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면서 20세기를 위협해 온 냉전체제도 종식되었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군비증강도, 인류 전체의 생존권을 위협해 온 핵무기의 개발도 따라 종식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고 더 이상 대규모 전쟁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중동에서는 걸프전이 일어났고 발칸반도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이어졌다. 아프리카에서도 끊임없이 총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각 전쟁에는 어김없이 미국이 등장했다. 냉전 종식이후 할 일이 없어진 미국은 ‘세계의 경찰’이란 감투를 스스로 쓰고 살인행위, 폭력행위는 물론, 단순 몸싸움에까지 물대포를 쏘아댔다.

그렇게 경찰놀이 삼매경에 빠진 미국 본토가 공격을 당했다. 21세기가 시작하는 해 2001년 9월 11일의 일이었다. 잔인한 일이었고 미국은 즉각 피의 보복을 시작했다.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가 지목되었고 그들이 숨어있던 아프가니스탄이 표적이 되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이 붕괴되자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포문을 돌렸다. 그는 북한과 이란, 그리고 이라크를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불렀다. 그의 포문은 악의 축, 이라크 후세인 정권을 향했다.

이라크 전쟁은 21세기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냉전이 끝나고 각 지역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했던 내전들도 어느 정도 일단락되자 21세기 전쟁은 미국과 일부 아랍세력 사이로 옮겨 붙었다.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으로 명명했지만 공격의 대상이 된 아랍의 국가들은 아직도 체제의 불안정에 떨고 있다.

이라크 전쟁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사건이다. 한국은 자이툰 부대 등 전투부대를 이라크 현지에 파병했으며 이로 인해 국가 여론은 양분되었다. 우리는 개인 기업 소속으로 이라크에 파견되어 통역을 하고 있던 김선일씨의 한 맺힌 죽음을 목도했으며 테러의 대상에서 우리 역시 자유롭지 못함을 깨달았다. 미국에 의해 악의 축으로 지목된 북한은 이라크 전쟁 이후 적극적으로 중국과의 외교전선을 넓히기 시작했고 이는 남북관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중요한 이라크 전쟁이지만 정작 신문 외에 그 전개과정을 살펴볼 길이 없다. 이근욱 서강대학교 국제정치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이라크 전쟁 : 부시의 침공에서 오바마의 철군까지>는 이러한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신간이다.

   
 
 

저자는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이라크 전쟁의 기원에서부터 전개과정을 지속적으로 추적한다. 미국의 이라크 침입과 후세인 정권의 붕괴, 그리고 시작된 이라크 내전과 계륵이 된 이라크를 놓고 고심하는 미국, 그리고 최근 오바마의 철군 결정까지 시간 순으로 추적하면서 이라크 전쟁의 실상을 그대로 담았다.

저자는 이라크 전쟁을 정치적, 군사적 기준으로 정리하면서 이라크에 얽혀있는 다양한 종족과 종파에 대해 세부적으로 풀어냈다. 이와 더불어 이라크 전쟁의 미시적 사건에 대한 추적을 거시적 맥락과 연결시키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국내에는 이와 관련된 자료가 변변한 것이 없음을 감안하면 저자의 노력과 정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이라크 전쟁에 대해 특별한 해석을 자제하는 모습이지만 중간 중간 “잘못된 판단”, “부시 행정부의 무능”, “미국이 누렸던 긍정적인 측면은 사라졌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이라크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일부 드러낸다.

그도 그럴 것이 부시 행정부가 단언했던 전쟁의 명분, 대량살상무기는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라크 포로에 대한 미군의 가혹행위와 고문, 학대는 끔찍할 정도였다.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미국이 했다고 하기엔 드러내놓고 야만적인 행위들이 사진과 동영상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미국은 막대한 예산을 이라크에 쏟아 부었고 이라크에 파병된 미군들은 오히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비록 목표였던 후세인을 제거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성공적인 철수를 명령했지만 21세기 들어 지속된 전쟁동안 미국과 이라크에서 발생한 인명손실, 사회적 비용을 따지면 이라크 전쟁은 ‘그럴싸하게 미국이 패배한 전쟁’이라 불러도 과언은 아니다. ‘세계의 경찰’ 미국은 얼음장처럼 추운날 누구를 막론하고 물대포만 쏘아댔지만 진압도 못하고 시위대에 한 대 걷어차이고 돌아간 꼴이다. 문제는 미국이 휘저어 놓고 간 그 자리에 이라크 주민들은 공포 속에서 살아야 하며 언제 어디서나 내전이 촉발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였다는 점이다. 아직 이라크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의 편견으로 시작된 전쟁은 부시 행정부의 무능으로 적절하게 수습되지 않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된 2003년 3월 침공에서 2010년 12월까지 이라크 전쟁으로 생명을 잃은 이라크 민간인만 1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여기에 이라크 보안군 전사자와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 전사자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본문 3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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