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은 그 어느 해 보다도 언론 관련 이슈가 더 많이 쏟아졌다. 신문과 방송산업 모두 성장의 한계에 직면해 새로운 수익모델 찾기에 분주한 가운데 종합편성채널이 출범했고 광고시장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미디어렙법 처리를 둘러싼 치열한 신경전이 계속됐고 지상파와 유선방송사업자들 사이에 벼랑 끝 치킨 게임도 지리멸렬한 대립을 계속했다. 통신회사들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주파수 자원까지 넘보는 상황이다. 주류 언론의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하고 있는 가운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부상하고 트위터와 팟캐스트 같은 대안 미디어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주류 언론이 무너진 자리에 독자들은 새로운 공론장을 구축하고 있다. 그 어느해 보다도 파란만장했던 2011년 미디어 10대 이슈를 꼽아본다. <편집자 주>

1. 종합편성채널 출범

12월1일 동시에 개국한 조선·중앙·동아·매경 종합편성채널과 연합뉴스의 보도전문채널은 특혜의 산물이었다. 대표적인 ‘MB악법’으로 꼽히는 미디어법을 근거로 끝내 출범한 종편은 개국 전부터 황금채널 배정과 의무재송신, 광고 규제 완화 등의 각종 특혜를 약속 받았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고비 때마다 직접 종편의 ‘밥그릇’을 챙겨주러 나섰다. 올 해 1월 중순과 12월 초, 대기업 광고담당 임원 등을 불러 모아 광고비 지출을 독려하고, 10월 말에는 종편과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와의 채널 배정 협상에 개입했다는 논란을 일으킨 게 대표적이다. 야당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해 종편을 ‘원점에서 재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2. 미디어렙법 표류

   
 
 

미디어렙법은 문방위가 1년 내내 풀지 못한 ‘숙제’였다. ‘언제까지 처리하겠다’는 여야의 약속은 번번이 부도수표가 됐고, 입법 공백 상태는 결국 2년 넘게 이어지게 됐다. 여야 의원들은 논리적·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토론해 결론을 내기 보다는 ‘거대 언론사 눈치보기’로 일관했다. 합리적 원칙도 없이 각자가 이해관계에 따라 지루한 협상아닌 협상을 이어가는 사이, SBS는 자사 렙을 설립했고 눈치만 보던 MBC도 광고 직접영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연내 합의 처리를 약속했던 여야 간 마지막 약속도 지켜지지 못했다. 지역 방송·신문사나 중소 신문사, 종교방송 등은 끝내 광고시장의 ‘정글’ 속으로 홀로 내던져 졌다.

3. KBS 도청 의혹 사건

 

   
 
 

수신료 인상안의 이해 당사자인 KBS가 민주당 비공개 회의를 도청해, 녹취록을 한나라당에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수신료 인상안을 놓고 여야가 극심한 대립을 이어가던 무렵이었다. 한선교 의원은 6월24일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이것은 틀림없는 발언록, 녹취록이다. 그냥 몇 줄만 제가 읽어드리겠다”며 전날 아침 열린 민주당 비공개 회의 주요 발언을 공개했다. 곧 도청 문건의 전달자로 KBS 기자가 지목됐고,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파장은 컸지만, 의혹은 여전히 ‘의혹’으로만 남았다. KBS와 한선교 의원은 ‘버티기’로 일관했고,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한 의원에 대한 소환 조사는 단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아 경찰의 ‘부실 수사’ 논란이 어김없이 벌어졌다.

4. KBS 수신료 인상 논란

4월 국회에서 통과가 무산된 티비 수신료 인상안은 6월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간 주범이었다. 전재희 위원장은 22일 전체회의에서 “심의과정에서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TV수신료 인상안을 전격 상정했다. 이에 반발한 야당 의원들이 의사봉을 뺏자, 전 위원장은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상정을 선언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수신료 인상이 종편을 위한 ‘광고 나눠주기’의 혐의가 짙다며 공영방송 KBS의 공정성 회복 등을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정부여당은 40% 인상안(1천원)을 밀어붙였다. 도청의혹 사건에 묻혀 결국 수신료 인상안 처리는 무산됐다. 역시 논의 과정에서 합리적인 토론은 찾기 어려웠다.

5. 쫓겨나는 기자들

2011년 한 해에는 유독 쫓겨나는 기자들이 많았다. 경영진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난 부산일보 이호진·국민일보 조상운 기자 등이 첫 사례였다. 모두 사주 일가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취재 현장에서 쫓겨나는 기자들도 있었다.

