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언론계

“정보-의견 다양성이냐
다국적 재벌들 잔치냐”


‘멀티미디어 화두’ 계속될 듯

‘멀티미디어’. 독일에서 선정된 ‘올해(95년)의 낱말’이다.
독일에서는 매년 독일어협회라는 단체가 그해에 널리 사용되었던 단어들 중에서 사회적 담론들을 특징적으로 표현하는 대표적인 낱말을 선정하여 그해의 낱말로 발표하는데, 95년에는 ‘멀티미디어’가 1위로 뽑혔다.

이 협회가 선정이유에서 밝힌 바와 같이 ‘멀티미디어’는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오락, 스포츠 등 생활 영역 전반에서 언급된 단어이다. 30개 국가에서 758개 업체가 참여했고, 9일간의 방문객이 50만명에 달했던 국제 방송·통신 박람회(IFA:Internationale Funkausstellung, 베를린, 8.26~9.3)의 중심 테마도 ‘멀티미디어’와 ‘디지털’이었다.

기존 매체 시장의 포화로 수요의 정체를 겪고 있는 방송·통신 산업은 거대한 언론 재벌들을 중심으로 ‘멀티미디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개발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투자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매체가 가져다 줄 미래에 대한 환상적인 그림들을 연일 확산시키고 있다. 미국 만큼의 열광은 아니지만 그래도 ‘멀티미디어 열기’라 할 만하다.

문제는 ‘미래세계’ 생산자들의 열기 만큼 수요자들이 뜨거워 지지 않는데 있다. 지난 10년간 채널수는 1,000%로 늘어났지만 텔레비전 시청시간은 20%만 증가했다. 독일의 유료텔레비전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프레미에레 방송국은 지난 5년간 한 번도 백만 고객의 선을 넘지 못했다. 더욱이 사회적으로 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가고 있어, 새매체 소비를 위한 시간확보에 부정적이다.

아직까지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일상적으로 끼워넣는 환상에 대한 경계의 말들이 점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들로 뒷받침되고 있다. 독일뿐 아니라 미국, 영국 등에서 시범사업에 투자했던 많은 기업들이 처음의 호언장담들을 더 이상 되풀이 하지 않고 있다.

새매체 도입의 기술적 어려움과 그 비용은 과소 평가된 반면 수용자들의 관심은 지나치게 과대 평가되었다는 냉철한 분석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고 ‘멀티미디어’로의 발전방향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고, 단지 그 수용자 대상들이 개인적 소비자들에서 회사나 기업, 단체들로 전환될 것이다.

95년 11월 25일 베를린에서 열린 ‘매체 산업노동조합’(IG Medien:Industrie Gewerkschaft Medien)의 10차 언론인 대회에서 언론인들은 성명서를 통해 ‘포커스’, ‘타쯔’와 ‘융에 벨트’에 대한 신문사 수색과 취재자료의 압수, 그리고 함브르크의 사진기자 올리버 네쓰에 대한 경찰의 폭행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언론에 대한 일상적인 방해가 ‘위협적인 수위’에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하고 있다.

퇴임하는 ‘매체 산업노동조합’의 부의장 기젤라 케쓸러(Giescla Kessler)는 제3차 ‘매체 산업노동조합’ 조합원 대회의 개회사에서 ‘오늘날 노동조합들 내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모던풍을 체현하려 애쓴다’고 지적하고,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를 떠받쳐 주고 있는 본질들이 상실될 수도 있음’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녀는 96년 11월에 채택될 독일 노동조합연맹(DGB:Dcutscher Gewerkschaftsbutid)의 새로운 기본강령에 포함되어야 할 몇가지 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 강령은 사회적 발전과 경제적 발전, 그리고 국가사회의 발전사이에 있는 총체적 모순성을 적확하게 파악하여 서술해야 하고, 분석적, 실천적 범주로서 자본과 노동의 적대적 이해관계의 개념과 떨어져서는 안되며, 노동조합 전략의 전거로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구조적 종속성과 그와 결부된 힘관계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독일적 언론의 독특한 오늘의 모습이며, 내일을 규정하는 나름의 독특한 독일적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이러한 독일적 사실들을 추스려 보면, 언론 구도를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구성하려는 정치 권력들과 더 많은 언론을 손에 넣으려는 언론자본들, 언론활동을 방해하는 치안권력과 이를 규탄하고 저지하려는 언론 노조의 모습으로 간추려진다.

이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또 다른 많은 나라에서 보아왔고 보고있는 것들이다. 본질적인 사회변혁이 예견되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도 언론상황은 언론자본과 정치권력, 그리고 언론노조 사이의 관계들의 다양한 표현일 것으로 예견하는 것은 무리한 추론이 아닐 것이다.

