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프로그램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가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이어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잇달아 출연시키면서 평소의 두 배에 달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관심을 받았다. 이와 함께 다른 지상파인 MBC와 케이블TV도 연예 토크쇼에 각각 경쟁적으로 강용석 의원과 이준석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을 토크쇼에 출연시키는 등 방송가엔 총선을 석달여 앞두고 정치인 예능 특수를 맞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출연해서 대체로 최근에 대중으로부터 얻었던 관심사항이나 개인의 성장기, 인생역정 위주로 보여주는데 그치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정치의 예능화가 우려되고 있다. 특히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박근혜 후보의 경우 그의 인간미를 인상적으로 남기는 방송이 나가는 등 ‘정치인 띄우기’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

SBS는 지난 2일과 9일 밤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박근혜와 문재인 편을 잇달아 방송했다. SBS는 방송에서 박 위원장의 인생역정(부모 피격, 퍼스트 레이디, 은둔생활)과 일상(5시 기상), 별명 등을 드러내줬고, 스피드퀴즈를 서로 맞추며 노래(‘빙고’-거북이)까지 부르도록 했다.

SBS는 이경규·한혜진·김제동씨등 MC진이 박 위원장의 별명 ‘얼음공주, 박설공주, 수첩공주, 발끈해’를 제시하면서, ‘야근해’는 어떠냐고 농을 주고받기도 했다. MC들의 권유로 박 위원장은 폭탄주를 직접 제조하면서 “내가 이공계 출신인 것 아느냐. 그래서 정확하다. 비율 잘 맞춰야 하고 각도 중요하고, 손에서 적외선이 나오니까 쥐고 하는 손의 영향을 받는다”고 ‘비법’까지 설명했다. 이 대목은 채널A 등 지난해 12월 1일 종편 인터뷰에서 박 위원장이 한 얘기와 동일하다.

또한 방송에서 소개된 자신의 젊은 시절(중학생 이후) 비키니 입은 사진을 보고 박 위원장이 “젊었을 땐 몸매가 좀 받쳐줬다”고 말한 대목 역시 MBN·TV조선 등 종편과 인터뷰에서도 주고받은 대화의 하나였다. ‘대학 때 대시 많이 받았겠다’는 MC들의 질문에 “인기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선망의 대상이 된 선배가 있었다”는 말 역시 TV조선과 인터뷰에서 했던 내용이다.

9일 방송됐던 문재인 편에서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각종 별명에 얽힌 사연들과 가난했던 시절의 문재인, 유치장에서 사법고시 합격 통보받은 것, 첫사랑과 결혼, 면회의 역사로 불리울 만한 연예사 등이 소개됐다. 특히 특전사 시절 문 이사장의 경험담을 들려준 뒤 실제로 문 이사장에게 격파를 하도록 주문해 기왓장 세장을 격파토록 했다.

특히 문 이사장의 이력을 명패로 만들어 경희대 총학생회 총무부장, 육군 30보병사단 신병훈련소 선임분대장, 특전사 폭파 최우수 대원, 사법연수원 12기 차석 수료, 법무법인 부산대표 변호사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청와대 비서실장,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의 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문 이사장의 인생역정이 주된 대화의 소재가 된 것이다.

지난 3일 밤 케이블채널 tVN <화성인바이러스> ‘고소고발 집착남’에 출연한 강용석 무소속 의원은 대표적으로 자신의 부정적 이미지를 만회한 케이스다. 강 의원은 개그맨 최효종씨에 고소한 이유가 아나운서들로부터 소송당한 사건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아나운서들에게 사과한다면서도 의원직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등 거침없고 솔직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나 방송에서의 그의 발언은 ‘최효종씨 고소이후 동료 국회의원들이 말을 안섞으려한다’거나 ‘아무한테나 고소하면 잡놈 소리 들을까봐 센놈한테 고소한다’는 등 국회의원으로서 갖춰야 할 겸허함과 진정성, 무게감과 거리가 먼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국회의원이 ‘희귀종 인물’의 대상이 돼 스스로 망가지는 방식으로 좋은 인상을 얻으려 했다는 평가다.

국민의 소중한 표를 얻어 당선된 국회의원의 막중한 책임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이들은 일부 거론되기도 했지만 대체로 현재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는 정치현안 대신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그저 ‘괜찮은 사람이네’라는 인상을 주는데 급급해 정치를 스스로 희화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준석 한나라당 비대위원도 지난 5일 MBC <주병진쇼>에 출연했지만 그저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는 수준에 만족해야 했다.

SBS <힐링캠프> ‘박근혜’ 편을 본 이택광 문화평론가는 지난 3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박근혜 위원장이 힐링캠프에 출연한 것이야말로 ‘정치의 예능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라며 “정치는 사라지고, 정치인 개인의 ‘인기’가 쟁점의 중심에 들어서는 것이죠. 대의정치가 붕괴한 자리에 예능이 들어서는 현실, 의미심장하다”고 평가했다.

SBS <힐링캠프> 시청자 게시판에도 홍아무개는 “정치인들 선거철돼서 이미지 관리하려고 나오는 것 같은데 굳이 예능프로에 정치인들을 초대할 필요가 있나요”라며 “어차피 예능 프로에 나오면 최대한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려고 애를 쓸 것이고… 이건 뻔한 거잖아요”라고 꼬집었다.

김보협 한겨레 정치부 기자도 4일 “예능프로에 정치인이 출연해 여러 얘기할 수는 있으나 정치를 왜 하는지, 어떤 정치를 하려는지 등이 중심이 되고 인간 박근혜와 같은 내용은 부분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나을 듯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들의 인기를 먹고 산다는 점에서 정치인은 스타와 비슷한 측면이 있고, 감성의 정치가 강화되는 추세지만 정치인의 본업은 정치”라며 “정치현안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 이런 프로그램은 주변에 권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제작진인 최영인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CP는 4일 “과거부터 정치, 연예, 스포츠 구분없이 하트(Hot)한 사람을 모셔왔는데, 그다지 핫한 정치인이 없었다고 봤고, 지금쯤은 (박근혜·문재인 정도면) 관심이 있겠다 싶었다. (두 정치인측과 우리가) 서로 타이밍이 맞았기 때문에 방송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이 예능프로에 출연해 이미지 제고를 하려한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 최 CP는 “우리도 정치인 출연에 조심스럽기는 하다. 자칫 잘못해서 제작진의 느낌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이번에도 조심스럽게 다가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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