 

   
 
 

한미 FTA 반대 촛불집회와 ‘나꼼수 콘서트’ 등에서 수없이 많은 기자들이 쫓겨나거나 몸싸움에 휘말렸다. ‘제대로 보도하지 않을 거면서 취재는 뭐하러 하느냐’는 항의에 기자들은 연신 고개를 떨궈야 했다. 시민들의 분노가 취재진에 대한 폭행으로 이어지면서 한편에서는 이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6. SNS 영향력 확산

기존 언론에서 뉴스에 대한 갈증을 풀지 못한 시민들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스스로 의제를 만들어 나갔다. 국내 트위터 사용자는 400만 명을 훌쩍 뛰어 넘으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고, 스마트폰 이용자는 2천만 명을 돌파했다. 조선일보 등의 언론은 SNS를 ‘괴담 유포지’로 지목하며 공세를 펼쳤지만, 이는 오히려 주류 언론들의 위기감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런 가운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국회의 예산 삭감에도 불구하고 ‘뉴미디어정보심의팀’ 신설을 강행해 논란을 자초했다. 방통심의위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친북·종북 게시글을 집중 모니터링 하겠다’고 밝히고 나서 이 같은 논란을 부추겼다.

7. 나는꼼수다 현상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는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었다. 사람들은 1인 미디어에 가까운 팟캐스트를 방송이나 신문 뉴스보다 더 신뢰했다. 나꼼수가 제기한 BBK 의혹, 중앙선관위 홈페이지 공격 사건, 자원외교와 인천공항 민영화 등 여러 사안들은 하나의 여론을 만들어 내어 정치권과 주류 언론을 앞지르기도 했다.

 

   
 
 

한파 속에 11월30일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특별 공연에는 주최측 추산 5만여명의 인파가 몰렸다. 화들짝 놀란 주류 언론들은 나꼼수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나섰지만, 이들은 ‘너희가 더 위험하다’고 맞받았다. 공동 진행자인 정봉주 전 의원이 26일 징역 1년형이 확정돼 구속 수감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기도 했다.

8. 황금주파수 경매

디지털 전환 이후 유휴 대역으로 남게 될 700MHz 주파수 대역 할당 문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활용성이 뛰어난 700MHz 대역의 주파수 할당 문제는 그동안 업계의 뜨거운 이슈였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트래픽 폭증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 온 통신회사들은 노골적으로 이 황금 주파수에 욕심을 냈고 방송업계는 방송용 주파수가 사실상 고갈된 상황에서 700MHz까지 통신업계에 줄 경우 디지털전환 이후 무료 보편적 방송서비스가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4년을 끌어온 이 논쟁은 아직 합의점을 찾지 못한 상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통신과 방송 쪽에 108MHz 폭을 분할 배분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 케이블 지상파 재송신 분쟁

지상파 방송사들과 유선방송 사업자(SO)들의 치킨 게임도 첨예한 이슈였다. 법원이 지상파 방송사들이 SO들을 상대로 낸 저작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자 SO들은 지상파 재송신을 전면 중단을 불사하겠다며 맞섰다. 11월28일에는 SO들이 법원 판결을 따른다는 이유로 디지털 신호를 끊어 770만 가구에 HD방송이 중단되기도 했다.
 

   
 
 

시청자들을 볼모로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비난과 함께 중재에 실패한 방통위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12월 현재 케이블측은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재송신 대가 산정 관련 조정 신청을 한 상황이며, 저작권위는 내년 2월에 양측의 출석을 제안했다. 지상파측은 출석을 검토 중이어서, 내년 초에 재송신 분쟁 협상에 물꼬를 틀지 주목된다. 

10. 장자연과 조선일보

‘장자연 리스트’가 SBS 보도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SBS는 지난 3월 6일 <8뉴스>에서 고 장자연씨가 지난 2005년부터 2009년 사망 직전까지 지인에게 보낸 50여 통의 자필 편지라며 단독 입수한 문건을 보도했다. 고 장자연씨가 성 접대 등의 대상자로 지목한 ‘악마 같은 인사’ 31명 중 11명이 언론계 종사자였다.

 

   
 
 

SBS 보도로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접대 의혹이 다시 불거졌다. 충격적인 뉴스였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 문건의 자필이 장씨의 친필이 아니라고 수사 결과를 밝혔다. SBS는 당일 메인 뉴스를 통해 “사실과 다른 내용을 보도한 것에 대해 시청자들께 사과드린다”고 밝혔고, 이후 보도국장과 사회부장이 교체돼 후속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 단체들은 장씨의 석연치 않은 죽음에 대한 진실 규명을 촉구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