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PD수첩을 집필했던 7명의 작가들의 눈으로 본 이번 'PD수첩 작가 전원 해고 사태'에 대한  릴레이 기고입니다. 8.16(목)부터 2주간 이틀에 한 회씩 총 7회에 걸쳐 게재됩니다. - 편집자주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진 다음 날, 나는 동료 PD와 술을 마시며 그를 추억했다. 그땐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또한 먼저 간 이들에 대한 예우가 그렇듯, 좋은 추억들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노 대통령에 대해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들이 더 많았다. 나는 소위 ‘노빠’ 가 아니었고, 무엇보다 참여정부 당시 ‘PD수첩의 작가’였기 때문이다.
 
을 하는 동안, 나는 본의 아니게 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황우석 사태며 한미 FTA 같은, 당시 정부에게는 달갑지 않은 아이템들이 나를 거쳐 갔다. 특히 황우석 사태는 참여정부에게는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바이오산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내세우고, 황우석 박사를 그 선봉에 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친히 황 박사의 연구실을 방문해 격려하는가 하면, 정부는 그에게 연구비며 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황 박사는 참여정부의 후광 아래서 온갖 수혜를 다 받으며 ‘거물’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니 에서 황 박사를 취재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자마자 윗분들의 전화가 조용히 빗발친 건 예정된 수순이었다. 청와대, 정부 할 것 없이 여러 루트를 통해 취재 중단을 종용해왔고, 나중에 황 박사의 사기극이 들통 날 즈음엔 간접적인 루트를 통해 방송 중지를 ‘요청’해오기도 했다.

그 당시엔 정말 화가 났다. 민주주의 하에서 권력이 언론에 개입하고 크든 작든 압력을 행사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권력의 입김은 그닥 세지 않았던 것 같다. 취재는 계속되었고 진실은 밝혀졌으며 방송은 나갔다. 그리고 제작진도 무사했다. 그렇게 황우석 사태는 끝이 났다.

그로부터 3년 후, 나는 이 겪고 있던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 ‘나는 정말 운이 좋았구나…’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피디들이 정권의 직접적인 탄압을 받는 것만도 경악할 일인데, 더욱이 작가에게까지 그 손길이 미치다니. 동료 피디들과 후배 작가의 손에 수갑이 채워지고 유치장에 갇히고 재판정에 세워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문득 상상하기도 했다. 만약 황우석 사태가 이 정권에서 터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했다. 대통령의 한 마디에 취재는 접어야 했을 것이고, 방송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며, 그럼에도 방송을 강행했다면 나 또한 저들 못지않은 시련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분명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는 ‘황우석 사태’ 후에도 당시 정부에게 정말이지 ‘몹쓸 방송’을 또 감행했었기 때문이다. 

2006년 에서 다룬 ‘한미 FTA’는 참여정부에게 광우병 방송 못지않게 타격이 컸다. 정부가 공들여 한 홍보 덕에 국민들은 한미 FTA에 대해 무지갯빛 환상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대다수 국민들이 싸늘하게 돌아섰다. 여론조사 결과, 방송 전후 한미 FTA 찬반 비율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내가 대통령이고 정부 관계자라 해도 정말이지 이 미웠을 만도 하다. 하지만 그토록 ‘미운 PD수첩’에 대한 대응은 현 정부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방송 후, 제작진은 청와대로부터 놀라운 제의를 받았다. 한미 FTA를 놓고 제작진과 대통령이 방송으로 ‘끝장 토론’을 해보자는 것.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낸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만큼 노 대통령은 한미 FTA를 절체절명의 과업으로 생각했고, 국민들의 반대보다 지지 속에 추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뜻밖의 제안에 더 놀란 쪽은 제작진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정부의 핵심 정책에 대해, 그 정책을 비판한 프로그램의 제작진과 함께, 대통령이 직접 ‘토론’을 하자니…그것을 방송을 통해 그대로 국민들에게 보여주자니…지금 시대라면 상상이 되는가.

그 토론은 결과적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초긴장 속에 토론 준비를 하던 즈음 급작스레 국제적 이슈가 터졌고, 이러저러한 사정이 겹쳤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쩌면 방송 역사상 길이 남았을 그 토론이 불발된 것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책은 미웠지만, 언론을 대하는 방식만큼은 차마 미워할 수 없었던 대통령. 나에게 있어 노 대통령에 대한 ‘추억’은 그렇게 남아 있다.

군사정권에서 시작돼 다섯 정권을 거쳐 오는 동안, 은 늘 정권으로부터 ‘미움’ 받는 존재였다. 심지어 국정원인가 어느 기관의 직원은 다음 주 아이템이 무엇이고 어떤 내용인가 사전에 파악해 보고하는 것이 임무였다고도 전해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잘하는 일을 칭찬하기보다 잘못한 일, 감추고 싶은 일들만 콕콕 짚어내어 비판하니, 누가 예뻐할 것인가.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미움 받는 것은 같은 시사프로그램에겐 숙명이다.

중요한 건 그런 ‘미운’ 프로그램을 대하는 정권의 태도다. 지금까지 모든 정권은 대체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전화로 불같이 화를 내고, 방송 내용에 반박하는 보도 자료를 내고, 기자회견을 열어 열심히 성토하고, 언론중재위에 제소하고, 심지어 거액을 들여 신문에 반박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제작진을 용서할 수 없다며 협박하고, 권력기관을 동원해 물리적인 탄압을 가해온 적은 없었다.

그사이, 정권과 권력기관으로부터 쏟아지는 그 모든 불만과 압력에 대해 ‘바람막이’가 되어준 건 데스크를 포함한 ‘회사의 윗분’들이었다. 각 정권에 따라 그들이 ‘저 위’로부터 어떤 닦달과 고초를 겪었는지 나는 모른다. 작가에게까지 그 ‘바람’이 전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를 할 때 팀장이나 국장에게 어떤 아이템에 대해 ‘절대 하면 안 된다’는 말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들은 건 그저 꼬투리 잡히지 않게 잘 만들어달라는 ‘당부’뿐. 그 당부대로, 작가로서 묵묵히 내 할 일만 하면 그뿐이었다. 그것이 모든 정권으로부터 미움을 받으면서도 이 22년간 사라지지 않고 ‘무사히’ 제 길을 걸어올 수 있었던 이유다.

이 정권 들어 제작진들에게 가해지는 폭압의 정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잘하고 있는(너무 잘 해 탈인) PD들을 프로그램에서 내쫓는가 하면, 이 ‘절대 할 수 없는’ 아이템들이 늘어간다. 이 정권에서 또 한 번 논란이 된 ‘한미 FTA’ 아이템은 취재까지 다 끝내놓고 끝내 전파를 타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방송을 막은 건 현 의 팀장과 국장이라는 분들이다.

그리고...급기야 작가들까지 전원 강제 퇴출이란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도 든다. 단지 ‘미운’ 차원이 아니라 ‘두려운’ 거구나…무엇이 그리 두려운 것인지. 의 힘이 그리 무서운 것인지. 작가의 능력이 그리도 대단했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출신 작가들은 지금의 작태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찾는구나 생각까지 든다.

MBC에서 작가 생활을 한지 올해로 만 20년째. 그 가운데 가장 치열하게, 독하게 일했던 에서의 3년을 내 이력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마도 을 거쳐 간 모든 작가들이 그러할 것이다. 그것은 보수가 많아서도 조명을 받아서도 아니다. 이 사회에 뭔가 소용이 될 만 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 그거 하나 때문이다. 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던 작가들.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왜 이리도 힘든 일이 되었는지…‘PD수첩 아이템’ 같은 지금의 현실이 참으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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