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정책토론회에서 헌법 제119조 ②항 삭제 문제가 논란이 된 이후 반재벌 여론이 후폭풍처럼 몰아쳤다. 급기야 발표를 담당했던 당사자 자신이 헌법 제119조 ②항 삭제를 요구한 것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전경련의 이념을 대변하는 자유경제원의 전원책 원장이 반발하며 나섰다.

경제민주화란 정치경제학적으로 연원도 알 수 없는 용어이고 이런 정체불명의 헌법조항으로 정치권이 재벌때리기에 나선다는 것이다. 7월 3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그가 던진 말이다. 매일경제신문 등 보수언론에서도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경제민주화는 개념과 정의조차 혼란스럽다며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세가 이어졌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경제민주주의는 노동자운동과 사민주의의 오래된 이념이며, 오늘날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일정하게 제도화가 이루어졌고, 또한 정치경제학적으로도 명확한 개념과 이론체계를 갖추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미 바이마르 공화국 하에서 독일노동조합총동맹(ADGB)에 의해 경제민주주의의 요구가 제기되었고, 1928년 나프탈리(F. Naphtali)에 의해 그 개념과 이론 그리고 요구가 체계적으로 제출되었다. 전후에도 1949년 독일노동조합동맹(DGB) 기본강령에서, 그리고 1960년에는 그것에 입각한 독일금속노조 위원장 브레너(O. Brenner)에 의해 매크로 수준, 메조 수준 그리고 마이크로 수준의 3단계 경제민주주의의 구상이 제시되었다. 나아가 1970~80년대 이래 세계경제의 구조위기를 배경으로 경제민주주의론은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새롭게 주목을 받았다.

1980년대 말 독일 통일과 현실사회주의의 붕괴, 그리고 독일 사민당의 일층의 우경화에 따라 사민당과 DGB 지도부에서는 경제민주주의 논의가 명백히 퇴조하였지만, 노동조합들 내에서는 아직도 경제민주주의의 전통이 뿌리 깊게 남아있다. 특히 양극화, 투기와 금융위기 등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참상이 심화되면서 2000년대 이래 사민당 밖의 좌파들을 중심으로 경제민주주의는 신자유주의와 주주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유력한 대안으로서 다시 집중적으로 토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자산소유자에 의한 독재적, 전일적 의사결정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민주화를 표방하는 것이다. 자본주의하에서는 1인1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립된 정치세계와 달리 경제세계에서는 자산소유자의 독재와 근로대중의 종속이라는 경제적 불평등이 지배한다.

경제민주주의는 소유권 행사에 대한 사회적 제약을 통해 그 처분권을 제한할 뿐 아니라 근로대중에게도 자산소유에 입각하지 않은 결정권을 도입함으로써 이 불평등한 시장경제 질서를 민주화하고자 한다. 따라서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은 소유권에 대한 문제제기이며, 국가와 근로대중에 의한 소유권 행사의 제약과, 경제와 기업에서의 노자 공동결정권에 있다.

물론 경제민주주의의 구상은 주요 산업과 금융기관의 사회화(혼합경제 지향), 국가의 경제개입을 통한 완전고용과 사회보장, 국가의 계획과 경제조절, 재벌들에 대한 통제와 규제, 국가정책기구 및 경제와 기업 심급에서의 공동결정권 등에 걸쳐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발전되어온, 부정할 수 없는 경제민주주의의 개념과 내용이다.

경제민주화와 경제민주주의가 정체불명의 개념이며 포퓰리즘의 도구라는 주장은 이렇게 무지에 근거한 억지주장일 뿐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헌법조항의 삭제를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역사 사실을 부정하는 무지를 논거로 논쟁할 수는 없다. 요즘과 같은 인터넷과 정보화 시대에는 몇 글자만 검색해보아도 이런 역사를 접할 수 있다. 그런데도 경제연구소 원장이라는 인물이 어디에서도 이런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고 강변하는 게 한심하기만 하다. 경제민주화와 헌법논쟁에 대해 자유경제원은 앞으로 입을 다물어야 할 것이다.

경제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한 무지는 사실 전원책 원장이나 보수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이 문제삼고 있는 진보개혁진영의 경제민주화 논쟁도 경제민주주의의 이론적 전통과 단절된, 매우 기형적인 구도에서 진행되고 있다. 왜냐하면 원래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은 소유권의 문제이며, 소유권에 입각하지 않더라도 소유권을 제한하고 통제하자는 이념인데, 한국에서는 소액주주운동이나 순환출자 금지 같은 자산소유자간의 민주주의(주주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재벌개혁이 핵심 쟁점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민주주의가 오늘날 독일에서는 사회적 시장경제와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 확대가 논의되고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사회적 시장경제와 주주자본주의가 경제민주화로 둔갑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걸 경제민주화 논쟁이라 할 수 있을까? 역사적 논의와 단절된 정체불명의 경제민주화가 논쟁의 주류를 이루는 건 아마도 우리의 이른바 경제민주화론자들도 경제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보수언론과는 정반대의 의미에서지만 경제민주화의 개념과 정의가 극히 혼란스럽다고 할 수 있다. 목하 경제민주화 논쟁을 그 개념과 역사에 어울리게 진보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킬 것이 시급하게 요구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