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 김기자는 세수를 멈췄다. 세면기에 빨간 액체가 한방울 또 한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얼른 두루마리 휴지를 끊어 뭉친 다음 오른쪽 코구멍을 틀어막았다.

코피가 터졌다. 평소 남부럽지 않은 체력임을 자부하던 김기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올시다’.

김기자는 지난 11일 출입처인 마포서에 오전 7시 출근한 이후 사흘이 지났지만 아직 귀가를 하지 못했다. 더욱이 12일에는 새벽 3시까지 야근을 하고도 다음날 ‘공식’ 오전 휴무를 팽개친 채 평소처럼 취재에 임했다.

시경 캡의 ‘악다구니’가 싫기도 했지만 뭔가 ‘한건’ 하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앞섰기 때문이다. 어제는 또 마포서 라인을 함께 담당하고 있는 후배기자와 팀웍을 위해 걸쭉하게 한잔했다. 계속된 ‘강행군’이었다.

그러나 김기자는 ‘킥킥’하며 웃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오른쪽 코무덤이 휴지로 막은 덕택에 유달리 커보였다.

아침부터 ‘피를 본’ 그는 마포서 1층 형사계로 발길을 옮겼다. “별일 없었어요?” 당직 형사반장에게 말을 건냈다. “뭐, 특별한 건 없는데.” 보통 그렇듯 당직반장의 심드렁한 대꾸였다.

지난 14일 오전 7시30분께 김관명기자 (30·한국일보 사회부)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됐다.
김기자는 마포서 ‘라인’(경찰서 3∼4곳을 하나의 취재구역으로 묶은 것) 1진. 마포·서대문·은평구 일대의 4개 경찰서와 연세대학교 등 5개 대학, 그리고 마포구에 있는 서울지법 서부지원과 서울지검 서부지청이 김기자의 주요한 출입처다. 지역의 병원, 소방서 또한 홀대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김기자는 후배기자 1명과 함께 마포서 라인에서 벌어지는 ‘기사가 될 만한’ 일들을 취재한다. 물론 다른 언론사의 경찰기자들 역시 이같은 라인 시스템으로 배치, 취재에 임한다. 언론사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곳 마포서 라인이 ‘물을 먹느냐, 마느냐’는 1차적으로 김기자 몫이다.

“야, 기사를 발굴해 내야할 것 아냐.” “탁.” 8시10분께 오전 전화 보고는 어제와 같이 시경 캡의 불호령으로 끝났다. 대부분 경찰기자들 사이에선 “욕 안먹으면 성공”이란 시경 캡에 대한 전화보고였지만 김기자에겐 아픈 지적이었다.

이달들어 ‘따근따근한’ 기사를 건지지 못한 그였다. 지난 2월 중순께 김기자는 대교협이 실시한 지난해 23개 대학에 대한 종합 평가에서 이화여대가 최우수 평가를 받았다는 것을 사회면 톱으로 단독 보도해 성공적인 ‘의무 방어전’을 치를 수 있었다. 그러나 3월이 벌써 절반 가량 지났건만 아직까지 ‘건진 것’이 없었다. 마포 경찰서를 나서는 김기자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캡에게 보고는 칼같이”

그래도 김기자는 경찰기자 생활이 “좋다.” 사건, 사고 등을 접하다 보면 피곤해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지만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러내주고 부정과 부패를 고발해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 개선되고 바로잡혀지는 것을 볼 때면 “살맛이 난다.”

지난 93년의 일이다.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칠순을 넘긴 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어려운 생활상을 기사화한 적이 있었다. 이 기사가 나간뒤 사회 각계의 온정이 답지했다. 이렇게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독립유공자 후손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그래도 ‘뿌듯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괴로울 때도 적지 않다. 몸이 고달픈 것이야 이젠 이골이 난 김기자였지만 거리에서, 취재현장에서 만나는 시민들이 ‘언론’에 비난의 화살을 겨눌 때는 참기 힘든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물론 이들에게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게 어디 ‘내탓’ 인가, 언론만의 문제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들 시민들의 질책에 보다 ‘겸허해져야 한다’고 다짐해본다. 어느 집단보다도 내부경쟁이 치열한 언론사에서 사회부 기자들이, 특히 경찰기자들이 잘못된 것을 보면 못참는 ‘결기’를 내곤 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민의’를 그래도 가깝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해본다.

김기자는 이화여대로 향했다. 한국일보는 지난 2월부터 주말판 ‘캠퍼스’면을 신설했다. 경찰기자들과 교육부 출입기자들이 함께 꾸미는 ‘캠퍼스’면은 학생들의 동향, 동아리 활동 소개, 대학가 화제의 인물 등 학원가의 주요한 흐름을 담는다. 이번 16일자 캠퍼스면의 머릿기사는 바로 ‘제2대학’. 김기자가 지난 11일 캠퍼스면 기획회의에서 “대학 학생회의 자치강좌인 일명 ‘제2대학’의 현황을 소개하자”고 제안해 결정된 것이다.

김기자는 담당구역 안에 있는 서강대와 연세대 학생회의 ‘제2대학’ 현황 취재를 끝냈다. 오늘은 이화여대 차례다. 그밖에 서울대와 고려대 학생회가 ‘제2대학’ 개설을 준비하고 있으므로 후배 수습기자에게 그 내용을 취재토록 지시하고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

따근따근한 거리찾아 동분서주

3㎏ 가량의 노트북 컴퓨터가 담긴 묵직한 취재가방을 들고 김기자가 처음 찾은 곳은 가정대 지하에 위치한 이 학교 학보사. 소중한 출입처중 하나다. 학생들의 분위기와 주요 학내 ‘이슈’에 정통한 곳이 바로 대학 학보사이기 때문이다.

