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의 ‘숨은표’는 언론사에 망신을 안겨주는 변수이다. 언론이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판세 분석을 했는데, 결과가 완전히 뒤집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언론이 발표하는 여론조사의 신뢰도가 뚝 떨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지상파 방송 3사가 공동 여론조사라면서 연일 총선 여론조사 결과를 저녁 메인 뉴스에 발표하고 있다.조선일보는 다음날 1면에 방송사 여론조사 결과를 있는 그대로 게재하고 있다. 방송 3사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이니 어느 정도 공신력은 확보됐다는 생각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번 여론조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점도 존재한다.

조사 방법을 보면 전화 여론조사로 진행했고, 휴대전화는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 당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0% 가량의 가구는 집 전화 없이 휴대전화만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휴대전화만 지닌 가구들이 한나라당(지금의 새누리당)에 비판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휴대전화 표본을 제외하면 새누리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지금 방송 3사 공동 여론조사 결과는 한계가 있다. 휴대전화를 제외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새누리당에 훈훈한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는 4월 4일자 8면 <뚜껑 열어봐야 아는 '숨은 야당표' 또?>라는 기사에서 “2일부터 보도된 지상파 3사의 여론조사는 휴대전화가 빠져 우리당 지지율을 최소 5% 포인트 깎아봐야 객관적”이라는 새누리당 관계자 얘기를 전했다.

새누리당에서도 최근 방송 3사 여론조사 결과가 여당 쪽 입장에서 부풀려진 내용이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그냥 ‘추정’이 아니라 ‘실제’ 사례에서 드러나고 있다. 집전화+휴대전화 조사를 진행한 중앙일보 조사(4월 3일 발표)에서 고양시 일산 서구 지지율은 민주통합당 김현미 후보 43.3%, 새누리당 김영선 후보 32.2%로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11.1%에 달했다.

오차범위(±4.0%포인트)를 뛰어넘는 결과로 민주통합당 김현미 후보가 우세하다는 평가를 내려도 무방하다. 그러나 휴대전화를 뺀 여론조사 방법으로 방송 3사가 4월 3일 밤에 발표한 결과를 보면 김영선 후보 39.2%, 김현미 후보 37.0%로 거꾸로 김영선 후보가 2.2%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오차범위 내의 결과이기에 어떤 후보가 우세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흥미로운 점은 휴대전화를 뺀 방송 3사 여론조사에서는 새누리당 후보 지지율이 올랐고, 민주당 후보 지지율은 떨어지면서 두 후보의 지지율 우위 결과가 뒤집혔다는 점이다. 여기에 관전 포인트가 있다. 휴대전화와 집전화 여론조사 사이에 뚜렷한 정치성향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언론사 입장에서 휴대전화 조사를 뺄 경우 한계가 있다는 데 공감하면서 집전화 조사를 하는 이유도 있다. 현행법의 미비에 따라 휴대전화 조사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구별로 양질의 표본을 확보하기란 정말 어렵다. 현재 휴대전화 패널조사 형태로 진행하고는 있지만 이것 역시 해당 지역구 휴대전화 표본의 일부라는 점이 주목할 부분이다.

그렇다고 휴대전화 조사를 빼고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휴대전화를 뺐을 때 특정 정당 쪽에 유리한 결과가 나온다는, 바닥민심과 차이가 있다는 게 드러난 상황이라는 점에서 휴대전화를 반영하는 게 합당하다는 얘기다.

중요한 포인트는 다른 데에 있다. 집전화+휴대전화 조사를 하더라도, 제도적 개선 노력을 하더라도, ‘숨은표’ 변수를 해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숨은표란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는 ‘표심’을 의미한다.

여론조사의 기본은 ‘표본의 대표성’이다. 이는 여론조사에 응답한 이들과 응답하지 않은 이들의 정치성향 차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성향 차이가 존재한다면 여론조사에 응답한 이들은 전체 여론을 대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역대 선거에서 숨은표는 정치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을 난처하게 했다. 2010년 지방선거가 대표적이다. 여론조사 전문가, 각 당 정치분석 전문가, 정치전문 기자들 상당수는 2010년 6월 2일 선거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엉뚱한 선거판세 분석을 이어갔다.

