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탐미주의(유미주의, aestheticism)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과 해체에서 크게 촉발되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미국 여성들이 <트와일라잇>(2005년 출판)에 열광했던 이유는 ‘로맨스에 열광하는 여성들’이라는 레토릭에 한정된 이유만이 아니라 부시 행정부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비판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美)에 탐닉하는 것은 자연스런 본능이다. 서양의 합리주의와 이성 중심 사고가 욕망과 본능을 억압하자 감추어져 있던 것이 표출된 것이다.

MBC 미니시리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의 시청률 상승세가 무섭다. <해품달>의 공간은 미술적 고증만 조선시대에서 빌려 왔을 뿐,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간 먼 ‘판타지 사극’이다. <해품달>은 기존 사극이 선이 굵은 남성적 중심의, 역사와 현실의 결합을 통한 정치드라마 성격으로 사랑을 받은 것과 대비되어 극의 중심을 유려한 화면과 애틋한 로맨스를 선보인다. 궁중사극이 줄 수 있는 강점에는 ‘역사적 사실’을 통한 현실비판적 스토리 외에 외형적으로 강력한 코스튬 드라마라는 성격 또한 있다. 무채색인 도시와 대비되어 한옥 단청과 한복의 다채롭고 화려한 색감은 ‘오직 그 당시, 그 계층에만’ 가능했었다는 권위를 부여받고 시각적으로 소비된다.

<해품달>은 이런 궁중사극이 가지는 강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으며, 대중은 그에 화답하고 있다. 단순히 의상과 소품, 색감의 문제만은 아니다. 스토리 또한 철저하게 개인적인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대왕대비를 비롯한 <해품달>내 정치세력은 구체적인 담론이 거세된 ‘권력’ 그 자체에 집중한다. 훤(김수현)의 고민은 정치적 왕으로서의 번민이라기 보다는 연우(한가인)와 이루어지지 못한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인간 훤’으로서의 고민들에 비중이 맞춰져 있다. 이런 스토리 내부에서 철저하게 개인적 층위, 사랑에 집중하는 것 또한 감정적 탐미주의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MBC 미니시리즈 ‘해를 품은 달’
 

작년부터 올해초까지 이른바 사회파 드라마, 영화들이 텔레비전과 스크린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다. 이들은 다분히 합리적인, 이성적인 드라마들이다. 감정적인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최근의 <부러진 화살>에 이르기까지 무게 중심은 ‘현실’에 치우쳐 있던 것이 사실이다. 현재 <해품달>의 인기는 정치, 사회 문제에 집중되어 있던 이성적 콘텐츠에 대한 피로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경제가 힘들고, 사회적 문제들이 넘쳐날수록 개인의 욕망, 사랑과 같은 것들은 감정적 사치로 판단되어 억압받게 된다. 그것은 꼭 외부적 억압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욕망의 억제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복될 경우 그 반대의 것을 찾게 된다. 물론 억압의 반사효과라는 식으로 수동적 의미에서만 <해품달>의 인기를 찾을 수는 없다. 그것을 인기를 얻었을 수 있는 기회요인일 뿐, 멜로 장르를 택했다해서 모든 콘텐츠가 인기를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해품달>의 서사는 사랑과 이별, 운명, 망각이라는 보편적 소재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40%에 육박하는 시청률(AGB 기준 37%)은 일종의 현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

 

   
 
 

<해품달>의 인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현실의 거울로서만의 콘텐츠 측면이 아닌, 판타지와 로맨스라는 장르 콘텐츠가 주는 현실도피적 특성이다. 그것은 미에 대한 탐닉일 수도 있으며 과도한 정치, 현실, 사회 담론과 풍자에 대한 피로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해품달>은 그런 주변 상황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영민한 드라마이다. 요즘 세상이 너무 안 아름답지 않은가. 시청자들은 이런저런 무거운 ‘담론’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안구정화’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것도 아주 많은 시청자들이 말이다.

황정현·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