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말께였던가. 나는 몹시 지리멸렬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IT 기자란 직함을 달고 생활한 지 7년째. 세상은 너무나도 빨리 변하고 있었다. 웹 세상은 거대한 변화 물결로 술렁였지만, 내가 맡은 경제주간지 지면은 답답하기만 했다. 언제나 정해진 분량과 틀에 짜인 문체를 고집하길 요구했으니까.

주간지뿐이랴. 어딜 둘러봐도 비슷한 주제와 논조를 담은 기사들이 쏟아지곤 했다. 나는 부끄러웠다. 언론사가 ‘기사 주물공장’인가. 살아갈 날은 까마득한데, 일상의 틀은 견고했다. 어디서든 변화의 물꼬를 트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변화는 그렇게 찾아오는 법이던가. 2006년 1월, 여의도 한 카페에 앉았다. 한때 팀장으로 모셨던 선배가 말했다. “우리, 부끄럽지 않은 IT 전문 인터넷신문 한 번 만들어볼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똑같은 고민과 아쉬움으로 밤을 새웠을 선배의 마음이 뭉클 밀려왔다. 월급 통장에 찍히던 금액이 얼마나 깎일 지를 고민하는 건 사치였다.

그렇게 2006년 9월 ‘블로터닷넷’(Bloter.net)이 닻을 내렸다. ‘블로터’는 블로거(Blogger)와 기자(Reporter)를 합성한 말이다. 블로거의 정보수집력과 기자의 현장 취재력을 잘 버무린 글을 써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웹사이트도 아예 블로그 기반으로 띄웠다. 국내 첫 ‘블로그 미디어’가 태어난 게다.

블로터닷넷은 기자로서의 양심을 믿어보기로 했다. 대량으로 찍어내는 기사는 싣지 말자. 매체 성격과 무관한 혐오성 광고는 사절하자. 무엇보다 기사 본문을 광고나 다른 돈벌이가 가리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당시 결심을 어렴풋이 돌아보면 대략 이랬다.

어디 출발부터 순탄했겠는가. 첫 1년은 악전고투였다. 현실은 기자 경력이나 브랜드를 생존을 보장하는 든든한 담보물로 취급하려들지 않았다. 월급이 밀리고 밥 대신 라면으로 때우는 나날이 늘었다. 든든한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고, 7년을 꼬박 모은 돼지저금통을 털어 구멍난 가계를 메우기도 했다.

유혹도 적잖았다. “그 정도면 됐어. 이제 우리에게 맡기지.” 눈 앞의 목돈에 잠시 흔들린 적이 한두 번이었던가. 무엇보다 마음을 다잡는 일이 힘들었다.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너무 무모하고 순진한 실험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변화는 또 그렇게 찾아왔다. 2년이 지나고 3년째로 접어들자, ‘블로터’란 이름을 주변에서 듣는 날이 슬금슬금 늘었다. 꾸준히 응원해준 독자들이 하나둘 ‘커밍아웃’하고, 블로터 가치를 믿고 조건없이 후원을 해주는 지인들이 생겨났다. 무엇보다 “블로터 기사는 믿을 만 하다”란 말을 듣는 건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행복이었다. 피로회복제는 약국이 아니라 당당하고 자신 있는 글 속에 있었다.

이제 꼬박 5살. 블로터닷넷에서 적잖은 실험을 해왔다. 창간을 준비할 때부터 블로터닷넷 기사는 저작권 위반 걱정 없이 누구나 퍼갈 수 있게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최소한의 조건을 지키고 누구나 쓸 수 있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L)를 기사에 적용했다. 국내 언론사 가운데는 처음이었다.

‘소셜댓글’도 블로터닷넷이 주도한 실험 가운데 하나다. 2010년초 블로터닷넷은 하루평균 방문자가 10만명이 넘으면서 ‘제한적 본인확인제’ 적용 대상으로 선정됐다. 실명 인증을 받아야 기사 덧글을 달 수 있다는 뜻이다. 블로터닷넷은 고민 끝에 덧글 기능을 막았다. 인터넷에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의사 표현이 꼭 실명 인증을 거쳐야 이뤄진다고는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2010년 7월, 블로터닷넷은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계정으로 기사 덧글을 달 수 있는 소셜댓글을 적용했다. 역시 언론사 가운데 처음이었다.

   
이희욱 블로터닷넷 소셜웹팀 기자
 
그 동안 블로터닷넷이 생산한 기사들도 여러 경로로 퍼졌다. 트위터나 페이스북엔 블로터닷넷 글이 웹사이트와 동시에 올라간다. 국내 주요 포털도 정식 ‘뉴스’ 코너에 블로터닷넷 글을 싣는다. 내로라하는 기성 언론사 틈에서 IT 전문 기사로 당당히 평가받는 일, 5년 동안 수줍게나마 노력한 결실이 조금씩 맺히는 모양새다.

부끄럽지 않은 인터넷신문을 만들겠다는 블로터의 실험은 아직 진행중이다. 한국 언론 환경에서 콘텐츠로 독자 생존할 수 있는 미디어가 나올까. 나 역시 답은 모른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안다. 기사에, 수익에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심이 판단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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