오후 6시 선거 마감과 함께 발표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경악한 이유이다. 정치전문가들은 ‘숨은표’ 뒤에 숨어 자신의 오류를 감추려했지만, 숨은표 역시 파악하는 게 진짜 전문가의 역할 아니겠는가.

정치 여론조사 보도의 비밀을 다룬 <락더보트>라는 책을 준비하면서 최근 주요 선거의 여론조사 결과와 실제 선거 결과의 차이점을 보고 깜짝 놀라곤 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숨은표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각종 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악몽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이다.

지방선거를 6일 앞두고 발표한 2010년 5월 27일 방송 3사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 50.4%, 한명숙 민주당 후보 32.6%로 나타났다.

야당 지지층 입장에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투표장에 나가기는 하겠지만 내가 찍어봐야 당선은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방송 3사가 공동 여론조사를 했다는데 설마 틀리겠어?”라는 물음 속에 체념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6월 2일 실제 개표 결과는 오세훈 47.4%, 한명숙 46.8%로 두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0.6%포인트에 불과했다. 방송 3사 여론조사에 비해 오세훈 후보는 소폭 하락했고, 한명숙 후보는 대폭 상승했다. ‘숨은표’ 효과에 한나라당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지난해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서도 ‘숨은표’ 위력이 드러났다. 동아일보는 4월 22일 ‘투표일 전 공표 가능한 마지막 여론조사’라는 타이틀과 함께 한나라당 엄기영 후보 45.0%, 민주당 최문순 후보 28.0%라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선거일 불과 5일 전에 나온 내용이다.

강원도의 야권 유권자들은 투표 의욕을 상실할 만한 내용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맞다면 결과를 뒤집는 것은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4월 27일 실제 개표 결과는 최문순 후보 51.1%, 엄기영 후보 46.6%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동아일보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개표결과와는 동떨어진 결과인 셈이다.

지난해 10월 26일 서울시장 선거 때도 유사한 사례가 이어졌다. 당시 범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 후보는 53.4%,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는 46.2%를 얻어 박원순 후보가 당선됐다. 박원순 후보는 서울 25개구 가운데 21개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완승을 일궈냈다.

그러나 문화일보는 선거일 5일을 앞둔 10월 21일자 1면에 ‘공표 가능한 여론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마지막 날 조사’라는 부언 설명과 함께 서울시장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내용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 47.7%, 박원순 후보 37.6%로 나경원 후보가 10% 이상 앞선 것으로 보도했다.

문화일보가 보도한 내용과 실제 박원순 후보의 득표율 격차는 15.8% 포인트에 달한다. 반면, 나경원 후보는 문화일보 여론조사나 실제 득표율이나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010 서울시장 보궐선거, 2011 강원도지사 보궐선거, 2011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숨은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줬다.

언론은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는 이들의 표심, 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거를 앞두고 자신 있게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하다가는 ‘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여론을 흔드는 ‘여론조사 정치’ 행태는 위험천만하다.

선거가 끝나고 여론조사 결과가 틀린 뒤 ‘숨은표’ 때문에 그렇다고 변명할 게 아니라 선거 전에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2010 서울시장 선거 당시 오세훈 후보가 일방적으로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 발표를 통해 야권 지지층의 투표 의욕을 꺾지 않았더라면 처음부터 박빙 승부라고 보도를 이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언론 보도 때문에 미리부터 질 줄 알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야권 지지층이라는 변수를 생각한다면 오세훈 후보가 아닌 한명숙 후보가 승자였을지도 모른다.

불법 민간인 사찰, 김제동씨 사찰, 언론인 사찰 등 이번에 드러난 사건은 국민들에게 여론조사에서 자신의 정치 의사를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게 할 수 있는 요인이다. 특히 야권 지지층은 여론조사에 응답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더 강할 수 있다. 4월 11일 19대 총선에서도 ‘숨은표’의 위력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정치권 입장에서는 여론조사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샴페인 터뜨릴 일도 아니고, 나쁘게 나왔다고 낙심할 필요도 없으며, 국민 역시 언론 발표를 보며 판세를 단정해버리고 투표장을 찾지 않는 ‘여론조사 정치’의 덫에 빠지는 일도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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