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 농사를 시작하게 되면 반드시 해야될 큰 일이 두가지다. 하나는 씨앗 뿌려 어린 모를 잘 기르는 일이고, 또 하나는 밭 준비다. 모종 농사법은 씨앗을 밭에 바로 파종하는 경우가 있고 또 모판에 육모하여 이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느 경우나 어릴 때 잘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지사 두말하면 잔소리가 될 것이다. 모 잘 키우는 것이 1년농사의 반이라고 한다. 잘못 키우거나 냉해를 입어 '싹수가 노랗다'는 말처럼 되면 안된다.
 
2,3,4월의 봄 날씨는 어느 날은 따뜻했다가 겨울이 다시 오는가 걱정들 정도로 기후 변화가 심하고 봄비 오는가 하면 눈 내리고 일교차도 크다. 우뻑지뻑한 날씨에 육묘장의 온도관리를 잘못하면 동해를 입거나 농사를 망칠 수 있다. 지금 농촌에서는 봄 작물을 밭에 심거나 비닐하우스 안 육모장에서 밭에 내다심을 모종을 정성껏 기르고 있다. 밭에 심은 작물은 비닐로 덮고 육모장에는 보온덮게와 비닐을 밤낮으로 덮고 벗겨준다.  

   
감자심는 풍경. 남자2명 여자7명이 역할분담하여 작업하고 있다. 가끔 아주머니들 웃는 소리가 들린다.
 
밭 준비는 지난해 농사지어먹은 밭을 올해 농사질 수 있도록  작업을 해 놓는 일이다. 거름 뿌리고 로타리 치고 두둑을 만드는 일이 주된 일. 이 일을 마치면 밭 준비는 된 셈이다. 지금 심는 작물은 감자가 많은데 준비된 밭에 씨감자를 넣고 비닐로 두둑을 덮는 일이 한창이다. 봄날 마주치는 아름다운 정경이다. 

감자심는 풍경. 남자2명 여자7명이 역할분담하여 작업하고 있다. 가끔 아주머니들 웃는 소리가 들린다.
 
올해 농사질 밭이 천 평 늘었다. 지난해 지은 밭은 이미 일찍 밭 정리를 마쳤지만 이 밭은 밭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서둘러 작업해야 했다. 지난 해 옥수수와 배추를 심은 밭인데 아직까지 비닐을 거두어들이지 않아 맨 먼저 해야할 일은 비닐을 걷어내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면 거름 뿌리고 땅 고르고 두둑 만들어 남은 씨감자를 넣을 셈이다.
 
밭의 비닐 걷는 일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흙에 파묻힌 비닐은 잘 걷히지 않고 또 햇볕에 삭아 탄력을 잃어 갈기갈기 찢어지는가 하면, 특히 옥수수를 심은 밭은 옥수수 뿌리 밑둥이 비닐을 붙잡고 있어서 너덜너덜 찢겨 나가 비닐이 남게 된다. 신경써서 거둔다해도 밭에는 보기싫은 비닐 잔해가 남게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거두고 미처 수거하지 않은 비닐이나 조각은 세찬 봄 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주변 산하로 흩어져 날린다. 길게 늘어진 비닐은 나무가지에 걸려 만장처럼 휘날리고, 전봇대 전기줄에도 걸려 누군가가 거두어주기를 기다리고, 냇가로 날아간 비닐은 물이 불어 흐르면 천변 나무가지와 바위 여기저기 걸려 바람에 부대낀다. 시골풍경을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만다.  
 
밭에 비닐을 덮게 되면 몇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는 보습효과. 땅으로 부터 수분 증발을 막아주기 때문에 작물 생육에 절대적인 습기를 유지해 준다. 두번째로는 보온효과. 봄 철 특히 일교차가 심해서 비닐을 덮어주게 되면 추위와 눈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처음 비닐을 사용하게 된 이유는 보온, 보습효과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세번째는 일찍 심어 생육 시기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에 일찍 수확해 판매할 수 있다. 네번째는 풀 관리 때문이다.
 
농사에 비닐을 사용하게 된 것은 처음에는 보온, 보습, 생육시기 조절이 주요 목적이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에 못지않게 네번째의 풀 관리가 빠지지 않는 목적이 되었다. 비닐을 덮게 되면 풀이 올라오지 못해 풀매는 노동을 크게 경감해주기 때문이다. 
 
풀은 여름 농사의 가장 힘든 상대다. 아무리 열심히 풀을 매도 자라오르는 풀을 이길 수는 없고 기권패 안 당하는 게 최선이다. 판정승 없다. 풀 죽이는 풀약(=제초제)을 사용하면 제초 노동을 줄일 수 있지만 풀약을 치지 않는 농가는 풀과 벌이는 씨름이 난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가의 경우에도 비닐을 덮지 않고서는 감당해 낼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 두둑은 비닐로, 골은 부직포로 덮는다.
 
이런 몇가지 이유로 지금 농촌에서는 거의 모든 농가가 비닐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으로 되어 있는데, 전국적으로 사용하는 양을 계산해 보면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다행히, 거둔 폐비닐은 마을 마다 적치장이 있어서 수거하여 재활용을 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볼때 농사에 비닐은 불가피해 보인다. 과다한 비닐을 사용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비닐 값도 비싸다. 농사에 투입되는 주요 농자재와 에너지는 철과 석유류이고 현재 자본주의가 석유(의존)문명인데 농업이라고 비켜나갈 수 없다. 유기농업을 지향하는 농가의 경우 비닐아닌 짚이나 낙엽 등을 이용해 땅을 덮어 주기도 하지만 재배면적이 늘어가면 노동력을 감당해내기가 어렵다.
 
지난 해에는 밭 두둑과 골에 한 곳은 낙엽과 짚, 또 다른 곳은 아무것도 덮지 않은 맨 땅 그대로, 나머지 밭은 비닐과 부직포를 이용해 보았는데, 비닐과 부직포를 덮지 않고서는 여름철 풀관리가 불가능 했다. 제초제를 쓰지 않는 데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도 지난해처럼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되겠지만 사정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201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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