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출신 엄기영 한나라당 강원도지사 예비후보가 ‘혹독한 봄날’을 경험하고 있다. 엄기영 전 MBC 사장은 지난 2일 한나라당 강원도당에서 입당과 강원도지사 후보 도전 기자회견을 열고 “강원도는 한나라당이 절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MBC 뉴스데스크 앵커 시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언론인으로서 사랑받던 인물이다. 정치권 영입 1순위로 이름이 오르내렸고, 실제 정치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지만, 찬사는커녕 냉소와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지난해 2월 8일 이명박 정부의 MBC 언론장악 논란의 한복판에서 물러났던 인물이다. 엄 전 사장은 당시 MBC 인트라넷에 올린 글에서 “공영방송 MBC를 계속 지켜달라는 게 물러가는 선배의 염치없는 부탁”이라고 말했다.

   
엄기영 전 MBC사장이 2일 한나라당 강원도당에서 입당식과 함께 출마기자회견을 하고 4.27 강원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그는 MBC를 떠나기 직전 로비에서 ‘언론자유’ 수호 농성을 벌이고 있던 MBC 노동조합원들을 격려하면서 오른손을 들어 “문화방송은 영원할 것입니다. MBC 파이팅”이라고 외쳤고, MBC 노동조합원들은 “MBC 사수하여 언론독립 지켜내자”라는 구호로 화답했다. 그는 언론장악의 희생양으로 인식됐다.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영입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공영방송 MBC를 지켜달라”고 호소했던 엄 전 사장은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나는 MBC 사장 자리에서 쫓겨난 게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 본부는 지난 2일 성명에서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이미지를 관리했던 그가, 오늘 자신을 탄압했던 정부 여당의 품에 덥석 안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엄 전 사장은 한나라당 강원도지사 선거의 히든카드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막상 입당하자 당 안팎에서는 그의 본선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엄기영씨가 과연 제대로 그 거친 도지사선거 레이스를 치러낼 수 있을까도 의문”이라며 “어정쩡한 용병, 최소한의 조국애가 없는 군인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에 출마예상자들의 면면을 보니까 당이 혹시 무원칙한 공천을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는 “잠시 재보선에 관해서 말씀이 나왔는데, 너무 심한 말씀을 하시는 것은 지금 공천심사위원회를 그야말로 믿지 못하는 말씀”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내홍’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더 큰 고민은 논란을 무릅쓰고 영입한 ‘엄기영 카드’와 관련해 보수신문이 냉소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중앙일보 박승희 국제부문 차장은 3월 4일자 <엄기영의 염치>라는 칼럼에서 “정치에 감동이 없고 염치가 없으면 추한 협잡과 술수만 남는다. 주연배우 엄기영이 등장한 한국정치의 단막극은 앵커 시절 그의 멘트처럼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습니다’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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