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 물어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파업 중에는 기자가 대신해야 할 존재가 하나 더 늘어난다. 국민이 궁금해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조합원들이 궁금해 하는 것도 따져 물어야 한다. 언론인이면서 동시에 언론 노동자이기도 한 기자의 숙명이다.
사장님께는 궁금한 게 많았다. 기자·PD·아나운서 등 방송제작의 인력의 대다수가 파업에 들어간 상황에서 어떻게 방송국을 운영해 나갈 것인지. 국정원에서 200만 원을 받았다는데…. 진짜 받았는지, 받았다면 대체 어디다 썼는지. 공정방송을 외치던 후배들을 왜 징계했는지 등도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고 사장님은 조합원과 직원들에게 만큼은 항상 침묵을 지키고 계신다.
얼마 전 인천공항에서 고대영 KBS 사장님을 뵈었을 때가 생각난다. 회사는 파업으로 엉망인데 고 사장님은 해외 출장을 간다고 하셨다. 방콕에서 열리는 ABU총회 참석이 명분이었는데 현지 문화 체험 등 외유성 일정까지 포함돼 있어 논란이 일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직원들은 궁금해 했다. 이런 상황에서 꼭 출장을 가셔야만 하는지. 가서 대체 뭘 하고 오시는지 말이다.
공항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무려 비행기 출발 7시간 전에 체크인을 마친 고 사장님이 출국장 내 환승호텔에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호텔에서 푹 쉬고 나온 고사장님을 만났다. 평소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지켜오시던 고 사장님의 눈동자가 그때만큼은 크게 흔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황급히 자리를 피해 퍼스트 라운지로 들어가시는 사장님께 정중하게 안내해드렸다. 사장님의 항공권은 비즈니스 티켓이라 퍼스트클래스 라운지를 이용하면 부정한 혜택을 누린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이다. 고민 끝에 발길을 돌린 고 사장님. 그때만큼은 조금 답답하셨는지 내게 훠이훠이 손을 내저으셨다. 이제는 그만 가라는 의미로 읽혔다. 그게 고 사장이 나와 우리 조합원들의 끊임없는 물음에 대한 유일한 ‘리액션’이었다.
고대영 사장과 그 측근 간부들은 추락을 부추겼다. 노조의 공정방송 감시활동뿐만 아니라 이런 추락을 안타깝게 여긴 현장 기자들의 소소한 저항조차 징계의 대상으로 삼았다. 쓴소리 했던 기자를 지방으로 귀양 보냈다. 상식 수준의 뉴스해설을 문제 삼아 인사로 보복했다. 최근에는 낙하산 사장을 옹호하고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인사 등을 미끼로 고대영 사장을 주축으로 사내 게시판에서 ‘사이버 여론전’을 벌여왔다는 증언이 공개되기도 했다.
고대영 사장은 최근 9년간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 사장이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도맡았고, 심지어 보직에 있지 않을 때조차 보도조직과 기자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장 안 좋은 방향으로 행사해왔다. 이제는 그 책임을 져야 할 때가 됐다.
파업을 시작한 지 석 달이다 되어간다. 한 번도 답을 들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듣기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질문은 계속된다. “고대영 사장님, 공영방송 추락에 대해 어떤 책임을 지실건가요? 대체 언제쯤 나가실 건가요? 저와 KBS 구성원들은 정말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