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침입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편지를 쓰고 있는 오늘은 몇몇 언론들이 보도했듯이 ‘세계 자살예방의 날’입니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자살예방협회가 2003년에 제정했지요.

기실 자살은 오래전부터 문학과 철학의 주제였습니다. 앨버트 까뮈는 “참으로 위대한 철학의 문제는 하나밖에 없다”며 그것은 자살이라고 말했습니다. 주인공의 자살로 막을 내리는 프랑스 영화를 먹먹한 가슴으로 누구나 보았을 터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자살은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윤똑똑이들이 훈수하듯이 ‘급격한 가치관의 변화’ 때문도 아닙니다. 8년 째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자살자들의 숫자는 새삼 소름이 끼칠 만큼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습니다. 2위와의 격차도 무장 벌어지고 있지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오늘 아침에도 한국의 자살자들 사이에 ‘베르테르의 효과’가 증명됐다는 보도가 있더군요. 그런 자살자도 없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냉철하게 자살자들의 통계를 읽어야 할 때입니다.  

대통령과 씁쓸한 ‘자살률 1위’의 관계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통계청 자료를 짚어보죠. 1987년 6월대항쟁이 일어난 그해 한국의 자살자 수는 10만 명당 8.2명이었습니다. ‘세계 1위’와는 거리가 멀었지요. 6월항쟁 이후 6공화국이 들어선 첫해인 1988년 자살자 수는 7.3명(이하 모두 10만 명당)으로 줄어들었습니다. 한 해에 0.9명이 줄어든 것은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닙니다. 어떨까요.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제 민주주의가 시작됐다는 기대도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노태우 정부의 마지막 해(1992)에 자살자는 8.3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어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지요. 첫해인 1993년에 9.4명으로 늘어납니다. 그의 임기 마지막 해인 1997년을 볼까요? 13.0명입니다. 자살자들이 이미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지요. 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1998년에는 18.4명으로 껑충 뜁니다. 김영삼 정권 말기에 터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사태가 큰 몫을 했겠지요. 1999년에는 14.9명으로 줄어듭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복지정책을 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면 속단입니다. 2000년엔 13.5명, 2001년에 14.4명으로 늘어 마지막 해엔 17.9명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22.6명이었고 임기 마지막 해인 2007년에는 24.8명이 됩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그 숫자는 더 가파르게 치솟습니다. 첫 해인 2008년 26.0명에서 이듬해 곧장 30명을 넘습니다. 마지막 통계는 2010년, 31.2명입니다.

김형. 저는 이 통계들을 눈시울 슴벅이며 적고 있습니다.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울뚝밸을 꼭꼭 누르고 있습니다. 10만 명당 자살자 수치만 보면 상황의 심각성을 자칫 놓칠 수 있습니다. 실제 자살한 사람들을 짚어볼까요. 가장 최근 통계인 2010년 자살한 사람은 1만5566명입니다. 김형과 제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서 하루 평균 42.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습니다. 단연 ‘세계 1위’이고 부동의 ‘선두’입니다.

자살률이 가파르게 상승한 시기의 대통령들을 적어봅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저 대통령들은 자살하는 사람들, 그 국민들에게 누구였을까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대통령들은 한결같이 국민을 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보통사람의 시대,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국민성공시대를 각각 부르댔지요.

물론,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다만 객관적인 통계가 한 가지 평가 기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살률이 그것이지요. 1만5566명의 자살자 수. 그 숫자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애틋한 삶과 슬픔, 고통과 노여움이 깃들어 있습니다.

대통령 공약조차 검증 못하는 언론

더러는 ‘세계적 흐름’ 탓이라고 두남두거나 변명하겠지요. 신자유주의 세계정세에서 어쩔 수 없었는데 객관적 조건을 무시한 채 너무 과도하게 비난한다고 눈 흘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먹물들에게 명토박아 들려주고 싶습니다. 김영삼과 이명박은 물론, 김대중-노무현이 집권했던 시기에도 부익부빈익빈이 크게 줄어든 나라들이, 자살률이 현저히 떨어진 나라들이 지구촌에 엄연히 있습니다. 어떤 정치를 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김형. 가을과 더불어 대통령 선거일도 두 자리 숫자로 바투 다가왔습니다. 저 대통령들을 이어갈 대통령은 누구일까요? 대한민국의 차기 대통령은 어떤 정책으로 가파른 자살률을 줄일 수 있을까요? 저마다 경제 살리기와 경제 민주화를 내걸고 있는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후보는 누구일까요? 자살한 국민들이 온 삶으로 아니 죽음으로 적어놓은 핏빛 ‘채점표’ 앞에 옷깃을 여미며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이 나라의 언론은 대통령들의 공약을 검증하고 감시하지 못한 책임을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요?

(건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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