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발전해오면서, 조금만 예전 사회 제도를 되돌아봐도 도대체 왜 그 당시에는 그렇게 우둔한 방식을 고집했을까 의아해질 때가 있다. 사회통합에 크게 방해되는 인종차별 같은 것부터, 그저 특정 개인들의 몰취향을 사회 전체로 확장한 장발단속 같은 것까지 말이다. 그런 부류 가운데 이제 하나로 새롭게 추가된 것이 바로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다.

인터넷 실명제는 인터넷을 사용할 때 실명을 확인해야 한다는 상위 개념으로, 실제로는 제한적 본인확인제, 선거법상 실명제, 도메인 네임 실명제, 게임 실명제 등 여러 구체적 제도만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적절한 통신장비만 갖추면 누구나 자유롭게 어디로나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기술 기반에 접속자의 실명 추적이라는 행정적 통제의 층위를 씌우도록 강제한다는 공통된 작동 방식을 지니기에 인터넷 실명제로 통칭하곤 한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8월 23일 판결을 통하여, 인터넷 실명제 가운데 하나인 제한적 본인확인제에 대해 전원일치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미 많은 이들이 황당한 정책이었다고 뚜렷한 논리를 세워왔던 바에 대해, 제도를 구체적으로 막을 수 있는 힘을 지닌 ‘판례’라는 근거까지 생긴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약간 뒤돌아보며, 질문할 때다. 도대체 어째서 인터넷 실명제라는 딱히 공익 효과도 없고, 표현의 자유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정책 패키지가 지금껏 가능했는가. 그냥 시민의 입을 틀어막고 싶은 나쁜 놈들이 지배를 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좀 더 섬세한 맥락이 있는가. 만약 후자라면, 인터넷 실명제가 변형된 형태로 부활하거나 아예 더욱 황당한 규제책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1. 태초부터 실명제는 매력적 카드였다

온라인에 실명제라는 족쇄를 씌우면 좋겠다는 발상은 제한적 본인확인제가 법으로서 효력을 발휘한 2007년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90년대에 PC통신이 대중화되면서, 통신명으로서의 아이디(id)가 실명이 아니기 때문에(초기에는 영문 및 글자 수 제한이라는 기술적 요인 때문이기도 했다) 발생하는 ‘익명성’을 도덕적으로 우려하는 내용은 하이텔 소식지 ‘꿈따라’ 같은 것에도 종종 칼럼의 소재가 되곤 했다. 그런 흐름 속에 98년에는 아예 PC통신과 인터넷 이용 시 반드시 실명 가입을 요구하는 ‘온라인서비스이용증진방안’이 추진되었다. 하지만 하이텔, 나우누리, 천리안 등 대형 PC통신사들은 이미 유료 아이디 방식이었기 때문에 가입 시에 주민등록번호와 확인을 했으며 동일인 중복 가입을 불허했고, 변경조차 좀처럼 할 수 없는 아이디는 익명이 아니라 필명임이 반대논리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 익명성의 폐해와 실명제의 필요성 이야기가 불거졌다. 그 바탕에는 가정용 초고속인터넷의 폭발적 보급과 그에 따른 유료 아이디가 필요 없는 웹 게시판들의 일상화가 있었다. 단적으로, 2000년 말에는 게시물에 이미지를 올려야만 하는 ‘짤방’ 문화로 웹 문서의 특징을 PC통신과 다른 매력으로 끌어올린 ‘디시인사이드’가 출범했다. 그런데 한층 다양한 정보로 풍부하게 일상으로 파고든 인터넷이기에, 00년 12월 자살사이트를 통한 촉탁 살인 사건이 지면에 오르내리거나, 인터넷에서 폭탄 제조법을 배운 고등학생 등 부정적 정보 활용 사례도 함께 부각되었다. 자살방법 공개, 원조교제 알선 등을 중심으로 인터넷 범죄를 바라보며, 2001년 1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공포, 2월에 검찰 인터넷 범죄수사센터 설치 등의 조치가 이어졌다.

이런 바람을 타고 인터넷 실명제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PC통신 하이텔처럼, 인터넷 역시 어떻게든 실명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서 범죄를 예방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람임을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던 주민등록번호 확인조차 불법 주민번호 생성기에 속을 수 있으니 아예 실명 확인이 필요하다는 상당수 인터넷업체의 논지가 언론 지면에 오르내렸다(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이에 대해 2001년 3월 홍성태의 ”인터넷 실명제는 ‘반사회적’이다” 같은 글들이 이미 2012년에 헌법재판소가 내놓은 판결과 거의 동일한 논지로 반대하고 있다. 그런데 여하튼 2001년 당시의 실명제 붐 당시에는 본격적 제도화가 거론되지 못하고 적당히 넘어갔다.

