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마다 낭만이 피어나는 제주도는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동경의 섬입니다. 돌 하나에서부터 풀 한 포기까지 의미가 담겨져 있지요. 사람들은 제주를 일컬어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화산섬'이라고 말합니다.

화산섬의 비경 중에서도 한라산은 모든 이의 가슴속에 살아 있는 신산(神山)입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한라산. 한라산은 지질학적으로나 생태계적 측면에서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한라산에서 가장 신비로운 것은 계절 속에 숨겨진 신비로움입니다.

한라산 윗세오름, 산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속 정상

한라산 가는 길은 4개의 코스가 있습니다. 한라산의 주봉 백록담 가는 길은 성판악코스와 관음사코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정상은 아니지만 한라산에는 또 하나의 정상이 있습니다. 백록담 화구벽을 바라 볼 수 있는 해발 1700m 윗세오름입니다. 윗세오름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속 정상이기도 합니다.

   
  ▲ 한라산 만세동산에서 본 백록담. ⓒ 제주의소리 김강임  
 
겨울이 무르익어가는 제주도의 1월, 한라산은 눈꽃이 장관입니다. 여름에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곳이 한라산이지만, 겨울에 눈이 가장 많이 내리는 곳 또한 한라산입니다. 때문에 한라산의 겨울은 설국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겨울 산행은 가능하면 기상 이변이 심해 대형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주시 터미널에서 9시쯤 출발한 시외버스는 서귀포 중문 가는 버스였습니다. 늘 자가용에 몸을 맡기다 오랜만에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 감회가 새롭습니다. 제주시 노형로터리를 지나 1100도로(99번 도로)에 접어들자 꼬불 길이 이어집니다. 어느새 대형버스 안에서는 한라산 냄새와 겨울 냄새가 가득합니다. 산행에 함께한 한복희 선생님은 산을 어지간히 좋아하나 봅니다. 늘 혼자 산행을 한다니 말입니다.

   
  ▲ 눈꽃. ⓒ 제주의소리 김강임  
 
"야! 눈이 내린다!"

어리목입구에서 하차한 우리는 창피한 것도 모르고 환호성을 질러댔습니다. 그리고 강아지처럼 깡충깡충 뛰어 산속으로 들어갑니다. 푸연 진눈깨비가 앞을 가립니다. 손바닥에 눈을 받아봅니다. 입을 벌려 눈을 먹어 봅니다. 눈 쌓인 산길을 걸어 봅니다.

'뽀드득- 뽀드득-'

얼마 만에 듣는 자연의 소리였던가요. 자연이 소리는 심장까지 파고듭니다. 겨울나무 가지에서는 나그네들을 반기는 까치가 울어댑니다. 한라산의 숲은 바람도 일지 않습니다.

향기없는 눈꽃, 화려하다 못해 비경 그 자체

어리목에서 사제비 동산까지 이어지는 2.4km는 마치 천상의 계단 같습니다. 오르막길 계단이 몇 개인지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계단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마음을 수련하는 기분이 듭니다. 

   
  ▲ 어리목 코스에서 이어지는 계단은 마치 천상의 계단같습니다. ⓒ 제주의소리 김강임  
 
빨간 청미래덩쿨 열매가 눈 속에 묻혀 있습니다. 마음을 유혹하는 선악과 같습니다. 딸까 말까 망설이다 침을 꿀꺽 삼킵니다.

   
  ▲ 마음을 유혹하는 청미래덩쿨 빨간열매를 보고 침을 삼켜봅니다. ⓒ 제주의소리 김강임  
 
소복을 입고 있는 조릿대, 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서어나무와 졸참나무, 지난 가을 산을 불태웠던 단풍나무도 하얀 소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사제비동산에서 만세동산까지는 돌로 다져진 등산로 천상의 계단을 벗어나니 드디어 하늘이 보입니다. 사제비동산에 이르러서야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오름 위에 걸쳐있는 운무가 장관입니다. 이곳이 바로 소설 속 설국의 나라였던가요?

   
  ▲ 사제비동산에 서서 뒤를 돌아다 보면 운무가 장관입니다. ⓒ 제주의소리 김강임  
 
등산로에는 겨울이야기가 피어납니다. 산행인파의 배낭에도 겨울이 묻어 있습니다. 수많은  생태계가 존재하는 한라산, 그 신비가 숨어있는 골짜기는 잠이 든 듯합니다. 향기는 없는 눈꽃은 화려하다 못해 비경입니다. 이 눈꽃은 계절마다 또 다른 향기를 연출해 주니 말입니다. 

신기루 같은 백록담은 꿈과 희망

   
  ▲ 겨울산행에서 표지판은 자신이 걸어 온 이정표입니다. ⓒ 제주의소리 김강임  
 
겨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벌써 만세동산입니다. 만세동산에서 윗세오름까지는 1.5Km. 등산로에서 만나는 이정표 보니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에서도 이처럼 이정표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목적지를 확인할 수 있을 테니까요.
 
   
  ▲ 고원처럼 펼쳐진 등산로는 겨울산행 인파로 북적입니다. ⓒ 제주의소리 김강임  
 
사제비동산에서 윗세오름으로 이어지는 풍경이 고원 같더군요. 마치 방랑자가 된 기분입니다. 한라산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지요.
 
겨울나무 아래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고드름을 따서 잘근잘근 씹어봅니다. 우두둑- 우두둑-. 달콤한 맛에 익숙했던 우리 입맛, 고드름은 아주 싱겁습니다. 하지만 차가운 기운이 입안을 도려냅니다. 그 알싸함은 심장까지 파고듭니다.

   
  ▲ 겨울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고드름을 따서 우두둑- 씹어 먹어 보았습니다. ⓒ 제주의소리 김강임  
 
해발 1600m에 서자, 백록담이 아스라이 보입니다. 신기루처럼 서 있는 백록담. 화구벽만이 자태를 보이니 조금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윗세오름 광장에서는 백록담을 바라보며 꿈과 희망을 말하기도 하지요.

해발 1700m 털진달래 봄을 잉태하다

잿빛 하늘에서는 눈이 내립니다. 윗세오름 표지판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눈의 나라에 왔으니 저마다 겨울 이야기를 담아가고 싶은 게지요.

하지만 마음을 뜨겁게 달군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산 길에 만난 털 진달래입니다. 털 진달래는 차곡차곡 쌓인 하얀 솜이불을 덮고 봄을 기다립니다. 털 진달래는 하얀 솜이불이 무척 포근한 가 봅니다.

   
  ▲ 해발 1700고지에는 하얀 솜이불을 덮고 있는 털 진달래가 봄을 잉태합니다. ⓒ 제주의소리 김강임  
 
한라산의 봄은 아직 봄이 멀었습니다. 5월이 되어야 눈이 다 녹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해발 1700m에는 벌써 봄을 기다리는 진통이 시작되고 있더군요. 겨울 산에서 봄을 기다리는 내 마음처럼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한라산 어리목코스 가는 방법 : 제주시 시내버스터미널에서 서귀포 중문가는 버스편 이용 어리목 입구에서 하차. 1월5일부터 2월 10일까지 매주 금, 토, 일 셔틀버스 운행 (제주관광산업고-천아오름-어리목입구. 30분 간격). 연락처 : 064-713-9950(한라산국립공원) <제주의소리><김강임 시민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8년 01월 18일 (금) 12:47:03 제주의소리 / 김강임 기자 kki0421@hanmail.net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