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지난달 24일 방영한 ‘일요스폐셜-자연다큐멘터리 수달’은 KBS에 되돌이킬 수 없는 오점을 남긴 사건이 됐다. 이 프로그램은 연출과 조작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 천연기념물 3백30호로 지정·보호받고 있는 수달의 생태를 밝혀내는 것은 물론, 인간 못지 않은 가족애를 실현하는 수달의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던진 보기드문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KBS는 “야생동물이면서 대형동물인 수달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함으로써 자연다큐멘터리의 수준을 한단계 높여 놓은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97년 초에 기획돼 1년 이상의 제작끝에 완성된 ‘다큐멘터리 수달’의 얘기는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첫번째 섬진강의 수달가족얘기. 수달암컷이 임신한 상태에서 수컷은 주민에 의해 희생을 당하고, 암컷은 두마리의 새끼를 낳아기르다 강물이 불어나 집이 침수되면서 이곳을 떠난다.

두번째는 강원도 내린천에서 암컷 어미가 통발에 걸려 죽고난 후 생후 3개월된 수컷(달식)과 암컷(달미) 수달 남매가 살아가는 얘기. 암컷은 겨울에 죽고 남은 수컷은 죽은 형제의 주검을 낙엽으 로 덮어주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문제가 된 내용은 내린천에서의 수달 남매 얘기. 프로그램에서 밝힌 것처럼 수달 남매는 인제 내린천에 살았던 수달이 아니었다. 애초 지난해 7월 경북에서 발견돼 한 동물병원에서 보호중이던 것이었고 완전한 자연 상태가 아닌 펜스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촬영된 것이었다. KBS제작진은 이들 수달남매를 보관중이던 동물병원과 인제 내린천을 3차례나 오가며 촬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죽은 암컷을 내린천에 다시 가져다가 수컷이 죽은 암컷을 낙옆으로 덮어주는 장면을 연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철저히 이같은 사실은 프로그램 속에서 철저히 은폐돼 있었다. 처음 조작·연출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것은 동아일보가 지난 16일자 ‘수달남매 진실 의혹’에서 인제군 내린천에서 수달이 자연상태가 아닌 펜스에 갇힌 채 촬영됐으며 이 수달이 사육용일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였다.

16일 이 보도에 대한 확인 요청에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신동만 PD는 경북에서 인수한 두마리의 암수 새끼 수달(달미, 달식)에 대해서는 숨긴 채 “인제 내린천에서 주민들에게 발견된 수달이었으며 1주일만에 펜스가 무너지는 바람에 도망가 제대로 촬영하지 못했고 펜스를 치고 촬영한 수달은 프로그램에는 전혀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오히려 “펜스를 치고 촬영한 것은 다큐멘터리 제작기법상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수달전문가로서 이프로그램 제작에 도움을 주었던 한성룡 씨 역시 이 때까지는 ‘달미’ ‘달식’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고, 펜스를 친 사실에 대해서만 인정했다.

17일 공식대응에 나선 KBS측은 ‘사육 수달은 촬영하지 않았다’며 적극 부인하고 나섰다. 내린천 인근지역에서 어미를 잃은 새끼 수달을 발견, 내린천 일대에서 1KM정도 펜스를 치고 보충촬영을 했을 뿐 사육수달을 촬영하지 않았으며 펜스 설치는 외국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촬영기법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달미’와 ‘달식’이 연출·왜곡촬영된 사실에 대해 일부 기자들이 추궁하고 나서자 KBS는 18일 17일자 공식해명을 번복, 전문가의 관찰용 수달이 촬영에 활용됐다며 연출 및 사실왜곡을 시인했다. 그리고 19일 한 씨가 사건의 전말을 기자들에게 털어놓으면서 경북에서 발견된 수달을 KBS제작진이 내린천으로 옮겨와 연출·촬영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됐다.

KBS는 20일 KBS 9시 뉴스와 21일 옴부즈맨 프로그램 ‘시청자 의견을 듣습니다’, ‘일요스페셜’ 등 3개 프로그램을 통해 공식사과를 하고 지난 23일 담당 PD를 포함 지휘계통에 있던 모든 간부들에 대해 징계를 했다. 그러나 KBS측의 이같은 징계조치는 사태수습 차원의 성격이 짙고 왜곡의 진상을 철저히 밝혀내는데에는 미흡하다.

먼저 KBS는 이같은 ‘조작’이 가능했던 ‘집단적 공모’에 대해서는 아무런 해명을 하고 있지 않다. 제작에는 상당수 인력이 현장에 투입되기 마련인데 이같은 조작·연출 프로그램이 그대로 방송될 수 있었던 ‘집단적 공모’ 진상을 KBS는 여전히 숨기고 있는 꼴이다. 물론 프로그램은 PD의 책임아래 제작된다.

여타 스텝들은 보조적인 역할에 머문다고 하더라도 이들 모두가 침묵했다면 그들 또한 조작·연출의 공범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그같은 집단적 공모구조의 혁파없이는 제 2 제 3의 ‘수달 조작 연출 사건’의 재발을 피하기 어렵다. 더불어 과연 PD윗선에서 조작·연출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지도 의문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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