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이전의 들판은 인간들 사이의 살육과 약탈로 지고샜다. 사랑과 평화가 그들의 꿈이었지만 그들의 현실은 무기를 벼르는 일이 훨씬 더 중요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회적 현실은 무기와 악기의 사이에 끼어 있었다.

가야의 고분에서 출포되는 저 무수한 살육용 무기는 철기시대 초기에 인간의 정신이 쇠붙이와 날(刀)에 매혹돼 있음을 말해준다. 쇠붙이의 날을 벼르면서 인간은 또한 악기를 만들었다.
진흥왕의 철제무기와 우륵의 가야금이 역사의 무대에 동시에 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늘 의미심장했다. 나는 인간의 그러한 비밀이 절망이고 또한 희망이라고 믿어 왔다.

역사책을 읽어보니까 구석기 이전의 들판에서 인간이 죽은 자의 사체를 파묻고 흙으로 덮어주는 의전을 터득하기까지는 수만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한다. 인간의 진화는 그토록 더디고, 정신의 가치가 역사의 현실 속에서 발현된다는 것은 희귀한 몇몇 경우에 불과할 터이다. 인간은 구석기의 들판에서 돌도끼를 들고 또 몇 만년을 흘려 보냈다.

혁명은 아무 것도 개혁하지 못했다. 부르주아 혁명과 볼셰비키 혁명은 인간과 역사의 조건을 아무 것도 개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똑같은 것이다. 세계의 외양은 달라졌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봉건이며 살육과 약탈일 뿐이다. 다만 죽은 자의 사체에 흙을 덮어줄 수 있는 문화적 축적, 혹은 무기를 만들면서 또한 악기를 만들 수 있는 자유만이 인간에게 값진 것이 아니었을까.

경기도 고양시 금정굴에서 6·25전쟁때 학살당한 마을사람들의 유골이 무수히 발굴됐다. 그 유골들은 지금 한달이 넘도록 금정굴 주변 야산에 널려서 비와 이슬을 맞고 있다. 우리 사회는 그 유골 위에 흙을 덮어줄 만한 기초적 의전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입증됐다.

여당에 호소해도, 야당에 호소해도, 대통령에 호소해도, 도청에 호소해도, 군청에 호소해도, 절에다 호소해도, 교회에다 호소해도, 언론에 호소해도 말짱 헛일이었다. 정부는 그 유골을 안장시킨다면 “우익단체들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언론은 그 유골의 엽기성에 관심을 표명했다.

행정기관들은 그 유골처리 업무를 서로 떠넘겼다. 그래서 국민소득 1만달러, 무역고 1천억달러의 시대에 인간의 유골들은 야산에 널려서 풍화돼 가고 있고 아무도 그 유골에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있다.

이것이 도대체 사람이 사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유골을 저렇게 야산에 널려놓고 우리는 무슨 문화와 역사와 제도와 정권을 논할 수가 있으며 우리의 1만달러 소득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유골들은 결국 금정굴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묻혀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렇다면 그것만이 이 사태의 결론이라면 구석기 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다시 수억년의 역사를 버리고 구석기 이전의 들판으로 돌아가는 것인가.
역사라는 것이 너무나도 추워서 견디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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