2. 더 많은 사용, 더 많은 역기능, 속 편한 해결

인터넷의 보급 속에서 이메일 보급 확대 등에 힘입은 불법 스팸 등 일상적 문제들은 더욱 확대되었다(2003년 1월 불법스팸대응센터 설립). 그리고 한쪽으로는 2002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의 과도한 학생 신상 축적 같은 정보권 문제가, 다른 쪽으로는 오마이뉴스, 서프라이즈 등 대안적 보도 및 토론 공간의 급부상으로 인한 정치적 활동 공간으로서의 파급력이 표면화되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 참여저널리즘의 본격적 발견, 2002년 11월 미군 트럭 압사 여중생 추모 촛불집회 등에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온라인의 느슨하되 광범위한 조직화 능력, 각 기관의 공식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그들에게 발언한다는 주관적 효능감 등 여러 요소가 맞물리며 크게 부각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터넷(을 통한 여론 활성화에 힘입어 당선된) 대통령으로 통칭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인터넷 공간들을 통한 정치적 논쟁 역시 양적인 증가와 함께 격렬해지는 – 즉 근거 없는 비방과 욕설이 도배되는 – 사례가 늘어나서,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조차 도배/욕설을 한 아이디는 세 번 경고 후 1주일 접속 금지하는 ‘삼진아웃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이런 양상들은 뉴미디어를 활용해야 하되 긴장관계에도 있는 기존 언론에서도 종종 선정적인 방식으로 자주 다뤄졌다.

즉 스팸 등 일상적 침해든 격론 속에 발생하는 명예훼손이든, 실제로 발생하고 부각되는 “사이버 인권침해”(당시 애용되던 용어다) 문제들에 대해 정부가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 모양새가 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옛 정보통신부 진대제 장관은 전문가들 및 폭넓은 의견 수렴을 통해 대책을 찾겠다고 천명했는데, 정작 2003년 3월에 들고온 발상은 ‘인터넷 익명성에 의한 역기능 해소연구반’ 구성이었다. 즉 드러난 역기능들의 주요 원인을 애초에 인터넷 ‘익명성’이라고 섣부른 결론을 속 시원하게 먼저 내린 다음, 그에 대한 대책을 함께 논하자고 제안했다. 기본 발상은 우선 공공기관부터 인터넷 게시판을 실명게시판으로 하고, 법제화로 민간분야 일반으로 확대한다는 것이었다.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역시 이와 비슷한 방식의 실명제에 찬성한, 실로 여야가 손에 손잡고 함께하는 현장이었다. 정부에 있어서 실명제는 대충 근본적 해결 같아 보이고 여야 합의도 쉬우며 확실히 구체적 조치였던 것이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 같은 상위 인권 원칙을 가볍게 건너뛰는 인터넷 실명제라는 접근법을 정부가 법으로 강제하고 나선다고 하니, 제정신인 시민사회라면 좀처럼 찬동하기 쉽지 않다. 2003년 4월,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본인 동의 없는 실명 확인을 남용하고 개인정보를 유출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한국신용평가정보, 정보통신부를 서울지검에 고발했다(세부 내역 참조). 격렬하고 다양한 반발 속에, 2003년 7월 정통부는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의 법제화 부분을 철회하고 공공기관 게시판에 대해서만 실명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그리고 9월에는 행정자치부도 “현재로서는 인터넷 게시판 실명제를 실시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3. 선거에 대한 우려, 또다시 실명제를 소환하다

그런데 다음 해인 2004년, 실명제는 또다시 소환되었다. 게시판 일반에 대한 실명제 통제는 여론에 밀려 한 발 뒤로 물러났지만, 인터넷 상의 정치 격론과 엉뚱한 방향으로 폭발할지 모르는 파급력에 대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4월 15일에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었고, 정치권으로서는 그 전에 묶어둘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에 한쪽으로는 2003년 12월 인터넷침해사고대응지원센터를 설립하고, 다른 쪽으로는 인터넷상에서 선거 관련 게시판 활동에 대한 규정을 본격적으로 세워놓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를 거쳐 발의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개정안에, 선거 운동 기간 중이라는 조건으로 다시금 게시판 실명제가 들어간 것이다.

