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봐도 잘못된 신념이나 사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신념이 사회적으로 퍼져있는 당시에는 적어도 ‘논쟁적’이다. 인종차별이 그랬고, 파시즘과 나치즘이 그러했다. 인종차별은 기독교 원리주의와 결합하여 논리성을 갖추려 했으며, 파시즘과 나치즘은 집단광기였음에도 민족주의와 맞물려 개연성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는 어떠한가. 논쟁은 사그라들고 그 안의 비논리성과 폭력성은 인류에게, 그것이 자행된 국가에 큰 교훈을 안겨주었다.

대중 문화 콘텐츠에서 ‘소재’로 다루어 진다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구축되었을 때 가능하다. 그것은 곧 그 나라의 문화적 수준이기도 하다. 설사 그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과거 또는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는 폭력과 증오를 사회적으로 ‘논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회적 문제가 개인의 분노가 되고 그 피해자는 제일 약자

   
31일 부산에 모인 희망버스를 저지하기 위해 부산에 모인 어버이연합 회원들.
 
에드워드 노튼의 1998년작 <아메리칸히스토리X>는 미국 내에서 자행된 유색인종을 대상으로한 백색테러를 소재로 한 영화다. 흑인 강도로 아버지를 잃은 데릭(에드워드 노튼)은 그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백인우월단체 'DOC'에 들어가 흑인들에게 테러를 일삼는다.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 온 흑인들을 잔인하게 살해한 데릭은 감옥에 들어간다. 그는 감옥이라는 또다른 사회에서는 유색인종이 시스템을 장악한 ‘우익’이고 백인들이 차별과 폭력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배신으로 인해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백인중심의 가치가 무의미하며 오히려 자신을 병들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곳에서 같은 백인들의 배신과 잔혹함을 경험한 데릭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던 유색인종에 대한 증오와 편견을 버리게 되지만, 자기 대신 'DOC'에 들어간 대니를 잃고 만다.

‘백색테러’는 극우집단의 정치적 폭력을 뜻한다. 극우집단의 테러는 기득권층에 의해 자행될 때가 많으며 소수자, 비주류를 그 폭력의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아울러 모든 폭력이 그렇듯, 소통의 거리를 멀게하고 결국 자신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폭력과 증오를 개인의 일탈적 행동으로만 볼 수는 없다. 데릭의 비뚤어진 가치관이 아버지의 죽음에서 기인한 것이듯, 테러는 개인적 피해를 사회가 제대로 감싸안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것은 곧 사회적 증오로 연결된다. 특히 힘없는 여성, 소수민족, 노동자 등 법적 보호망 외부에 있는 ‘손쉬운 분노’의 대상에게 폭력은 집중된다. 그리고 폭력의 주체는 자신이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에 잠깐이나마 안도한다.

가해자 또한 피해자라는 역설…공존과 멀어진 대한민국

하지만 감옥에서, 거기서 나온 후에 데릭이 그랬듯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자신이 행했던 폭력은 되돌아온다. 정리해고의 그림자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으며, 고정적인 ‘법의 잣대’가 아닌 유동적인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결사, 표현과 같은 헌법적 자유는 철퇴를 맞으니 말이다. 증오와 편견은 사회 뿐 아니라 자신 또한 병들게 만든다. <아메리칸히스토리X>는 미국의 역사가 ‘폭력의 역사’ 였음을 증언한다. 그리고 가해자의 시선으로 영화를 구성, 가장 큰 피해자는 폭력을 당한 대상이 아닌, 그것을 자행한 주체임을 보여준다.

   
'아메리칸 히스토리 X'
 
만약 ‘코리안히스토리X’가 만들어진다면, 폭력의 역사가 어떻게 구성될 것인가. 어느 입장에 서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 그 증오와 편견이 히스테릭하게 표출되며 그것이 왜 폭력으로 변화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영화에서 데릭은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가난한 백인’ 일 뿐이었다. 그 폭력을 자행한 사람 또한 시대의 피해자라는 사실에 공감한다면 “말이 안통한다” 식의 무조건적인 비난보다 왜 최근 들어 ‘백색테러’가 난무하는지 사회적 논의는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아메리칸히스토리X>의 시작과 회상장면은 흑백으로 처리되어 있다. 다른 두 색깔의 ‘공존’을 뜻하는 것이다. 당연한 교훈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이 교훈이 너무 희귀한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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