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피자는 유튜브 사건 직후 최고경영자가 직접 나서서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물의를 일으킨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으로 그럭저럭 위기를 수습할 수 있었다.(관련 기사 : 기업 사례로 살펴보는 위기관리 전략의 좋은 예와 나쁜 예) 그러나 이미 발생한 사건을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시간이 흘러도 기억은 남고 기록도 남는다. 부정적인 이미지는 특히 더 오래 간다. 여전히 구글에서 도미노피자를 검색하면 이 동영상이 첫 페이지에 뜬다. 명성을 쌓아올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무너져 내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우리는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셜 미디어의 속도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문제의 동영상은 트위터를 타고 확산돼 이틀 동안 수백만명이나 봤다. 소셜 미디어는 웬만한 매스 미디어 못지않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브랜드 이미지에 미치는 타격도 엄청났다. 도미노피자의 이미지는 과거의 도미노피자와 확실히 달라지게 됐다. 도미노피자 50년 역사에 가장 큰 위기였다.

전문가들은 평소에 소셜 네트워크 기반을 잘 닦고 위기관리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막상 일이 터졌는데 그때 가서 트위터가 뭔지, 페이스북이 뭔지 공부하려면 너무 늦기 때문이다. 도미노피자 역시 사건 초기에는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비난 여론이 더욱 확산됐고 사흘 뒤에야 부랴부랴 유튜브와 트위터 계정을 개설했지만 그때는 이미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이 돼 있었다.

 

   
BP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막상 위기상황이 되자 무용지물이었다. 불특정 다수 익명의 개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원유 유출 사고를 냈던 브리티시패트롤리엄(BP)은 실패한 위기관리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 만하다. 최고경영자인 토니 헤이워드는 "바다는 넓고 원유 유출은 상대적으로 작다"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세계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사고 직후에는 유출 규모가 하루 1천만배럴 밖에 안 된다고 둘러댔지만 며칠 뒤 미국 지질조사국은 2만~4만배럴에 이른다고 밝혔다.

어느 기업이나 사고를 낼 수도 있고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지만 거짓말하는 나쁜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것은 치명적이다. BP는 태연하게 기업 홍보 광고를 TV에 계속 내보냈고 구글에서 '원유 유출'이라는 검색어를 집어넣으면 BP가 제공하는 자료가 상위에 랭크되도록 5천만달러를 지출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소비자들은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강요하는데 불쾌감을 느꼈다. 그 돈을 피해 구제에 써야 한다는 비난 여론도 많았다.

흥미로운 건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반응이다. BP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활발하지는 않았다. 누리꾼들은 @BPGlobalPR이라는 가짜 BP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BP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BP의 공식 트위터 계정 @BP_America보다 가짜 계정이 팔로워가 10배 이상 많았다. BP는 막대한 홍보 비용을 쏟아 부으면서 부정적인 여론을 통제하려 했지만 트위터에서 확산되는 거센 비난 여론을 차단하지 못했다.

