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현선·45·강남구 도곡동)는 대학생 아들과 중학교 3학년생인 쌍둥이 남매 정훈이와 정은이의 엄마이다. 장남은 ㅅ대에 다니고 있고 정훈이와 정은이 남매도 스스로 공부를 잘해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사왔다. 정훈이는 중학교 3학년이 돼 4월 모의고사에서 학년 전체 1등을 하기도 했다.
그런 애가 5월 중간고사 발표가 있은 후부터 유난히 우울해 하고 무언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주위의 기대로 정신적 압박을 받아 성적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게 아닌가 하여 병원에 데려갔더니 의사선생님이 공부를 떨쳐 버리고 며칠 푹 쉬도록 하라고 권고하기도 했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러던중 시험전날인 5월 7일 저녁 식사도중 갑자기 베란다로 뛰어가 투신 자살했다. ”

중앙일보가 발행하는 <여성중앙>은 86년 6월호에 ‘1등 압박에 죽음부른 중3생 어머니 육필수기’라는 제하의 가명수기를 게재했다.

이 수기가 나가자 진아무개씨가 “비록 가명을 쓰기는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내가 쓴 수기인 것으로 알 수 있다”며 자신은 수기를 쓴 사실도, 기자와 면담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진씨는 수기내용중 주소, 연령, 가족관계 등이 일치하고 수기가 나가기 전 5월 9일자 조선일보·중앙일보 등에 자신의 차남이 아파트 15층 베란다에서 추락,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던 만큼 수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아들이 베란다에서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자살인지 실족인지 가족들도 모르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자살로 몰아간 것은 허위라고 반박했다.

진씨는 언론중재위에 중재신청을 했으나 불성립되자 서울민사지법에 정정보도 청구소송과 5백만원 손해배상 및 사과광고 게재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여성중앙>측은 △수기의 주인공을 가명 처리했고 △당시 유사한 학생자살 사건이 많이 발생, 진씨가 원고를 쓴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없고 △설사 오해의 소지가 있더라도 내용이 사실과 부합하므로 진씨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두 건 모두 <여성중앙>에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했으며 <여성중앙>측이 정정보도 청구건 1심판결에 불복해 고법에 제기한 항소심에 대해서도 패소판결을 내렸다(87년 3월 18일). 먼저 정정보도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임의로 조작된 수기를 가명으로 보도했더라도 인적 사항이 수기의 주인공과 일치하면 명예훼손이 되므로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시했다.

손해배상 및 사과광고 청구소송에서도 86년 12월 24일 재판부는 진씨의 명예가 훼손됐음을 인정, 1백5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잡지가 나온지 이미 오랜 기간이 경과, 정정보도외에 별다른 실익이 없다며 사과광고 청구건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안은 기자가 수기를 조작 , 가명으로 내보냈더라도 가명인이 누구인지 짐작이 가능하다면 언론사는 정정보도의 의무가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확실하고 정확한 보도만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건주의에 사로잡힌 여성지의 선정주의는 스스로 언론자유의 족쇄를 채우는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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