얄궂게도 이것은 인터넷 정치토론들이 선거운동과 경계선이 없고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대신 훨씬 강력하게 규제 중인 타 매체공간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실명제라는 안전장치를 두는 맞교환 전략에 가까웠는데(좀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전 글 참조), 그래도 게시판 실명제라는 결과 자체의 문제 때문에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2004년 2월에 인터넷 실명제 철회를 촉구하는 인터넷 언론인·시민사회단체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고, 미디어다음은 대형 포털업체로서는 최초로 불복종선언을 했다. 나아가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선거 게시판 실명제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와 사전검열 금지, 개인정보 부당 수집 명목 등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3월 18일에는 민간단체와 인터넷 언론인, 개인들이 함께 헌법재판소에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제출했고, 이런 격렬한 반대 및 전산장비 미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시도 정국의 혼란 등과 맞물리며 결국 선거게시판 실명제는 입법은 통과되었으나 적용은 계획대로 17대 총선에서는 하지 못하고 이후로 유보되었다.

4. 사이버폭력 여론을 탔는데 선거실명제로

그런데 여전히 인터넷의 일상화는 더욱 강력해지고 있었고, 순기능도 역기능도 함께 그랬다. 나아가 대형 포털 사이트들도 언론사들도 게시판의 개인들도 각자의 방문객 모으기 경쟁구도 속에서, 선정성과 화제 몰이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지 않았다. 2005년 1월에는 소위 ‘연예인 x파일’ 유출사건이 발생하고, 2월에는 영화배우 이은주의 자살 소식에 너도나도 매달려 일부 서비스들은 장애를 일으킬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화룡점정은 6월에 발생한 소위 ‘개똥녀 사건’으로, 도덕상식을 명분으로 내걸었지만, 선을 넘어가면서 각종 개인 신상 침해로 얼룩진 린치몹으로 변모해갔다. 인터넷상 여론의 지나친 선정적 화제몰이로 문제가 된 이런 사건들이 연속되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정통부 진대제 장관은 6월 15일, 친숙한 해결방안을 다시 들고 나왔다 – 사이버폭력에는 인터넷 실명제. 문제의 양상은 수년간 훨씬 복잡해졌지만, 대처 방안은 여전했다.

그렇게 해보고 싶었던 실명제인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법을 만들고 곧바로 적용하는 속도감으로 대중적 반대여론을 키워내기보다는, 여러 사건들의 충격으로 인해 인터넷 게시판에 어떤 식으로든 규제가 필요하기는 하다는 여론이 유리하게 기울어진 이런 타이밍이기에 한층 유연한 접근을 시도했다. 바로 일반 실명제가 아닌 선거 실명제, 그것도 적용되려면 아직 한참 남은 이듬해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통과되었으나 유보해두었던 선거 실명제를 다시금 구체화, 05년 8월 4일의 선거법 개정안을 통해 인터넷 언론사 게시판 및 대화방에서는 선거운동 기간에 특정 후보자나 정당에 대한 지지 반대 글을 올리는 경우에(즉 사실상 항상) 실명 확인하도록 의무화했고, 이번에는 대중적 반대를 크게 사지 않고 슬그머니 넘어갔다.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청와대로 간… 아니, 일반 실명제도 강행하게 되었다. 2006년 1월 임수경 악플 사건 등 여전히 사건 사고는 이어졌고, 뭔가 하기는 해야 한다는 여론 역시 덕분에 유지되었다. 그런 바람 속에서 2월에 정통망법 개정안 입법 예고를 하고, 7월 한나라당이 준비한 실명제법안들과 이리저리 사이 좋게 합쳐나가고 조율한 결과, 결국 2006년 7월 정통부-열린우리당의 개정안으로 입법되었다. 이렇게 통과된 소위 ‘제한적 본인확인제’의 명목은 인터넷 익명성을 악용한 사이버 폭력 등 사이버 역기능 방지인데, 공공기관과 일일방문자 수가 30만 명 이상인 인터넷 언론, 포털 등이 적용대상이었다. 2007년 7월에 결국 실행되었고, 대통령 선거 운동이 시작되는 11월 27일부터 선거법상 실명제가 겹치며 아주 협공으로 실명제 굴레를 쓰게 되었다.

