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네 회사에서 만든 초콜릿 때문에 인도네시아의 오랑우탄이 죽어가고 있다."

이런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면 홍보 담당자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 지난해 3월, 스위스의 식품회사 네슬레는 법원에서 가처분 명령을 받아 동영상을 삭제하는 황당무계한 짓을 저질렀다. 결과는 어땠을까. 삭제한 동영상이 수많은 블로그와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왔고 오히려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페이스북 팬페이지에는 항의가 빗발쳤고 불매운동으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였다.

환경운동 단체 그린피스가 만든 문제의 동영상은 네슬레가 인도네시아의 원시림을 벌목하면서 오랑우탄이 살 곳을 잃고 있다는 내용을 폭로하고 있다. 한 직장인이 나른한 오후 초콜릿 봉지를 뜯어 초콜릿을 꺼내는데 가만 보니 초콜릿이 아니라 오랑우탄의 손가락이다. 손가락을 깨어 물자 피가 뚝뚝 떨어진다. 기겁을 할 만한 끔찍한 동영상이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당신이 네슬레의 홍보 담당자라면 뭘 할 수 있을까.

당황한 네슬레는 페이스북 팬페이지를 폐쇄해 버렸다. 75만명이나 되는 페이스북 팬들이 한꺼번에 적으로 돌아섰다. 그린피스는 네슬레 본사 앞에 대형 전광판을 세우고 트위터에서 쏟아지는 비판 메시지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네슬레는 인도네시아에서 수입하는 팜유는 많지 않으며 그마저도 앞으로는 수입하지 않겠다고 해명했지만 성난 누리꾼들을 설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소셜 네트워크 마케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힐 만한 사건이었다.

   
네슬레는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력을 얕잡아 봤다가 호된 시련을 겪어야 했다. 사진은 그린피스가 네슬레 본사 앞에서 벌였던 퍼포먼스. ⓒ그린피스.
 

 

호주의 콴타스항공도 소셜 네트워크에서 호된 신고식을 치른 바 있다. 지난해 11월 콴타스항공의 비행기가 엔진 이상으로 비상 착륙한 사건이 있었다. 당연히 트위터 계정에 문의가 빗발쳤는데 콴타스항공은 트위터를 무시했다. 한 승객이 파손된 날개 사진을 찍어서 트위터에 올렸고 파편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는 제보도 쏟아졌다. 그때만 해도 팔로워가 30명 밖에 안 됐던 터라 콴타스항공의 홍보 담당자들은 트위터의 영향력을 간과했다.

콴타스항공은 엔진 고장일 뿐 비행기에 아무런 손상도 없었고 파편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는데 트위터에서는 이미 비행기가 폭발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결과적으로 소문이 과장된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콴타스항공 역시 진실을 숨겼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현장의 정보가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있는데 이 회사는 금방 드러날 거짓말로 신뢰를 잃었다. 소셜 미디어 시대, 위기관리 전략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탑승객이 직접 찍어서 트위터에 올린 찢겨나간 비행기 날개. 콴타스항공은 사고 직후 피해 사실을 숨겼다가 거센 반발과 불신을 자초했다.
 

 

소셜 네트워크를 가장 잘 활용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코카콜라도 비슷한 실수를 저지른 바 있다. 페이스북 포스트 가운데 하나가 포르노 동영상에 대한 내용이라 한 학부모가 거세게 항의를 하자 이를 서둘러 삭제한 것까지는 좋았다. 사과 선물로 호텔 숙박권과 뮤지컬 공연 티켓을 보낸 것까지도 좋았는데 그 이후 대응이 문제였다. 호텔 숙박권만 주면 뭐하나, 거기까지 갈 왕복 항공권이 없는데.

이 학부모가 이 사실을 학부모 커뮤니티에 올리면서 논란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삭제하는 건 당연하지만 공개적인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이 있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카콜라는 소비자의 정당한 문제제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적당히 덮고 넘어가려는 인상을 줬다. 소셜 네트워크에 막대한 비용과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정작 소통의 기본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도미노피자의 사례는 소셜 미디어에서 위기관리 전략의 중요성을 일깨운 사건이면서 하나의 해법을 제시한 사건이기도 하다. 2009년 4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한 매장에서 직원들이 피자 재료에 코를 흘려넣는 등 역겨운 장난을 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올렸는데 사흘 만에 100만명 이상이 이를 보게 됐다. 도미노피자는 절대 먹지 말아야겠다는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위기 전후 도미노 피자의 브랜드 이미지 변화. ⓒ닐슨미디어.
 

