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목적으로 도청을 했더라도 명백한 불법행위이고 취재윤리에 위배된다. 특히 이를 다른 당에 흘린 행위는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

동아일보는 6월 27일자 지면에 <민주당 최고회의 도청 의혹 반드시 진상 밝혀라>라는 사설을 실었다. 동아는 왜 ‘취재 목적으로 도청을 했더라도 명백한 불법행위’ ‘다른 당에 흘린 행위는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 등의 입장을 밝혔을까. 중요한 대목이다.

동아의 이날 사설 내용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의 ‘녹취록 문건’을 입수했다고 밝힌 당일 지면에 내보낸 사설이기 때문이다. 동아는 27일자 4면에 문제의 녹취록 문건 내용을 공개했다.
A4용지 7장짜리의 ‘민주당 연석회의 발언록’이라는 문건이다.

한선교 의원은 지난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날 있었던 민주당 최고위원-문방위원 비공개 회의(KBS 수신료 관련) 내용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 인물이다. 한선교 의원은 이날 “이것은 그 틀림없는 발언록 녹취록이다. 그냥 몇 줄만 제가 읽어드리겠다”고 말했다.

한선교 의원이 문제의 녹취록 내용을 읽어내려 간 이후 민주당 쪽에서는 화들짝 놀랐다. 민주당 KBS 수신료 전략을 짜기 위해 마련된 비공개 회의 내용이 발언자의 토씨까지 틀리지 않은 채 옮겨졌기 때문이다.

   
간사인 김재윤 의원(맨 오른쪽)과 홍영표 원내대변인이 지난 26일 영등포 경찰서에서 국회 당 대표실 불법도청과 관련 수사의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3일 KBS 수신료 전략회의는 언론인(촬영기자 사진기자 취재기자 등)도 회의 전 스케치만 취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회의는 민주당 최고위원과 문방위원, 최소 당직자(대표 비서실장, 문방위 전문위원, 녹음 담당자)만 참여한 회의로 언론은 당시 어떤 내용이 오갔는지 구체적 발언은 확인할 수 없었다. 

민주당은 ‘도청’ 가능성에 주목하며 조용히 확인작업에 들어갔다. 24일 오후 김재윤 민주당 문방위 간사는 ‘도청’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론에 알렸고, 김진표 원내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민주당 쪽에서 흘러나간 자료가 아니라는 ‘확신’이 바탕에 깔려 있었고, 곧바로 경찰 수사를 요청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경찰 수사를 진행해도 불리할 게 없다는 판단이었다. 실제로 비공개회의 녹음을 한 당직자는 한선교 의원이 문방위 전체회의에서 녹취록을 공개했을 때는 민주당 쪽에서 녹취록을 풀지도 않은 상황이라고 증언했다.

민주당은 녹취록을 만들지도 않은 상황에서 한선교 의원이 녹취록을 입수해 공개했다는 주장이다. 민주당은 공식 회의를 하게 되면 녹음을 한 뒤 영등포 당사로 가져가 녹음기를 보관한다. 영등포 당사는 외부 출입구와 건물 출입구에 경찰이 2중으로 검문을 하는 곳으로 누군가 그곳에 침입해 녹음기를 탈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민주당 설명이다.

그렇다면 한선교 의원이 “틀림없는 녹취록”이라고 주장한 그 문건, 동아일보가 입수했다는 그 문건은 누가 어떤 이유로 어떻게 만들어서 한나라당 쪽에 전달한 것일까. 민주당은 한나라당 쪽을 압박하면서도 제3자 개입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실제로 한나라당 의원이  녹음장치를 이용해 민주당 대표실에 도청을 시도하는 것은 ‘보는 눈’ 때문에 불가능에 가깝다. 

민주당 대표실 회의가 있을 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이들은 민주당 의원과 당직자, 출입기자들이다. 동아일보는 왜 사설을 통해 “취재 목적으로 도청을 했더라도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했을까. 문제의 녹취록을 입수한 동아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흘려듣기 어렵다. 동아의 보도 다음날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나섰다. 조선은 28일자 4면에 <민주 “이해관계자가 당 대표실에 마이크 댄 듯”>이라는 기사에서 “이 문제(KBS 수신료 인상)에 대해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집단이 (회의장에) 마이크를 댄 것 같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는 민주당 핵심 관계자 얘기를 전했다.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한선교 의원은 조선과 인터뷰에서 “내가 도청을 했다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배수진을 치면서도 “중간에 녹취록을 준 사람은 한나라당 쪽은 아니고 신뢰할 만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한선교 의원이 직접 도청을 했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없다. 한 의원이 주장한 ‘틀림없는 녹취록’을 전달한 제3자, 그가 누구인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한겨레도 28일자 5면 <한나라서 했나 제3자가 했나>라는 기사에서 “이번 사안이 주목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수신료 인상안’ 국회통과를 놓고 여러 언론사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점이다. 수신료 인상 여부는 종합편성채널 광고시장 등과 긴밀히 연관돼 있어 이해가 달린 언론사들이 각별한 관심을 기울인 회의였다”고 설명했다.

조선은 이해관계자를 언급했고, 한겨레는 이해관계자가 언론사일 수 있음을 설명했다. 이는 동아가 사설에서 밝혔던 “취재 목적으로 도청을 했더라도 명백한 불법행위이고 취재윤리에 위배된다. 특히 이를 다른 당에 흘린 행위는 어떤 변명도 통할 수 없다”는 지적과 맥을 같이하는 내용이다. 정말 언론인이 개입했을까, 아니면 다른 제3자가 개입했을까. 그는 왜 ‘KBS 수신료’를 둘러싼 민주당 비공개 전략회의 내용을 ‘KBS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한나라당 쪽에 넘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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