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으로 출가하는 법이 자세하지만 관리들이 그 법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役)을 피하는 자가 모두 중이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의논하여 아뢰라.” 이 말은 세조가 1464년(세조 10) 5월 6일 승정원의 승지들에게 직접 써서 보여준 글인데, 이에 대한 사신의 논평이 볼만하다.

“도첩(度牒)이란 중이 출가했다는 신표(信標)이다. 근래 국가에 공역(工役)이 있으면 관(官)에서 공명도첩(空名度牒: 이름을 비워놓은 도첩) 수천 수백 통을 주어서 그 비용을 충당하는데, 일을 맡은 자가 이것을 얻으면 재물로 생각했다. 도첩 1통(通)이 면포(綿布) 몇 필(匹)과 맞먹으며, 군역(軍役)을 지는 백성들이 이것을 얻으면 자신의 이름을 써 넣으니, 오늘날 진짜 중을 어떻게 가려내겠는가? 관에서는 종이 한 장을 발급하는 것이지만 백성들에게는 일신(一身)의 역(役)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자가 많은 것이 어찌 이상한 일이겠는가?”

사신은, 공역이 있을 때 마다 공명도첩을 발급해서 백성들에게 팔았던 자가 바로 국가이기 때문에 백성들이 역을 지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도첩을 사서 중이 되는 것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세조를 비판했다. 본질도 모르는 세조의 말에 정곡을 찌르는 사관이다.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고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왕권을 세우기 위한 육조직계제(六曹直啟制)의 부활이었다. 이 제도는 육조의 판서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서무를 직접 왕에게 보고한 뒤 결재를 받는 시스템으로 태종이 처음 시행했는데, 왕명이 육조 소속의 모든 관아에 직접 하달되는 왕권강화책의 하나였다. 게다가 백성들에 대한 감시와 통제력 강화를 위해 호패법(號牌法)을 실시했고, 자신의 위세를 대대적으로 과시하고자 수많은 군사를 동원해 여진(女眞)을 정벌했으며, 정벌한 공을 과시하기 위한 자신의 행차에 전국에서 무사 300여명을 뽑아 올려 호위하게 했다.

게다가 세조는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해 수많은 불경을 간행케 했으며, 금강산의 유점사(楡岾寺)·양주의 회암사(檜巖寺) 등을 대대적으로 중수했다. 더 나아가 서울 한복판에 갖은 심혈을 기울여 원각사(圓覺寺)를 조성했는데, 세조가 쏟아 부은 정성과 비용의 수준을 바로 지금 서울 종로 한복판에 남아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에서 볼 수 있다. 세조는 이러한 불사를 자신의 재위기간 내내 추진했고, 유점사와 회암사를 중수할 때 도합 6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도첩을 발급했다. 이런데도 세조는 왜 백성들이 앞 다투어 머리를 깎고 중이 되려는지 승지에게 그 이유를 물었던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세조 당신이라는 사실을 모르고서 명령을 내린 왕을 보고 사관이 얼마나 어이가 없었을까.

▲ 원각사는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절로,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고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 원각사는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절로,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고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사진=문화재청

▲ 원각사지 10층석탑. 사진=문화재청
▲ 원각사지 10층석탑. 사진=문화재청

예나 지금이나 병역(兵役)은 백성들에게 참으로 고달픈 것이 사실이다. 국정감사가 한창인 요즘 지난 주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여당 어느 의원의 질의가 야구계를 시끄럽게 했다. 특정 선수가 개인의 실력을 바탕으로 대표팀의 우승을 위해 필요한 선수로서 선발된 것이 아닌, 모종의 세력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실증 없는 의혹만을 가지고 지적하며 정치프레임까지 뒤집어 씌웠다. 평생을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다들 고사하는 대표팀 전임감독이 된 사람이 무엇이 아쉬워서 의심받을 짓을 했을까? 참으로 상식 밖의 질의이다.

문제의 핵심은 병역특례라는 잘못된 제도를 없애는 것이지, 전임감독의 고유 권한과 연봉, 근무형태가 아니다. 국회의원이라면 이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해결책을 강구해야 하는데, 여전히 여야의 몇몇 국회의원들은 증인을 불러 망신 주는 적폐 같은 행위를 보여주고 있다. 병역특례제도가 존재하는 한 병역을 마치지 않은 선수의 국가대표 선발은 항상 잡음이 있을 것이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이라면 현재 야구를 포함해 우리나라 학원스포츠계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본다. 중·고교 운동선수들이 클럽활동으로서 즐기는 스포츠가 아닌 대학 특기생 입학이나 프로선수가 되는 것이 지상의 목표인 현실 말이다. 특기생 입학과 관련된 비리가 일어나는 원인이나, 운동선수들이 고교나 대학시절 치명적 부상을 당해 진로를 바꾼 뒤 일반학생들처럼 평범하게 대학을 다니고 직장을 구하기 힘든 문제 등을 고민해야 한다.

순수한 스포츠에 정치논리를 개입시킨 건 군부정권이었다. 국민의 이목을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집중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헌대 지금까지도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스포츠를 자당의 정략에 십분 이용하고 있다. 정치프레임을 씌워 권한도 없으면서 국가대표 전임감독의 사퇴를 언급하기까지 했다. 만약 야구계를 움직이는 적폐세력이 있다고 해도 질문과 방법이 너무 틀렸다. 2년 전 국정감사장에서 MS 오피스 프로그램을 수의계약 했다고 삿대질에 고성을 지르면서 교육감에게 사퇴를 운운하던 어떤 의원이 필자만 생각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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