 

도미노피자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적당히 넘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큰 사건이기도 했지만 회사의 명운이 달린 심각한 사건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도미노피자의 최고경영자인 페트릭 도일이 직접 사과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렸고 물의를 일으킨 직원들은 곧바로 해고됐다. 발빠른 대처 덕분에 소비자들은 이 해프닝이 일부 철없는 직원들의 장난이었을 뿐 도미노피자 전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

델컴퓨터 역시 소셜 네트워크의 뜨거운 맛을 보고 난 뒤 변화에 성공한 사례다. 제프 자비스라는 유명한 블로거가 애프터 서비스에 불만을 터뜨렸을 때만 해도 델은 일개 소비자의 푸념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 블로거는 아이헤이트델(ihatedell.com)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어 소비자들의 불만을 수집하기 시작했고 주류 언론까지 관심을 갖게 됐다. '짜증나는 델(Dell suck)'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확산됐을 정도였다.

전직 직원이 소비자 잡지 컨슈머리포트에 '전직 델 매니저의 22가지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영업 기밀을 폭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델은 변호사를 통해 몇몇 문장을 빼달라고 요청했는데 컨슈머리포트는 이 변호사가 보낸 전자우편을 그대로 게재해 버렸다. 델은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최고 경영자가 나서서 사과를 했고 서비스 정책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기업 블로그를 개설해 고객들의 불만을 직접 듣기 시작했다.

'델의 23번째 고백'이라는 글에서 "우리는 이미 알려진 정보를 콘트롤하려 하기 보다는 잘못된 사실을 바로 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면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고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덕분에 델은 일찌감치 소셜 미디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기업으로 변신했다. 델은 트위터 개설 2년 만에 트위터에서만 65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국내에서는 LG전자의 위기관리 전략이 모범으로 꼽힌다. 한 어린이가 세탁기 안에 갇혀 죽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LG전자는 문제가 된 세탁기의 잠금 장치를 전량 리콜하겠다고 밝힌데 이어 블로그와 트위터를 통해 세탁기 안전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발 빠른 대응도 돋보였지만 적당히 소비자 과실로 떠넘기지 않고 위험 요인을 인정하고 바로잡는 노력이 오히려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삼성전자의 경우, 집단 백혈병 논란이나 이건희 회장의 복귀를 둘러싼 여론의 따가운 시선, 그리고 언론의 과장 보도를 둘러싼 구설수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소비자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왜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태도를 보이거나 오해라고 강변하거나 비판이 쏟아지면 침묵으로 일관하는 등 소셜 미디어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왔다는 지적이 많다.

신세계 이마트의 슈퍼슈퍼마켓(SSM)과 이마트 피자를 둘러싼 논란 역시 마찬가지다. 정용진 부회장이 트위터에서 "당신들은 소비를 이념적으로 하느냐"고 반박하고 나서 논란을 부채질했다. "요즘 마트 가면 떡볶이, 오뎅, 국수, 튀김 등 안 파는 게 없는데 왜 피자만 문제냐", "님이 걱정하는 만큼 재래시장이 님을 걱정하겠느냐"는 발언은 정 부회장 뿐만 아니라 신세계의 브랜드 이미지에도 큰 손실이 됐다.

정희연 LG전자 차장은 "대화의 기쁨을 누리는 대신 상처를 각오해야하는 것이 트위터"라고 지적한다. 정 차장은 "허물없이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해도 호감을 갖는 사람, 적개심을 갖는 사람이 모두 존재하는 트위터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유리한 이야기만 할 수 없다"면서 "솔직하게 치부를 드러낼 수 없다면 트위터를 하지 마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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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연구원은 "관계망의 밀도가 높은 소셜 미디어 환경에서는 아주 작은 사건도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다"면서 "적극적이고 예방적인 위기관리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강 연구원은 "진정한 위기관리는 문제가 있거나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기업 행위를 내부적으로 조사·확인하는 것과 이러한 행위를 중단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서 "이는 기업 뿐만 아니라 정부나 정치집단, 정치인에게도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정용민 스트래티지샐러드 대표는 "위기가 발생하면 주변 수많은 이해관계자들로부터의 정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면서 "간절하게 기다리던 블로그 방문자들과 트위터 팔로워들이 하루 아침에 부담스러운 저주의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 대표는 "전략적 메시지를 공급해 의미 있는 SOV(여론 점유율, Share of voice)를 빨리 확보하는가가 위기관리 초기 단계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최병현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소셜 미디어가 지니고 있는 기회와 리스크의 양면성을 깊이 이해하고 잠재 리스크에 대해서는 사전에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면서 "'사건이 터진 후 대응하는 것은 큰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사전적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소셜 미디어에서 더욱 강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연구원은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춰야 소셜 미디어 시대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오늘이 오는 31일 '소셜 미디어 시대, 위기 관리 전략'이라는 주제로 컨퍼런스를 개최합니다. 소셜 네트워크와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강사로 나서서 소셜 미디어가 촉발한 미디어의 분화와 전통적인 어젠더 시스템의 붕괴, 국내외 다양한 소셜 미디어 활용 사례들을 살펴보고 달라진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위기 관리 실무 매뉴얼을 함께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소셜 미디어 활용 리스크 프로파일. ⓒLG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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