1996년에도 계속 ‘멀티미디어’가 문제 낱말이 될 것은 틀림없다. 아직 그 개념의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멀티미디어’가 정보와 의견의 다양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는 기술적 가능성으로서의 다중 매체의 결합이라는 측면보다는, 이미 다양한 미디어를 소유한 재벌들이 국제적으로 결합한, 멀티들의 미디어라는 측면이 더 강하게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김기범 독일통신원



러시아 언론계


TV·신문 꾸준한 성장
민주화 선도주자 꼽혀


언론산업 정착 여부 최대 관심

소련 붕괴이후 진행된 민주화과정에서 러시아 언론은 선도 주자였고, 현재 러시아 사회에서 가장 발전되고 민주화된 영역으로 꼽힌다. 구소련시대 사하로프 박사와 함께 반체제운동을 했던 인권운동가 세르게이 까발료프(12월 두마선거에서 지역구 당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제적 관행에 합치되는 민주적 입법과정이 아직 발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1991~1993년 동안 많은 것들을 이루었고 이것들은 전체주의의 부활을 막는 방패물로서 기능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유언론이 이 기간동안 형성되었고 발전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에서 언론은 유일한 시민사회기구라고 할 수 있다.”

개혁기간동안 러시아 언론은 양적인 측면보다는 주로 질적인 측면에서 성장했다. 성장과정의 특징으로 인하여 텔레비전 방송의 경우 이의 결과는 고품질의 뉴스프로그램과 저품질의 오락프로그램으로 나타난다.

텔레비전 방송은 뉴스를 중심으로 편성된다. 텔레비전 뉴스는 객관성과 심도깊은 분석이라는 측면에서 시청자들의 인정을 받고 있다.
현재 모스크바의 6개 공중파방송의 뉴스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프로그램은 제2까날(RTR)의 ‘베스찌’(32.1%)로서, 간결하고 명료하게 쟁점을 정리하는 특징을 보인다.

제1까날(ORT)의 ‘브레먀’는 다루는 정보의 양에서, 제4까날(NTV)의 ‘시보드냐’는 독자적 시각의 정보분석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는다. 한 방송인은 ‘베스찌’를 러시아 사람들의 ‘뜨거운 가슴’으로, ‘브레먀’와 ‘시보드냐’를 ‘냉정한 이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뉴스 및 교양 프로그램 이외의 오락프로그램은 실험단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점심시간과 새벽시간 일부를 제외하고 거의 16~18시간 방영되는 텔레비전 방송의 대부분은 세계 각국의 영화 및 시리즈물, 구소련/러시아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걸러지지 않은 채 그대로 방영된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원초적 본능>과 같은 영화들이 두번 세번씩 무삭제로 공중파 방송을 통해 방영됨은 물론 심지어 주말 심야에는 <플레이 보이>도 방영된다.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최근 급증하고 있는데 비해 신문은 개혁과정이후 꾸준히 전체 국민과 지식인 사회의 사랑을 받아 왔다.

국가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잡지류를 제외한 신문이 1994년 현재 4,526종, 연간 810만부 발행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반적으로 많이 읽히는 중앙일간지는 <아르그멘띄 이 팍띄> <이즈베스찌야> <꼬메르산뜨> <깜소몰스까야 프리브다> <크라스나야 즈뵤즈다> <네자비시마야 가제타> <프라브다> <러시스까야 가제따> <시보드냐> <소벳스까야 러시야> <뜨루트> <마스콥스까야 깜소몰레츠> 등이다.

나이, 직업에 관계없이 가장 대중적인 신문은 <아르그멘띄 이 팍뛰>로서 독자들 가운데 약 20%가 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신문은 개혁 초기의 선도적인 역할로 명성을 얻었고 이후 집중적인 쟁점분석과 인터뷰 기사 등으로,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마스콥스끼 깜소몰레츠>와 더불어 사건과 논쟁의 대명사로 불린다.

지식인계층에서 많이 읽히는 신문은 단연 <이즈베스찌야>이다.
<이즈베스찌야>의 정치적 색채는 대체로 개혁지향적이지만, 과격하지 않고 온건하다. 분석기사와 각종 칼럼이 이 신문의 장점이다. <이즈베스찌야>에 실리는 칼럼과 분석기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논문으로 인정받을 만큼 권위가 있다.

이외에 식자층의 사랑을 받는 신문으로는 발간되기 시작한지 오래지 않은 <시보드냐>를 들 수 있다. 다루는 정보의 양이 상대적으로 많고 국제관계 관련 정보 및 분석이 강점으로 꼽힌다.
러시아 자유언론의 역사는 짧다. 그러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다브로류보프, 피사레프, 벨린스키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에게서 저항언론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다.

다른 형태이긴 하지만, 레닌 역시 자신의 혁명활동에 언론의 선전선동기능을 최대한 활용했던 인물이었다. 현재 빠른 시간내에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찾아 나가고 있는 러시아 언론에서 그 역사적 저력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다만 러시아 언론인들이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 즉 ‘산업으로서의 언론’의 문제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언론자본의 형성 혹은 유입은 이후 러시아 언론의 제도화과정을 좌우할 핵심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한 방송국의 간부가 “결코 미국방송에 뒤떨어지지 않는 러시아판 CNN”의 등장을 장담하기도 했지만, 이미 현대 언론산업은 대규모 자본의 유입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국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감축된 러시아 언론의 경우 이는 특히 심각하다.

이 경우 3~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러시아 국민들에게서 그리고 세계적으로 자신의 권위를 인정받은 러시아 언론인들의 직업적 사명감은 러시아 언론의 사활을 결정짓는 기본요소가 될 것이다.

강혜련 모스크바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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