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전쟁의 역사는 짧지 않다.
66년 9월부터 1년간 ‘한국비료 밀수사건’과 삼성그룹에 대한 언론의 집중적 공격에서 76년 5월 용인자연농원의 토지매입과 건설비리를 둘러싼 동아와 중앙과의 대립등 지금과 비슷한 싸움은 간단없이 이어져왔다.

무엇보다 언론사에 기록될 만한 신문 전쟁으로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민족지 논쟁’이 꼽힌다. 동아일보는 지난 84년 4월 1일 창간 65주년 기념호에 ‘유일한 민족지요, 유일한 정통지’라는 기념사설을 실어 조선일보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에 당시 조선일보 선우휘 논설주간은 4월 14일자 ‘동아일보 사장에게 드린다’는 기명기사로 반격을 가한다. 서로 민족지임을 자처하면서 타사를 친일적 성격의 신문으로 비하하려는 지면 논쟁은 얼마 가지 않아 끝을 맺었다. 신문의 자존심을 걸고 다투는 점잖은 싸움에 속한다.

신문전쟁은 89년 각 신문사간의 ‘카르텔’이 깨지면서 지면공방 차원을 넘어서 신문시장 전반에 걸친 전면전 양상을 띄기 시작한다. 증면, 월요판 발행, 조석간 경쟁 등 사세과시의 물량경쟁으로 접어든 것이 이때부터다. 당시 12면에 불과하던 지면은 극심한 증면경쟁을 거치면서 일일 20면, 92년 24면, 94년 32면 체제로 들어섰다 95년에는 중앙일보가 매일 48면 발행을 시작했다. 조선 한국 등도 매일 40면 체제로 증면을 단행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다른언론사에 대한 공격 역시 더 자극적인 형태로 진행된다. 경쟁의 대상들도 바뀌어가는 모습이다. ‘민족지 논쟁’ 이후 94년 ‘마라톤 시비’로 이어지는 동아와 조선이 주 전쟁 당사자들이었으나 최근에는 중앙일보를 한축으로 조선일보를 비롯한 타사들이 다른축을 형성해가는 양상이다. ‘재벌언론’과 ‘언론재벌’간의 전쟁으로 변모해간다고 보는 시각들도 있다.

지난 95년 3월 중앙이 조간화를 추진하던 시기에 하이텔 여론조사를 통해 자사가 ‘가장 읽기 편한 신문’에 꼽혔다고 보도해 대대적인 반론으로 이어졌던 소위 ‘하이텔 논쟁’이 대표적이다. 중앙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삼성의 비리를 연일 보도하면서 중앙과 삼성의 조속한 분리를 주장하는 등 공세에 나섰다. 이 사태는 중앙이 비공식적으로 사과 의사를 표시하는 선에서 매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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