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들어 이명박 대통령이 공영방송 KBS와 MBC의 사장을 직접 임명한지 각각 3년과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두 방송은 존재감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추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청자·누리꾼들은 두 방송에 싸늘하고 냉담하다.

이 기간 동안 끊임없이 친 정부 편향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정권 비판은 외면하거나 축소해왔다는 지적  때문이다. 사장이 바뀌자마자 무너진 KBS 뿐 아니라 공정방송을 지키리라 믿었던 MBC 뉴스마저 편파보도의 굴레를 쓰고 있다. 두 방송사 소속 기자들은 각종 시위 현장에서 내쫓기거나 두들겨맞는 일마저 생긴다. 경쟁적으로 국민의 방송을 자처하던 양대 공영방송이 이렇게 추락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정권이 임명할 수 있는 사장 선임구조’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해법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기자·PD 등 구성원의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선 기자·PD 등 구성원들 책임크다=최근 10·26재보선, MB 내곡동사저, 한미FTA 집회에 대한 노골적인 편파보도로 시민들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받았던 MBC의 경우 기자들 스스로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20년 가까이 된 MBC의 한 중견기자는 26일 밤 “인사권을 통해 조직이 장악된 이유가 크다 해도 기본적으로 뉴스는 기자들이 해야 하지, 노조가 해줄 수 없다”며 “기자들 스스로 할 일 않고 기댔던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 기자는 “기자들 사이엔 목소리 내봤자 나만 손해라는 분위기가 만연돼있고, ‘1년만 참자, 정권 바뀌면 어떻게 되겠지’하는 생각도 하는듯하다. 이것이 가장 문제”라고 개탄했다. 그는 “정권이 임명한 사장 뿐 아니라 이에 대항하고 싸우지 못한 기자들도 많이 반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MBC 보다 앞서 ‘정권의 방송으로 전락했다’는 비판까지 받아온 KBS 내부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성재호 KBS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는 27일 “KBS를 대하는 정권의 자세도 문제지만 구성원의 문제도 크다”며 “지난 정권까지 10여 년간 KBS는 그나마 제작자율성과 방송민주화 등 나은 방향으로 변해왔지만 현 정부가 새사장을 임명하자마자 이런 노력이 일거에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성 간사는 “이를 지켜내지 못하고, 목소리 내며 싸우지 못한 우리 구성원의 책임”이라며 “이밖에 저널리즘 정신에 대한 교육, 제작자율성을 지킬 수 있는 장치 등이 부족했다”고 반성했다.

2년간 KBS와 맞서 싸워온 엄경철 새노조위원장도 “KBS 간부들의 사명감이나 자기확신 부족 뿐 아니라 우리 내부에 오랫동안 뿌리깊이 자리잡은 관료주의탓”이라며 “또한 구성원들의 자기 희생과 헌신이 없었다는 것도 각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젊은 기자들이 문제?=과거 독재정권 시절보다 기자들의 저항이 없는 이유로 요즘 젊은 기자들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MBC의 중견기자는 “젊은 기자들 가운데엔 자신의 기사가 안 나가거나 축소돼도 별로 싸우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 기자는 “몇 몇 대드는 기자가 정치·경제부 등 좋은 부서 대신 한직으로 밀리는 모습을 보고 위축된 분위기”라며 “‘이 체제가 얼마 못갈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안에서 싸우는 분위기가 돼 있지 않다. 그저 민실위 회의할 때나 돼야 울분을 토하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용마 MBC노조(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도 최근 “일부 젊은 기자들의 경우 문제점을 지적하면, ‘자기 뉴스가 무엇이 문제가 있느냐’고 항변하기도 한다”며 “전체가 아니라 일부만을 보기 때문에 뚜렷한 문제의식이 부족한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 국장은 “간부들의 경우도 과거 독재시절엔 싸우는 후배들에 미안한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편향된 뉴스아이템을) 지시할 때도 확신에 차있다”며 “문제는 이에 동조하는 후배도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젊은 기자·PD들이 과거와 다르다는 점에 대해 엄경철 KBS 새노조위원장은 “KBS 기자 PD로 들어오는 구성원들이 저널리즘의 확신만으로 들어온 것이 아니다”라며 “무한경쟁을 뚫고 좋은 직장에 들어온 강자 또는 우수한 인자들”이라고 분석했다. 엄 위원장은 “좋은 직장에 들어온 이들에게 지사적 태도를 요구하는 것이 힘든 시대가 됐다”며 “그만큼 저널리즘에 대한 교육과 자기 환골탈태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만 일단 입사하면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나꼼수 각광은 KBS MBC 붕괴의 씨앗”=이처럼 MBC와 KBS 등 공영방송인 스스로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능이 거세된 채로 새로운 권력을 다시 맞게 되면, 그 때가서 아무리 변해도 소용이 없다는 경고도 나온다.

엄경철 KBS 새노조위원장은 “KBS 등 공영방송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정상이 아니라고 느끼고 있고, ‘나꼼수’가 각광을 받는 것은 현재 방송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지난 3년 여 동안 KBS 구성원도 반성했지만, 시청자 역시 ‘더이상 KBS에 기대할 것이 없다’는 반성을 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엄 위원장은 “이는 공영방송 붕괴의 근본적인 씨앗”이라며 “엄청난 위기”라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