에 다음과 같은 표지가 붙어 있다.

   
 
 
말하자면 이 기사는 어린이들을 위한 기사다.

이렇게 '아동용 기사'보다도 못한 초라한 꼴을 보이는 한국 기사의 양상은, 해당 외신을 받아 다른 매체에 뿌린 연합뉴스 기사에서부터 시작된다. 위에 사례로 보인 외국 기사에 달린 페이스북 '좋아요'는 70~280개 정도다. 한국 기사의 '좋아요'는 MBN, 연합뉴스, 아래에 보일 <서울신문> 등에서 모조리 0이다.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본다.

관련 기사의 제목을 좀 보자. 연합뉴스는 이 기사에 '미국서 '육식'하는 새 거미과 발견'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따라서 위의 MBN을 비롯해 <서울신문>, <국민일보> 등 연합뉴스의 기사를 전재한 한국 매체는 모두 그같은 제목을 달았다. <코리아헤럴드>는 '육식 거미' 발견! 치명적인 발톱으로 공격'이라고 했다.

제목들을 보면 '육식하는 거미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핵심인 것처럼 되어 있다. 이런 제목은 모두 원래 외신 기사의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제목들이다. 영문 기사 제목은 대부분 '새로운 과가 발견되었다'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위에서 이미지로 보인 기사를 예로 들면,

오리건 주 동굴에서 새로운 과의 거미 발견
오리건 주 동굴에서 발톱을 지닌 새로운 과의 거미 발견
오리건 주에서 '동굴의 포식자' 거미 발견
등과 같은 식으로, 새로운 종이 발견되었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지막 제목의 '동굴의 포식자'는 육식을 해서가 아니라 날카로운 발톱 때문에 학자들이 그렇게 부른다는 말이 기사에 있다. ('아동용'이라는 점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한국 기사는 모두 '육식' 운운 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AP 기사를 바탕으로 하여 영한 대조 기사를 실은 <코리아헤럴드>를 보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영문 기사의 제목은 '미국 동굴에서 새로운 거미과 발견(New spider family found in U.S. caves)'이라고 되어 있는데, 바로 밑의 한글 제목은 ''육식 거미' 발견! 치명적인 발톱으로 공격'이라고 엉뚱하게 붙였다.

한국 기사의 '육식 거미 발견' 운운은 이렇게 기사의 초점에서 어긋났을 뿐만 아니라, 과학적 상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들이다. 거미는 원래 거의 모두가 육식 동물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4만 종의 거미 중에서 풀을 먹고 사는 것은 Bagheera kiplingi 단 한 종이다. 새로 발견된 거미가 초식임이 밝혀졌다면 놀라운 뉴스로서 '미국서 '초식'하는 새 거미과 발견' 등의 제목을 붙일 수 있겠지만, '육식 거미' 따위는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런 제목은 말하자면 '이명박, 청와대에서 생존한 채 발견!' 같은 농담과 흡사하다. 그저 독자의 관심을 끌고 보자는 낚시질 관행이 한국 언론을 거대하고도 유치한 농담판으로 몰아가고 있다.

영문 기사를 통해 독자가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다.

1. 이 거미는 동굴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된 뒤 전문 학자들이 오래 연구한 끝에 신종으로 분류한 것이다. 즉 프로-아마 과학자들이 협업한 결과로 나온 성과.
2. 미국 서부에서 거미를 가장 많이 수집하고 있는 전문 연구소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California Academy of Sciences)'이다.
3. 세계에서는 대략 20년마다 한 번씩 새로운 거미의 과가 발견되며, 북미에서는 1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4. 새 거미를 제대로 검증 분류하기 위해 해부학과 DNA 조사 방법이 활용되었다.
5. 거미를 연구하는 곤충학자에게 이번 발견은, 고생물학자가 새로운 종류의 공룡을 발견한 것만큼의 의미가 있다.
6. 새 거미는 원시 거미 형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거미의 초기 진화와 관련한 현존 지식을 크게 바꿀 가능성이 있다.
7. 동굴은 외부와 격리되고 변화가 적은 생태 시스템이어서 진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환경을 제공한다.
8. 새로 발견된 거미의 이름은 2010년에 과학자들을 이끌고 동굴 탐험에 나섰던 지방 경찰(보안관 대리)의 이름을 땄다.
9. 학자들이 연구실에 인공 동굴 환경을 갖추어 주었으나, 거미는 잡힌 이래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있다가 죽었다.
10. 이 거미가 발견된 이래 학자들이 현장 조사를 나가서, 같은 과에 속하지만 종이 다른 또다른 거미들을 발견했다.
이런 흥미로운 사실들이 한국 기사에는 모조리 빠져버린 것이다. 이것은 이러한 발견이 벌어진 곳이 미국이라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 반대쪽에서 벌어지는 입자 가속기와 관련한 뉴스에서 보듯, 과학 영역은 뉴스 보도에서 지리적 제한을 비교적 덜 받는 분야다. 자기 땅에서 벌어지는 것만 다루어서는 과학 기사라는 게 나올 여지가 별로 없다. 이 점은 <과학동아>의 최근호 주요 기사를 슬쩍 훑어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이 짤막한 기사를 놓고 내가 가장 아쉽게 느끼는 점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런 보도로 인해 한국인과 외국인이 갖게 되는 정보량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런 느낌은, 외국 학생이 플라톤과 칸트를 읽는 시간에 한국 학생은 영문법을 공부하고 있다는 개탄스러운 상황을 보며 갖는 느낌과 비슷하다.

또 다른 아쉬움은, 기사의 소재로 볼 때 독자 누군가에게 흥미롭고도 교육적인 기사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꿈을 키워주는 기사가 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위의 거미 기사를 보고 석주명이나 김주필의 꿈을 키우는 사람이 나오지 말란 법 없다. 어릴 때 읽은 감동적인 신문 기사 몇몇을 지금도 기억하는 나는, 기사도 훌륭한 사회 교과서, 과학 참고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저 독자를 잡아끄는 낚시질이나 하는 풍토에서는 그런 기사가 나올 수가 없을 것이다.

과거에 인쇄 매체에 글을 쓰는 사람이 가장 바랐던 것은, 자기가 쓴 기사가 독자에게 전달되어 읽히고 독자의 손에 든 가위에 의해 오려져 스크랩이 되는 일이라고 했다. 지금은 긁어서 저장하면 되니까 스크랩할 일은 없지만, 그러다 보니 스크랩될 만한 기사를 만드는 일도 지레 포기하는 언론판이 되어 가는 게 아닌가 싶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미디어오늘에 게재합니다. 원문 출처는 http://deulpul.net/3878494)
(제목을 "'충격,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에서 생존한 채로 발견' 이게 기삽니까"에서 수정합니다. 9월15일 오후 4시5분.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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