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토요일) 아침에 배달된 조선일보 1쪽의 머리기사 제목은 ‘한국정치가 창피하다’였다. “‘교회는 범죄 집단’···여성·노인 이어 종교도 조롱한 제1야당 후보”라는 부제가 달린 기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인터넷 방송 ‘나꼼수’ 출신의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서울 노원갑)의 과거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김 후보가 노인 폄훼, 성적(性的) 막말에 이어 기독교 모독 발언을 한 사실까지 공개되면서 교계가 반발하고 있다.

교계에 따르면 김 후보는 작년 말 나꼼수 미국 공연 때 한 인터뷰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는 일종의 범죄 집단과 다르지 않다’며 ‘한국 교회는 척결 대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 기사의 제목 아래에는 지난 3월 12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파업 중인 한 일간지 노조가 주최한 행사에서 김용민이 목회자 가운을 입고 ‘목사 흉내를 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크게 실려 있다.

한국 정치가 왜 창피한 지 설명이 없다

   
 
 
조선일보의 그 기사를 아무리 꼼꼼이 읽어보아도 ‘한국 정치가 왜 창피한가’를 알 수가 없다. ‘이해찬 민주당 상임고문과 이용득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김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당내에서 김 후보 사퇴 주장이 이어지고 있으나 당 지도부’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고’, ‘김 후보가 완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한국 정치가 창피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한국장로총연합회 등 7개 교계 단체가 ‘7일 영등포 민주당사 앞에서 민주통합당 사죄 및 김용민 후보 사퇴 촉구 기자회견을 열 것’으로 전해졌기 때문에 한국 정치 전체가 창피하다는 것인가? 그도 아니면 새누리당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이혜훈이 ‘김 후보를 영입해 전략공천 한 민주통합당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밝히라고 압박’했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한국 정치가 창피하다’고 느낀 것인가?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가 진정으로 창피하게 여겨야 할 사건들에 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오히려 미화하고 변명하는 행태를 보여왔다. 근래의 사례들을 먼저 보기로 하자. 지난 3월 13일 파업 중인 KBS 새노조가 ‘리셋 KBS 뉴스 9’를 통해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 사찰’ 내용을 보도했을 때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가 창피하지 않았는가? ‘BH(청와대) 하명’으로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는 물론이고 언론인과 기업인, 노조 활동가 등에 대한 사찰이 대대적으로 자행된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 조선일보는 왜 1쪽 머리에 ‘한국 정치가 창피하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싣지 않았을까? 전국언론노동조합이 ‘헌정질서 유린한 국가적 중대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은 당장 하야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불법 사찰에 관해 양심선언을 계속하고 있는 장진수(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전 주무관)가 ‘관봉 돈뭉치 5천만 원’이 찍힌 사진을 공개했는데도 왜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가 창피하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조선일보의 창피한 역사

거슬러 올라가서, 대통령선거 기간이던 2007년 11월, 대통합민주신당 의원 강기정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명박 후보가 자신의 회사(대명기업)에 아들과 딸을 유령 직원으로 등재해서 8,800만 원을 횡령하고 그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고 폭로했을 때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가 창피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때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이 내세운 ‘747 공약(연 평균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강국 진입)’이 그의 임기 4년 남짓이 지나도록 이루어지기는커녕 그 절반을 맴돌고 있는데도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가 창피하지 않은가?

1920년 3월 5일에 창간된 조선일보는 일제강점기부터 창피한 일을 셀 수도 없이 많이 저질렀다.

일제가 조선의 청년들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몰던 때, ‘황국(皇國)의 위무선양과 동양 평화를 쌍견에 짊어지고 제일선에 선 출정 장병으로 하여금 안심과 용기를 가지고 신명을 도(賭)하여 제일선의 사명을 다하게 하는 데는 총후(銃後)에 선 일반 국민의 정신 물질 양면에서의 후원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조선일보, 1937년 8월 2일자 사설)라면서 중국 상해와 남경에서 ‘연전연승’하던 ‘천황 폐하’의 군대를 찬양하던 일이 조선일보는 창피하지 않은가?

