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 처리 움직임을 보이는 한나라당에 맞서 국회 문방위 회의장에서 점거농성 중인 야당 국회의원들에 대해 9시 메인뉴스를 통해 일방적으로 비난하고 나서 ‘공영방송’ KBS가 이제는 공공재인 전파마저 사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KBS가 KBS 수신료(TV수신료) 인상안을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일방적으로 비난한 것이다. 방송심의규정에는 방송사업자가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에 대해 일방의 주장을 전달해 시청자를 오도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취재과정에서도 회의장 점거에 나선 민주당 의원들에게 6대의 카메라를 동원, ‘겁박조’의 질문을 하는가 하면, 원내대표실 입구에 카메라까지 설치하는 등 도를 넘은 행태를 한 데 이어 이렇게 취재한 것을 근거로 방송에 내보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악의적 보도로 보고 법적인 것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대응해나갈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현 수신료 징수방식인 전기료에 통합고지하는 '통합징수'방식에서 법을 개정해 '분리징수'하는 방식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28일 밤 방송된 KBS <뉴스9>
 
KBS는 28일 <뉴스9>에 ‘민주당 합의파기 회의장 점거’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네 번째 뉴스로 방송했다. KBS는 “민주당이 오늘 상임위에서 TV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하기로 한 약속을 깨고 회의 자체를 힘으로 막았다”는 민경욱 앵커의 멘트를 시작으로, 최문종 기자의 리포트를 통해 지난 22일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28일 표결처리 합의사실을 제시한 뒤 ‘수신료 인상안을 처리할 예정이었던 오늘(28일) 민주당 의원들이 위원장석을 점거하고 회의를 열지 못하도록 막았다“고 주장했다.

KBS의 최 기자는 또한 여야가 27일 물리력을 동원해 위원장석을 점거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며 “하지만 민주당은 단 하루 만에 보란듯이 이런 약속을 무너뜨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에서 원내대표간 합의를 파기했다’는 노영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인터뷰를 내보냈다.

KBS는 노영민 부대표의 인터뷰에 이어 “필요에 따라, 상황에 따라, 약속을 깨고, 말을 뒤집는 가운데 국회 운영은 무력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원내대표간 합의가 무엇이었는지, 왜 민주당이 앞선 22일의 합의를 파기했는지, 왜 민주당이 점거농성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글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특히 한나라당이 27일 문방위 전체회의에 여야간사간 협의도 없이 ‘수신료 인상안’을 의안상정해 ‘날치기’(강행)처리할 움직임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라는 설명 역시 없었다. 또한 여야 원내대표가 지난 21일 ‘수신료 인상안 처리 등은 여야 간사간 합의를 통해 한다’고 합의한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른바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근거만 골라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 처리를 반대하는 민주당을 비판하는 데 뉴스전파를 사용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28일 밤 방송된 KBS <뉴스9>
 
이에 대해 민주당은 29일 이번 보도와 함께 전날 KBS의 과도한 취재공세에 대해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KBS의 보도에 대해 “언론의 횡포”라며 “KBS가 예로 든 ‘국회선진화법’의 취지는 날치기와 일방적인 직권상정을 못하도록 한 법안이다. 한나라당 소속 전재희 문방위원장이 강행처리 입장 밝혔기 때문에 나온 불가피한 실력행사이며 원인제공자가 전 위원장이라는 최소한의 반론조차 상실한 보도”라고 비판했다.

홍 대변인은 “원인제공자인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무조건 민주당만 비난하는 것은 자기 이익을 위해 KBS가 의도적으로 편파방송을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필요와 상황에 따라 약속을 깨고 말을 뒤집었다는 KBS의 주장에 대해 홍 대변인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법안소위 날치기, 원내대표 합의후 잇단 날치기 시도의 경위에 대해 전혀 설명도 없는 악의적이고 왜곡된 주장”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언론중재위 신청과 방통심의위 심의신청 등 법적인 대응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KBS 취재진의 전날 과도한 취재에 대해서도 홍 대변인은 “너무나도 황당한 일이었다”며 “원대대표실 앞에 CCTV설치하듯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이 취재인가. 이건 명백한 협박이다.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며 “이런 막가파식 취재와 방송을 하는 공영방송에 대해 이미 ‘법을 개정해 수신료 통합징수 대신 분리징수를 하자’고 제안한 민주당 의원들도 있다.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본분조차 잃고 협박하는데 묵과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문방위 간사인 김재윤 의원도 KBS의 취재 보도태도에 대해 “한나라당이 입장 바꾸는 것은 괜찮고, 야당이 날치기 막는 것만 잘못이냐”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KBS는 한나라당과 밀월관계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보도사례”라고 비판했다.

   
지난 28일 오후 문방위 회의장을 점거한 민주당 의원들에게 공세적으로 질문하고 있는 KBS 기자들.
이치열 기자 truth710@
 
KBS의 이번 민주당 비판 보도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9조 3개항과 12조 1개항에 저촉될 가능성이 있다. 심의규정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된 사안을 다룰 때엔 공정성과 균형성을 유지해야 하고 당사자 의견을 균형있게 방영해야 하고(9조 2항) △제작기술 또는 편집기술 등을 이용, 대립된 사안이나 특정인이나 특정단체에 유리하거나 사실을 오인하게 해서는 안된다(9조 3항)고 밝히고 있다.

또한 KBS 수신료와 관련해 이같은 보도를 한 것과 관련해 심의규정은 ‘당해 사업자 또는 그 종사자가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사안에 대해 일방의 주장을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를 오도해서는 안된다’(12조 4항)고 규정했다. 심의규정 12조 2항엔 “정치문제를 다룰 때 특정정당이나 정파의 이익이나 입장에 편향돼서는 안된다”고 돼있다.

KBS는 이에 대해 취재와 보도 모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KBS 홍보실은 협박에 가까운 과도한 취재라는 비판에 대해 29일 저녁 “국민의 관심사인 TV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취재 중 여야간 표결 처리하기로 한 합의와, 그 합의가 파기된 사안은 취재가치가 높은 것으로 정치권을 상대로 취재하는 것은 정당하다”이라고 답했다.

KBS는 또한 9시뉴스에서 자사이익을 위해 전파를 사유화하고 악의적으로 편파보도했다는 지적에 대해 “합의를 깬 정치권의 입장과 정치권이 물리력을 동원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기로 합의한 상황에서 위원장석 점거 등 물리력에 대한 취재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30년만의 수신료 인상안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있게 된 것 역시 기사의 밸류가 큰 것”이라며 “이같은 국민들의 관심사를 여야의 입장을 두루 취재해 정당하게 보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 의원들의 문방위 회의장 점거는 회기 마지막날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김재윤 의원은 “한나라당이 오늘 오후까지 수신료 인상안에 대한 입장을 밝혀주지 않을 경우 문방위 점거 농성은 오는 30일 임시회의 회기 마지막날까지 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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