BP는 다른 많은 기업들처럼 적당히 소셜 미디어에 발을 걸치긴 했지만 정작 수만명의 트위터 팔로워들이 하루 아침에 안티로 돌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달라진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진정성 없는 소셜 미디어 활동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막상 닥쳐서 만들려고 하면 당황하고 실수를 연발하게 된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가능한 모든 비판적 의견들과 소통하려 하지 않는다면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기업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은, 그린피스와 같은 활동가 집단들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증가했다는 사실"이라면서 "멋진 아이디어 하나와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능력만으로 활동가 단체는 자신들 메시지 도달거리를 쉽게 그리고 빠르게 극대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진정성 없는 소셜 미디어 활동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위기관리 매뉴얼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계경영연구원은 지난해 4월 도요타자동차의 대량 리콜 사태와 관련, 기업의 위기관리 원칙 5가지를 정리해 발표한 바 있다. 첫째, 24시간 안에 입장을 표명하라. 둘째, 인명과 관련된 이슈라면 가급적 CEO가 직접 나서서 사과하고 해명하는 게 좋다. 셋째, 사과만으로 부족하다. 향후 계획과 재발 방지 약속을 하라. 넷째, 소셜 미디어로 소통하라. 다섯째, 위기관리 이후가 더 중요하다. 문제가 해결됐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도요타는 잇따른 급발진 사고 의혹에 꿈쩍도 하지 않다가 대량 리콜을 명령 받은 뒤에야 "죄송하다", "최선을 다해 수습하겠다"는 등 추상적이고 다분히 형식적인 사과로 일관했다. 도요타는 긴급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트위터로 고객들의 불만에 친절하게 응대하는 등 비교적 소셜 미디어를 잘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트위터 팔로워가 1만8천명 밖에 안 됐던 데다 워낙 큰 사안이라 손상된 브랜드 이미지를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최철규 세계경영연구원 부원장은 이 보고서에서 "대중은 의외로 관대하다, 비록 물의를 일으켰지만 그것이 한번의 실수나 운이 나빠 발생한 것이라고 이해된다면 쉽게 용서하고 잊는다"고 설명했다. 최 부원장은 "그러나 나쁜 기업으로 찍히면 사정이 달라진다"고 덧붙였다. 최 부원장은 "이미 사건은 터졌고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는 없다"면서 "나쁜 회사가 아닌 착한 회사지만 운이 나빠 위기에 빠진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희연 LG전자 차장은 "기업들은 점점 더 이상 주류 언론만 대상으로 대화를 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면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대화를 해야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지만 바꿔 말하면 남의 입으로 게이트 키핑을 거쳐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었던 기업이 이제는 자신의 미디어로 떳떳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힐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소셜 미디어는 이슈를 빛의 속도로 퍼뜨린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 돌파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실제로 한 언론에 "KT가 아이폰의 무선랜 기능을 로그인 방식으로 제어할 수 있도록 애플에 요구했다"는 기사가 나자 트위터에서 이를 비난하는 트윗이 쏟아졌다. 과거 같으면 언론사에 항의를 하고 정정보도를 받아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겠지만 KT는 트위터에서 이를 즉각 반박했고 오보라는 게 판명되자 논란이 급격히 수그러들었다. 트위터가 단순히 홍보 수단을 넘어 위기관리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사례였다.

KT의 반박이 언론보도 못지않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KT가 그동안 감성적인 트윗으로 많은 팔로워들을 확보하고 신뢰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KT는 단순히 오보를 바로잡는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팔로워들의 질문 공세에 하나하나 친절히 답변을 했다. "소셜 미디어를 지금 당장 구축하라, 그것이 필요하게 되기 전에(Build your social media efforts now, before you NEED them)"라는 교훈을 KT는 충실히 이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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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맥락에서 지난해 두산그룹의 중앙대 학생 사찰 논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소 왕성한 트위터 활동을 했던 박용만 회장은 "중앙대 학생 사찰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두산그룹 홍보 담당자들도 회장님의 침묵에 대해 아무런 해명을 하지 못했다. 10만명 이상의 팔로워를 자랑하던 회장님의 트위터가 오히려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준 순간이었다. 두산그룹은 정작 공식 트위터가 없었다.

삼성전자가 왜 트위터에서 늘 동네북 취급을 받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에 복귀해 논란이 거셀 때 삼성전자 트위터 @samsungin은 "20만 삼성인의 가슴을 다시 한 번 고동치게 해주시고 IMF 때처럼 위기 이후 삼성이 더욱 빛나게 이끌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생뚱맞은 메시지로 팔로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집단 백혈병 논란에도 삼성전자 트위터는 정말 곤란한 질문에는 답변을 생략했다.

김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언론 인터뷰와 보도 전략을 총괄하는 위치는 홍보팀장급 이상의 임원급이 맡는 경향이 많지만 기업 트위터의 경우 말단 실무자가 맡는 경우가 많아 일반 공중의 신뢰가 부여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대상 오디언스의 민감성, 기존 정보 보유 수준, 이해관계 수준, 트위터 자체의 매체 특성등을 감안해 비슷하지만 다른 수용자 중심의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 차장은 "사건 발생 후 뒤늦게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개설하고 온라인 상의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대화를 시도해봐야 소용없다"면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고객의 불만과 분노, 질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키기 쉽다"고 지적했다. 정 차장은 "오픈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오픈했다면 홍보를 하려할 것이 아니라 대화에 적극 뛰어들어 진심으로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블로그 포스트 하나가 어떻게 사회적 이슈로 확산되는지를 형상화한 그래프. ⓒShel Holtz, ABC.
 

 

(미디어오늘이 오는 31일 '소셜 미디어 시대, 위기 관리 전략'이라는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소셜 네트워크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서 소셜 미디어가 촉발한 미디어의 분화와 전통적인 어젠더 시스템의 붕괴, 국내외 다양한 소셜 미디어 활용 사례들을 살펴보고 달라진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위기 관리 실무 매뉴얼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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