조선일보사 사주 방응모가 1943년 11월 ‘출진학도 격려대회’를 연 뒤 거액을 들여 일본군 사령관에게 고사포를 ‘기증’하고 나서 비행기를 제조하는 전쟁협력회사인 조선항공공업회사의 중역이 된 사실이 조선일보는 창피하지 않은가?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가 종신집권을 위해 ‘대통령 특별선언’이라는 초헌법적 수단으로 ‘10월 유신’이라는 헌정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우리는 이 사태에 직면하여 오늘 우리에게 부닥친 안팎의 모든 정세를 살펴보며 조국의 앞날이 걸어가는 길을 내다볼 때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로서 이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사설에 쓴 조선일보는 지금 창피하지 않은가?

1980년 ‘서울의 봄’을 무력으로 누르고 광주의 5월 항쟁을 피로 물들인 전두환이 박정희의 후계자로 떠오르던 때 ‘구국의 영웅’이라고 그를 칭송했던 조선일보는 그 지면이 창피하지 않은가?

조선일보사가 대주주인 TV조선이 개국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나라당 의원 박근혜의 대담 장면에 ‘형광등 100개를 켜 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큼직하게 내보낸 것이 조선일보는 창피하지 않은가?

집권당의 ‘기관지’ 노릇이 ‘불편부당’인가

조선일보는 김영삼-이회창-이명박으로 이어지는 대통령선거에서 집권당의 ‘기관지’나 다름없이 그들을 직접, 간접으로 지원했다. 조선일보사의 공식 ‘누리집’에 명시되어 있는 ‘기업이념’은 ‘정의옹호, 문화건설, 산업발전, 불편부당’이다. 특정 정당이나 집권세력과 유착해서 갖은 특혜를 얻어내는 것이 ‘정의옹호’이고 ‘불편부당’인가?

나는 김용민이나 민주통합당을 옹호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김용민이 8년 전에 쏟아냈다는 ‘막말’에 대해서는 엄중한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고, 거친 어법보다는 내용에 주목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민주통합당이 노원갑에서 오랫동안 경선 준비를 해온 후보들을 묵살하고 김용민을 전략공천 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만을 가지고 조선일보가 ‘한국 정치가 창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정치의 한 단면을 두고 전체를 평가하는 악의적 보도 행태이다. 새누리당이 부산 사하갑에 공천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이 박사학위 논문을 표절했다고 학술단체협의회의 핵심 학자들이 ‘판정’한 사실을 알 텐데도 왜 조선일보는 한국 정치가 창피하다는 사설을 쓰지 않는가? 김용민이 과거의 언행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한 것과 문대성이 ‘표절’에 대해 한 마디 사과도 하지 않고 ‘국회의원 당선’에 몰두하는 일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창피한 일인가?

조·중·동의 ‘귀곡성’

조선·중앙·동아일보의 ‘주특기’는 보수세력의 정치적 경쟁자인 민주진보 진영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거나 자의적으로 정치적 평가를 일삼는 것이다. 야권이 실책을 저지르거나 여론의 비판을 받을 만한 일을 하면 그 신문들은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날쌔게 달려든다. 때로는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오늘 목 놓아 우노라)’을 터뜨리기도 한다.

조·중·동이 이명박 정권한테서 특혜를 받아 얻어낸 ‘종합편성 케이블 채널’은 ‘애국가 시청률’인 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TV조선이 1백억 원이 넘는 제작비를 들인 드라마 <한반도>는 저조한 시청률 때문에 중간에 서둘러 막을 내렸다. 근래 조·중·동의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졌다. 2010년의 6·2 지방선거와 지난해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그들이 강력히 지원한 집권당은 참패를 당했다. ‘종이신문의 시대’가 가고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의 새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 새누리당에 보내는 지지와 성원은 ‘귀곡성(鬼哭聲)’처럼 들린다.

‘한국 정치가 창피하다’고 주장하는 조선일보가 ‘언론’이라면 ‘언론인’이라는 이름으로 이 글을 쓴 나도 창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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