5. 저항의 희망, 제국의 역습

사건사고의 향연 와중에서 대중 여론은 흔들렸으나, 실명제에 대한 기본적 정보인권에 입각한 저항은 계속되었다. 우선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실명 확인을 거부하여 부여받은 과태료에 대해서 2008년 4월에 인터넷 언론 [민중언론 참세상]이 재판에서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다. 동시에 한 개인도 인터넷 실명제가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정부가 한층 규제를 강화할 동기가 막강한 정권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은 임기 초입인 2008년 5월부터 이미 대규모의 광우병 촛불 모임으로 인하여 홍역을 치렀다. 온라인을 매개로 한 시민저항에 대해 굳이 ‘배후 조직’을 찾아 나서고, 사이버폭력의 양상을 우려한 이들은 보수 일간지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인터넷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자 시도했다. 그렇게 해서 2008년 7월, 대통령의 최측근을 수장으로 하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인터넷 정보보호 종합대책’이라는 명목 하에 실명제의 ‘제한적 본인확인제’ 부분을 확대해 실시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듬해 4월에 결국 적용대상을 일일 사용자 30만에서 10만으로 줄여서 규제 적용 대상을 대폭 늘렸다. 물론 그 사이에도 보수일간지들이 2008년 10월 여배우 최진실의 자살 사건을 악플에 의한 사이버폭력 사건으로 몰아가는, 실로 부지런한 민폐가 이어졌다.

6.대중여론의 귀환

하지만 2009년 4월의 본인확인제 확대 실시 실행일이 되자, 이번에는 더 본격적인 저항 속에 실명제 반대에 대한 대중적 지지 또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인터넷 사용자 중 상당수가 그간 국내 동영상 사업자들만큼이나 유튜브에 익숙해졌고,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국내 포털사이트와 달리 개인정보 요구로 덜 귀찮게 하며 더 간편하게 소셜 네트워킹 기능을 즐기는 서비스들에 대한 호응 역시 계속 높아지고 있었다. 또한, 서비스 업체들 역시 그간 실명제를 실행하느라 생긴 개인정보 부담은 물론이고, 같은 시스템을 해외 사용자에게 확대하기 어려워지는 등 사업 제한 요소에 곤란해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구글이 소유했으나 개별 서비스로서는 한국 지사가 없는 동영상 서비스 유튜브가 흥미로운 방식의 저항을 했다. 실명제 적용을 거부하여, 지역설정을 한국으로 설정한 상태에서는 게시판 기능 즉 업로드나 댓글을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이 조치의 묘미는, 언어설정은 여전히 한국어로 해둘 수 있으며 지역설정을 세계로 바꾸면 여전히 모든 기능을 정상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즉 간단한 눈 가리고 아웅으로 한국식 실명제가 우회될 수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다. 공영 언론들에 대한 정권의 직간접적 탄압과 함께 맞물리며, 이로써 유튜브는 저항적 언론공간으로 새롭게 부각되었고 덤으로 실명제 사안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 역시 올라갔다. 그와 함께, 높은 트래픽에 비해 만성적 저작권 분쟁과 광고 규정 미비로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는데 심지어 실명제까지 강요당한 국내 동영상 서비스들이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이런 ‘상승세’ 속에서, 2010년 1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가 본인확인제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폐지 권고를 했고, 특히 국내 기업 역차별 논란에 대해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조차 현행 제도를 재검토하겠다고 4월에 발표했다. 그동안 2010년 4월 블로터닷넷을 필두로 언론사들이 실명제 규제를 받지 않는 외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댓글을 올리도록 하고 그것을 모아서 보여주는 ‘소셜댓글’을 통해 실명제를 우회했다. 그러자 2012년 4월에는 선관위에서 소셜댓글조차 해당 댓글들을 모아주는 메타서비스에 실명제를 강제하려는 시도를 했다. 실명제의 또 다른 축인 선거 실명제도 2010년 2월에 헌재에서 선거운동 기간의 특수성에 따른 구체적 제한 조건을 강조한 합헌 판결이 났다. 이렇듯 완전한 승승장구라기보다는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2010년 5월에는 개인 블로거들이 ‘인터넷 주인찾기’라는 이름으로 모여서 실명제를 비판하는 컨퍼런스를 개최하는가 하면, 2007년 적용 이후에도 게시판 상의 역기능적 덧글 활동이 줄어들지 않았다는 학계의 양적 연구 결과도 나왔다. 2011년 4월에는 진보넷과 미디어오늘이 또 다른 헌법소원을 통해서 표현의 자유 침해, 개인정보 위험 및 경제적 부담 등을 호소했다. 심지어 뉴욕타임즈 같은 해외 언론에서도 한국의 인터넷 실명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기사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유야무야 결정적인 제도 개편 없이 지속되던 실명제가 바뀌기 시작한 또다른 계기는 2011-12년사이에 반복적으로 일어난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사고다. 주민등록번호와 실명 등이 너무 많은 개별 서비스업체에 지나치게 많이 축적되어 있기에 사고 위험이 높아졌다는 비판 앞에, 결국 2011년 12월 29일 방통위는 “인터넷실명제를 재검토하고 인터넷에서 주민등록번호 수집과 이용을 금지하겠다”고 다시금 천명했다.

