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준비하고 있는 트래픽 관리 가이드라인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고(무선) 동영상 서비스가 확산되면서(유선) 네트워크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방통위는 혼잡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혼잡을 유발한다는 기준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통신사들이 트래픽 모니터링과 선별 차단을 위해 통신을 감청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습니다.

망 중립성 원칙이나 소비자들의 프라이버시 보호는 뒷전이고 일방적으로 통신사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있는 게 분명한 데도 방통위는 밀실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 9일 망 중립성 이용자 포럼 토론회에서는 방통위 가이드라인 기준안이 공개돼 열린 토론을 벌인 바 있습니다. 통신사의 자의적 서비스 차단과 감청 의혹이 논란이 됐습니다. 그런데 방통위 관계자가 포럼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이 자료를 공개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자료 삭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방통위는 무엇을 숨기고 싶은 걸까요. 국민들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정책을 만들면서 왜 이렇게 비공개가 많은 걸까요. 망중립성 논쟁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보라미 법무법인 동서파트너스 변호사의 글을 싣습니다. 그리고 망중립성 포럼이 입수한 "방통위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안)"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방통위는 토론회 하루 전인 12일까지 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편집자 주>

이번 트래픽 관리안을 만들어 내는 방통위의 일처리 방식에 대하여 여러모로 문제의식을 느낀다. 우선 가장 크게 심각하다고 느끼는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 비공개방식의 권위주의적 일처리다.

아래 첨부한 자료를 보라. 여기에 영업비밀이나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내용이 있나. 그런데도 방통위는 비공개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내일이 토론회인 데도 오늘까지 국민들에게 최소한의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지난 월요일(9일) 망중립성 이용자 포럼에서 이와 관련하여 논의 중인 트래픽관리안을 공개하자, 담당 방통위 공무원은 경실련 담당자에게 전화하여 이렇게 항의했다고 한다.

가. 경실련에서 공개한 트래픽 기준안 온라인에 공개한 것을 내려달라.
나. 확정되지도 않은 논의 중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첨 들어봤다.
다. 유포자가 누구냐? 어떤 형식으로 받았냐? 언제 받았냐?
라. 금요일날 토론은 소통을 위해 하는 거니 트래픽 기준안은 그날 공개하겠다.

너무 말 같지도 않은 항의라 반박은 생략하겠다. 방통위는국민들에게 말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입장, 그리고 말하면 안 된다는 입장 등을 갖고 있다. 이 세 가지 입장은 서로 다른 도덕적 전제들을 갖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정서를 함축하고 있다. 그것은 국민들, 다중에 대한 경멸이다. (이준웅 ‘말과 권력’ 301페이지)

방통위가 이렇게 국민들을 경멸하는 이유가 뭘까. 방통위가 일반적인 국민들보다 망중립성과 트래픽 관리에 대한 이해가 높으면 이해라도 하겠지만 그닥 높지 않은 것 같다.

둘째,  트래픽 관리를 망중립성 원칙과 동등 위치에 놓는 것이 타당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다.

방통위는 트래픽 관리안을 망중립성 원칙과 동등위치에 놓고, 친히 차단해도 될 것들의 범위를 예상밖의 범위로 확장해 놓고 스스로도 이상했던지 지켜지기 어려운 제한 사유들을 자잘하게 붙여 놓았다. 심지어 이 안에 따르면 내용 심의까지도 트래픽 관리의 범주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통신사님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사업하기에 필요한 모든 내용을 열거해 놓은 듯 하다.

트래픽 관리는 망중립성 원칙을 보완하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지, 망중립성 원칙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 점에 대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오픈 인터넷 규칙에서는 양자간의 관계를 명확히 정리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방통위의 가이드라인에서는 P2P차단이나 mVoIP(모바일 인터넷 전화) 차단 및 제한, 약관을 통한 차단, 계약을 통한 차단 등 광범위한 망중립성 훼손을 인정하는 예를 합리적 트래픽관리의 예로 들고 있다. 원칙과 예외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떠났다.

   
 
 
셋째, DPI(Deep Packet Inspection) 사용을 전제로 합리적 트래픽 관리를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방통위는 DPI 사용을 전제로 프라이버시 침해의 우려까지도 합법화 시키고 있다. 이용자들이 P2P 서비스와 mVoIP 등 특정서비스 및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는 것을 통신회사들이 알 수 있는 방법은 DPI 장비 뿐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러한 DPI 장비를 통한 엿보기 금지를 망중립성 법의 핵심 원칙으로 규정하여 이 문제가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DPI 장비사용을 통한 콘텐츠, 애플리케이션의 차단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마당에 방통위가 이를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결론은 이렇다.

방통위가 지금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만들 수도 없고, 아직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합리적 트래픽 관리의 예를 너절하게 드는 것보다, 통신사들니 트래픽 관리를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강제해 이용자들이 그 중 이용자친화적인 영업을 하는 회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통신사들의 트래픽 관리 내용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이용자들은 그 중 이용자 친화적인 회사를 선택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작은 범위내에서나마 경쟁을 발생시킬 수 있는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스스로 투명하게 일처리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방통위가 투명성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것이 가능한지는 의문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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