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의 대표공약인 경부운하 공약의 파괴력은 입증되지 않았다. 대선 결과 이명박 후보가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확보하면서 운하 공약이 가져다 준 득실을 계산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2.3% 차로 승패가 갈린 지난 16대 대선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경부운하에 필적할 만한 대표공약인 행정수도의 직접 수혜지역인 충청권에서 당시 노무현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무려 25만7000표 가까이 앞섰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 표차는 약 57만표에 불과해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충청권에서 벌어진 셈이 됐다.

   
  ▲ 경부운하 건설이 가져올 정치적 득실에 대해 여론이 분분하다. 대통합민주신당은 허니문 기간이 끝나면 최악의 실정이 될 것이라고 혹평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차기 정권의 향배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선거기간 경부운하가 건설될 현장을 둘러보는 이명박 당시 후보. ⓒ충북인뉴스  
 

실제로 노 후보는 충북 7.4%, 충남 10.8%, 대전 15.2% 등 충청권에서 전국 상황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크게 격차를 벌렸다. 충북에서는 행정수도 인접지역인 청원에서 노 후보가 54.1%를 득표해 37.8%를 얻은 이 후보를 무려 16.3% 차로 눌렀다.

여권의 관계자 Q씨는 “행정수도 공약은 균형발전을 바라는 지방 전체에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상대적으로 소외감이 큰 충청과 호남에서 위력을 발휘했다”고 평가했다.

행정수도에 웃고 운 참여정부

그러나 당선의 견인차 역할을 한 행정수도 공약은 정작 참여정부 출범 이후 성장엔진이 되기보다 임기 내내 걸림돌이 됐다. 행정수도 추진에 반대하는 수도권 여론이 들끓고, 한나라당 등 야당들이 행정수도 건설의 위헌 여부를 문제 삼아 헌법소원을 내는 등 극심한 반대여론에 부딪혀 끊임없는 정국혼란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온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대한 헌법소원은 200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한풀 꺾인 채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변형, 추진돼야 했다.

“행정수도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사항을 헌법개정절차에 의하지 않은 채 법률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어서, 그 법률 전체가 청구인들을 포함한 국민의 헌법개정국민투표권을 침해했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는 요지의 헌재 판결은 탄핵 역풍으로 조성된 여대야소 정국을 뒤엎는 계기가 됐고 이때부터 노 정권의 본격적인 내리막길이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의 장이 된 이번 대선에서 여권은 이전 선거와는 달리 냉혹해진 수도권 민심과 직면하면서 전국적인 대패의 단초가 됐다.

충북의 북부로부터 기대심리 유포

일방적으로 끝난 선거라 당락에 영향을 미칠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경부운하의 수혜지역이라 할 수 있는 충북 북부지역의 민심은 확실하게 이명박 당선자에게 쏠렸다. 이 당선자가 충북에서 전국 평균 48.76%보다 낮은 41.58%의 득표율을 기록한 가운데 충주, 제천, 단양 등 경부운하의 직·간접적 수혜지역에서 상대적으로 선전한 것이다.

   
  ▲ ⓒ충북인뉴스  
 

실제로 이 당선자는 충주 47.97%, 제천 46.55%, 단양 43.92% 등 도내 상위 3개 시·군에서 전국 득표율에 필적할만한 표심을 얻었다. 이들 3개 시군에서 얻은 득표수는 충북 전체 득표의 28.8%에 이르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하위 3개 시·군에 해당하는 옥천(34.01%), 보은 (35.09%), 증평(36.56%)의 성적은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특히 보은에서는 정동영 후보가 얻은 35.59%보다도 밀리는 상황이 초래됐다.

대선에서 북부지역의 민심을 사로잡은 경부운하 공약은 선거 이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탄력을 더해가고 있다. 이번 대선의 화두가 오직 ‘경제’로 집약됐던 만큼 대규모 토목공사에 따른 경기부양에 대한 기대심리가 서서히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충주가 지역구인 민주신당의 이시종 의원은 “솔직히 지역주민들이 경부운하에 쏙 빠져있다.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후보가 이를 무기로 적극 공격해 올 것”이라며 “구체적인 계획서가 나와있는 것도 아니고 용역 검토된 자료도 없는 만큼 경제성, 안전성, 환경영향 등에 대한 정확한 검토가 필요하겠지만 충주지역만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대규모 토목공사에 따른 경기부양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토목공사의 80%가 충북지역에 집중되는 만큼 일자리가 창출되고 돈도 풀릴 것이라는 것이 수혜지역의 여론이다. 이에 반해 돈은 일부 대기업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지역에 주어지는 일자리는 현장 노동에 불과할 텐데 이 역시 외국인 노동자의 몫이 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허니문 기간 언제까지 이어질까?

어찌 됐든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한때 검토대상이던 경부운하 공약이 이 당선자의 압승으로 끝난 선거 결과의 영향으로 ‘급물살 추진력’을 얻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대통령직인수위 한반도대운하 TF팀 상임고문인 이재오 의원이 충북과 경북의 경계인 문경새재 조령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의견도 충분히 수렴하겠지만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거 당시에는 보수언론까지 나서서 뜯어말릴 정도로 안팎으로부터 공격을 받았던 공약이지만 높은 지지율로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공격모드가 일단 4월9일 18대 총선까지는 힘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여권 관계자 Q씨는 “선거기간 내내 이 당선자에 대한 도덕성 시비가 제기됐지만 ‘잘 살게만 해달라’는 묻지마 논리에 밀려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어느 정권이나 임기 초 ‘허니문 기간’이 진행되기 마련이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 기간이 좀 더 길고 강도도 강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대선 정국에서 무력했던 운하 공약이 오히려 총선 정국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얘기다. Q씨는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실정이 드러나 허니문이 끝나는 순간 최대의 실정으로 평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나라당 충북도당 이규석 사무처장은 선거 이전과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사무처장은 “국민들이 오랜 경제침체에 지쳐있는 상황에서 경부운하는 건설경기 부양, 고용창출, 관광활성화 등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며 “민자 유치로 재원을 해결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주는 부담도 없어 선거 이후에는 공감하는 쪽으로 여론이 돌아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사무처장은 또 “임기 내에 운하를 성공적으로 완공할 경우 차기 정권의 향배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2008년 01월 09일 (수) 13:16:49 이재표 기자  gajad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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