학보사 기자들로부터 학내 돌아가는 사정을 들은 김기자는 곧바로 본관 3층 홍보과로 향했다. 기자실에서 기사를 쓰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이화여대의 공식 홍보기관인 만큼 ‘별일 없는지’ 확인은 필수이다. 그가 들어서자 홍보과 차장이 그를 반겼다. 지난달 ‘이화여대 최우수’ 보도 이후 차장의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노트북 컴퓨터의 전력 스위치를 올린 김기자는 우선 후배 수습기자 2명을 호출해 고려대와 서울대 학생회의 제2대학 현황을 파악토록 지시했다. 그뒤 이미 취재한 서강대와 연대세 학생회의 제2대학 현황을 정리했다. 이화여대 학생회만 남은 셈이다.

제2대학을 개설하는 학생회는 인문대 학생회. 그는 이 대학 후문 북쪽에 위치한 인문대 지하층의 학생회실을 찾았지만 담당자는 없었다. 함께 활동한다는 한 학생이 “찾아 보겠다”며 나간 뒤 김기자는 인문대 제2대학 홍보책자를 뒤적였다. 이곳저곳 뒤적이던 그의 눈에 ‘새내기 사전’이란 대학가 은어 모음집이 눈에 띄였다.

캠퍼스면에 담을 간단한 ‘읽을거리’는 됨직해 보였던 것이다. 얼른 그 부분을 ‘북’하고 찢어 안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때 제2대학 담당자를 찾으러 간 학생이 돌아와 “수업에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명함과 호출기 번호를 전해줄 것을 신신당부한 김기자는 다시 기자실로 향했다.

김기자가 인문대 제2대학 담당자와 연락이 닿은 때는 오후 1시45분께. 홍보과 직원 2명과 함께 점심식사를 간단히 마친 뒤였다. 때마침 후배 수습기자들이 고려대와 서울대 학생회의 제2대학 현황을 보고해줘 취재는 모두 끝났다. 기사 작성만 남은 것이다.

김기자는 제2대학 기사 출고는 ‘급한 불‘이 아닌 만큼 ‘일용할 양식’을 찾아 취재를 더하기로 했다. 그때였다.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 대학의 한 간부직원이 그를 찾아와서는 대뜸 “좋은 정보가 있는데 궁금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다행히 기자실에는 김기자 혼자였다. 김기자는 그를 조용히 밖으로 불러냈다. 내용인 즉, 이화여대가 3월19일 최첨단 시설을 구비한 학생문화관 기공식을 갖는다는 것. “최첨단 시설의 학생문화관 건립?” 기사가 될 것 같았다.

김기자는 우선 연세대학교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다. 정보가 새면 안되기 때문이다.

“예, 김관명입니다. 이대가 최첨단 시설을…”
“써.” 정보 보고를 들은 시경 캡의 지시는 간단했다.
“여보세요. 거기 이대 시설과죠. 한국일보 김관명기잔데요….”
보충취재를 마치기 마섭게 노트북 자판을 두드렸다. “타닥, 타다닥….”

김기자가 기사작성과 송고를 모두 마친 시각은 오후4시05분께. 이제 결과를 기다리면 된다. 그러나 결과는 허망했다. 시경 캡은 “좀 더 재미있게 써보라”는 데스크의 지시에다 “기사는 하루 지연된다”고 덧붙였다.

한 경찰기자는 이렇듯 자신이 출고한 기사가 ‘몰고’(沒稿·기사가 빠졌다는 것)될 때 기분은, “빗발치는 총탄을 피해 낮은 포복으로 적진을 향해 나아가다가 갑자기 ‘원위치’ 명령을 받은 병사와 비슷할 것”이라고 비유한 적이 있다.

김기자는 다시 마포서로 돌아왔다. 형사과장을 찾아보았지만 자리에 보이지 않는다. 형사계장이 눈에 띈다. 최근 선거법 위반사례들을 물어보았다. 선거전이 본격화될 경우에 대비해 기획 ‘꼭지’를 준비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김기자의 사전 취재인 셈이다.

김기자가 ‘공식 일과’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시각은 오후 6시45분께. 한국일보사 본관 건물 3층의 편집국은 취재를 마치고 돌아 온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행여 낙종할까 가슴 두근두근

그러나 사회부 경찰기자들이 모여있는 테이블 주위에는 ‘싸늘한’ 기운만 떠돌 따름이다. 오후 7시30분께 타사 조간신문들이 도착했다. 경찰기자들은 이때 “피가 마른다.” 경쟁사 경찰기자의 ‘한건’ 덕택에 자신은 ‘물을 먹고’ 더욱이 지면 기여도가 없을 때 그런 ‘불상사’가 생긴다면 쥐구멍이라도 찾고픈 순간이다. 다행히 오늘은 마포서 라인에서 ‘물 먹은’ 기사는 없었다.

김기자는 신문을 꼼꼼이 읽어 내려간다. 선배기자들은 경찰기자들에게 “신문을 읽을 때 기사의 흐름을 파악할 것”을 당부한다. 출입처가 제한돼 있고 더욱이 사건 사고에 매달리다 보면 사회의 흐름을 폭넓게 바라보는 관점을 놓치기 쉽기 때문이다.

“야, 캠퍼스면 머릿기사 썼냐.” “내일 오전 8시까지 넣어놔.” 대답도 하기 전에 시경 캡의 지시가 떨어졌다. 오후 8시30분께 회사를 나와서 나흘만의 귀가길에 올랐다. 거리를 꽉매운 자동차들의 불빛이 현란하게 흔들린다.

김기자의 집은 의정부. 지하철로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김기자가 캠퍼스면 머릿기사를 끝낸 것은 다음날 새벽 2시 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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