하지만 천년만년 재검토가 아니라 정말로 폐지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계기가 바로 진보넷, 미디어오늘, 참여연대 등이 함께 한 헌법소원에 대해 2012년 8월 23일 내려진 본인확인제 위헌 결정이다. 판결 요지는, 표현의 자유 제한에는 뚜렷한 공익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본인확인제 시행 이후 효과가 증명되지 못했고,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이며,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위축시키고,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외국인의 인터넷 게시판 이용을 어렵게 하며, 게시판 정보의 외부 유출 가능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즉 그간 실명제 반대 측에서 제기한 논지를 고스란히 받아들였고, 포괄적 원칙으로 적용되기에 선거실명제 역시 같은 법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열어주었다.

7. 교훈을 생각하기

이상 죽 살펴본 실명제의 맥락 속에서 간단히 알아볼 수 있는 한 가지 패턴이 있다. 바로, 실명제는 특정 정권의 정치성향이 아니라 여러 정권들 모두에게 있어서 인터넷 역기능에 대한 뚜렷한 대처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각각의 맥락은 있지만(성장 동력을 고려하는 ‘국민의 정부’, 커지고 있는 인터넷 현상에 쩔쩔매는 ‘열린 정부’, 인터넷과 싸우는 ‘이명박 정부’), 상황이 발생했을 때 문제의 원인은 익명성, 해결은 익명성의 제거였다. 실제로 존재하며 증가하는 인터넷의 역기능적 모습들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지적을 받고 있는데도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비단 집권자들의 사적 이해관계가 아니더라도, 자율정화 기능으로 잘 될 것이라고 민원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누구나 익명으로 아무 말이나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존 미디어와 인터넷의 차이라고 단순하게 도식화할 때, 인터넷을 최소한 기존 미디어만큼은 다스릴 방법으로 실명제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중적 호응도 때에 따라서는 꽤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실명제 위헌 판결에 대한 환호 너머, 이제부터 더 고민해야 할 것은 그렇다면 정부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함께 생각을 모으는 것이다. 인터넷이 또 다른 미디어가 아니라 사람들의 담론활동을 새롭게 연결하고 여러 매체 사용 환경들을 재구성하는 망이기에, 사실은 꽤 근본적인 부분까지 들어가야 한다. 토론에서의 시민성(예절, 합리성, 공공성 등), 뉴스 리터러시, 정보인권 전반에 대한 소양 등은 물론이고, 저작권과 명예훼손 등에 대한 조기교육 평생교육도 필요하다. 정보사업자들의 중개자 면책과 동시에, 선정적 대세몰이를 줄이도록 장려하는 지원/규제책도 더 세부적으로 모아야 한다. 이런 모든 것을 위해 여러 연구 프로젝트, 공모전, 민관 합작 프로젝트, 스타트업 지원들이 이뤄져야 겨우 원래의 목표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고, 그나마도 지속적으로 해나가지 않으면 다시금 더 발달한 역기능들에 다시 파묻힌다. 그럴 때, 그때의 정부는 다시금 스스럼 없이 다시 실명제, 혹은 그보다 한층 곤란한 제도를 천연덕스럽게 만병통치약으로 들고 나와 여론을 모아낼 것이다.

즉 실명제라는 하나의 만능열쇠가 있다는 것은 허상임을 깨달음과 동시에, 수많은 정책을 함께 연동하여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정책 철학이 필요하다. 어느 부문이든 기본적인 인권 원리를 바탕에 깔고, 논리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의 의견을 제대로 좀 듣고 말이다. 실명제의 문제가 하나의 짧은 촌극이 아니라 최소 십수 년도 넘은 오랜 흐름이라면 이 정도의 교훈 정도는 생각해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PS. 기왕 여기까지 읽으셨으니 다시금 정리하는 의미에서, 진보넷에서 만든 ‘실명제 타임라인’도 함께 구경하시길(클릭).

(이 기사는 슬로우뉴스에 동시 게재됐습니다. 편집자 주)
("진보넷-미디어오늘 및 몇몇 개인들의 헌법소원에 대해 2012년 8월 23일 내려진" => "진보넷, 미디어오늘 참여연대 등이 함께 한 헌법소원에 대해 2012년 8월 23일 내려진"으로 수정합니다. 9월2일 오전 0시3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