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 여론장악 시대가 저물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관심을 집중시켰던 ‘SNS 바람’은 2011년을 강타했다. 4·27 재보선 강원도지사 선거, 10·26 재보선 서울시장 선거에서 범야권 후보가 한나라당을 꺾고 승리한 원인으로 SNS를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 2012년 ‘선거의 해’를 맞아 SNS 바람은 더욱 거세게 불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SNS 여론’이 선거흐름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부각될 것이란 얘기다. / 편집자 주

‘정치 무관심’은 기득권 정치의 원동력이다. 그들 입장에서 정치 사회 경제 언론 등 주요 분야에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권력의 카르텔을 유지하려면 국민은 정치를 혐오해야 하고 멀리해야 한다. 주요 선거에서 투표율은 50% 안팎에 머물러야 하고, 20대 투표율은 20~30% 언저리에 머물러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들이 원하는 세상, 그들만의 리그가 공고히 유지된다.

SBS 인기 사극 <뿌리 깊은 나무>에서 오랫동안 권력의 중심축이었던 ‘밀본’이 총력을 기울여 한글 창제를 막았던 것도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서는 깨어 있는 백성이 늘어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실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정치를 멀리하고 혐오하는 상황이 바뀐다면 ‘기득권 정치’는 뿌리부터 흔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2011년은 한국정치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정치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심지어 선거참여를 귀찮아했던 이들이 ‘정치 관심 세대’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열풍은 SNS 바람과 맞물려 한국 정치에 변화의 씨앗을 뿌렸다. 

특히 주목해야 할 대목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로 상징되는 보수신문과 정권친화행태를 보여 온 방송사가 ‘선거여론’을 장악하던 시대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에 조중동이 보도하고 저녁에 방송사가 뒤따르면서 선거여론이 형성돼왔다. 

 

선거뉴스부터 여론조사 보도까지 그들이 결정하는 대로, 원하는 대로 여론은 움직이기도 했다. “대통령도 우리가 만든다”는 일부 언론의 오만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나꼼수’ ‘SNS’ 열풍은 기존의 틀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민주당이 야권 단일후보 경선에서 ‘정치신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일격을 당한 점이나 서울시장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범야권 단일후보인 박원순 후보에게 완패한 것은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다. 그 중심에 나꼼수와 SNS가 있다.

서울시장 선거결과가 나온 직후인 10월 2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인영 당시 최고위원은 “기존의 매스미디어를 능가하는 SNS 등장은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진보적인 유권자들 못지않게 IMF 이후에 자신의 삶의 문제를 들고 나오는 새로운 유권자 집단의 출현”이라고 진단했다.

보수언론이 움직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 보도’ 등을 통해 여론의 흐름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다. 일부 인터넷 포털사이트까지 그 흐름에 동참하면서 그들만의 대세몰이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나라당 후보에게 불리한 현안은 감추거나 물 타기를 하던 전통적인 방식은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혔다. 언론이 감추는 비밀이 ‘나꼼수’를 통해 폭로되고 SNS를 통해 확대 재생산됐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 내곡동 사저 논란,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강남 고급 피부클리닉 이용 의혹 등이 대표적이다.

언론이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스마트폰 보급 확대로 누구나 중요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공유하는 시대가 돼 버렸다. 정부·여당 쪽에서는 SNS 규제로 대응했다. 이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참여연대는 서울시장 선거 직후 성명에서 “선관위를 풍자와 조롱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낳은 것은 트위터 등 SNS까지도 규제하는 구시대적 선거법과 선관위의 정치적 처신으로 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정부 대응 기조는 서울시장 선거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꼼수 멤버들은 경찰 소환 대상이 됐고, 맏형인 정봉주 전 국회의원은 대선 과정에서 벌어졌던 BBK 의혹 제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확정 판결 받아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대법원이 3년 넘게 끌던 사건을 갑자기 마무리하자 의문은 이어졌다. 권력자에 대한 명예훼손 논란이 벌금형도 아니고 징역형으로 이어지자 미국 ‘워싱턴 포스트’, 영국 ‘이코노미스트’ 등 각국의 주요 언론인들이 한국 현실을 비판하는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 서울특파원 ‘다니엘 튜더’ 기자는 <중앙SUNDAY> 칼럼에서 “정봉주 전 의원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은 최악의 자책골”이라며 “이명박 정부와 한국법률 체계를 비판하는 이들에게 그보다 더 좋은 비판 소재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꼼수 제재 움직임은 오히려 시민저항의 불씨를 당긴 측면도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이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자진 출두한 12월 26일, 수천 명의 지지자가 그를 배웅했다. 죄를 짓고 감옥에 갇히는 존재라기보다는 ‘양심수’로 평가받는 분위기였다. 정봉주 전 의원은 “지금은 우리가 진 것처럼 보이지만 이길 날이 머지않았다. 오늘은 진실이 갇히지만 내일은 거짓이 갇힐 것”이라며 “정봉주가 구속됨으로 인해 BBK 판도라 상자가 국민 여러분께 열렸다”고 말했다.

2012년은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을 함께 치르는 ‘선거의 해’이다. 정부는 SNS 통제에 나서고 있지만, ‘정봉주 구속’이 역풍을 불러온 것처럼 권력의 의지대로 여론을 제어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중동은 ‘종편’까지 보유했다는 점에서 신문과 방송을 통해 선거여론을 이끌고자 하겠지만, 스마트폰에 익숙한 20~40대는 SNS를 통해 선거 정보를 취득할 가능성이 크다. 조중동이 여론 흐름을 장악해 그들의 의도대로 선거를 이끌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얘기다.

송경재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는 “의제설정 측면에서 올드 미디어는 여전히 위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 보수미디어가 의제 해석을 주도했지만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SNS 영향력 확대에 따라 시민이 보수언론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의제를 재해석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라고 말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개그 프로그램’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KBS 인기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 개그맨 최효종씨가 정부와 정치인 등에 대해 위트 섞인 비판을 하자 시민은 열광했다. 최효종씨는 그 일 때문에 현직 국회의원에게 고소까지 당했지만, 그를 격려하는 시민이 훨씬 많았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장 출신인 민주통합당 조배숙 의원은 강용석 의원이 최효종씨를 모욕죄로 고발하자 당시 이렇게 지적했다.

“여의도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따가운 마당에 풍자개그를 개그로 받아들여 주지 못하는 정치의 포용력과 너그러움이 아쉽다. 서민을 위해서 제대로 된 정치를 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라디오에서 이런 논평을 했다. 강 의원이 너무 억울하면 ‘최효종이 국회의원 출마하고 강용석이 개그를 해라’라는 것이다.”
 
TV뉴스는 정권에 불리한 소재는 외면하고 연예인 소식 등을 비중 있게 전하면서 연예프로그램과 경쟁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종합편성채널은 개국하자마자 지상파 방송사들의 ‘못난 뉴스’ 대열에 합류했다.

             

조선일보 종편인 ‘TV조선’은 12월 1일 개국 특집으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인터뷰를 전하면서 자막에 ‘형광등 100개를 켜놓은 듯한 아우라’라는 자막을 넣어서 관심을 끌기는 했다.  TV조선의 ‘형광등 아우라’ 자막은 입방아를 자초하며 한동안 개그 소재로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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