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이미 끝났다. 이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차례다. ‘국정농단과 직권남용’에 관한 한, 김기춘은 ‘악의 화신’이라 불릴 만하다. 그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의 또 하나의 몸통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의 직권을 남용하여 헌정 질서를 어지럽힌 행각들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이 달 2일 청와대 비서실장 당시 최순실씨 관련한 보고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김기춘은 “보고받은 일 없고 알지도 못합니다. 만난 일도 없습니다. 통화한 일도 없습니다”고 잡아뗐다. 그가 새빨간 거짓말을 한 것인지 아닌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그 이전에 그의 이력과 행적만 훑어봐도, 그가 최태민의 딸 최순실을 모르고 넘어갈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자 합리적 추론이다. 우선 그의 경력을 살펴보자. 1960년 사법고시 합격으로 시작된 그의 공직생활과 경력의 화려함에는 이 땅의 수많은 민중과 노동자들의 희생과 피눈물이 배어있다.

1964년 해군 법무관으로 해병 대위로 제대한 뒤 광주지검 검사로 검찰 조직에 들어간 뒤 법무부 법무실에 파견되어 박정희의 유신헌법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1974년 9월부터 4년5개월 동안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에 파견되어 일하며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인권을 탄압하는데 앞장선 의혹을 받고 있다. 그런 공로로 1979년 2월 박정희에 의해 대통령 법률비서관으로 발탁된다.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 대구 지검장과 대구 고검장, 검찰총장을 거쳐 법무부장관을 지냈다.

박정희가 당시 중앙정보부와 법무부장관 등 하수인을 동원하여 김지태씨의 부일장학회를 빼앗아 이름을 바꾼 정수장학회 장학금을 받은 졸업생 3만8천여명의 모임인 상청회(常靑會) 회장을 지냈고, 1992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부산의 ‘초원 복국’ 집에서 부산‧경남 지역의 기관장들에게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자고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에 호소하였다. 이후 고향인 경남 거제에서 국회의원에 세 번 내리 당선된 뒤 박근혜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로 있는 동안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거쳐, 2013년 8월부터 작년 2월까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말하자면, 그는 아버지 독재자 박정희에 이어 박근혜에게 대를 이어 충성한 ‘측근 중의 측근’이자 박근혜의 ‘무한 신뢰’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최태민의 딸인 최순실을 몰랐다면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그 뿐이 아니다. 그는 부인과 함께 박근혜와 최순실이 자주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 차움의 일본 병원에서 줄기세포 치료를 여러차례 받았지만 1회분 치료비 정도만 지불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박근혜의 청와대는 배아줄기세포 관련 규제를 풀었고, 그 잠재적 수혜자 중의 하나가 차움 병원이었다. 김기춘에게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는 대목으로 보인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과정에서 그가 한 역할과 의혹 외에, 그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자행한 직권남용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이른바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는 인사 1만명 안팎의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하고 탄압을 총지휘한 의혹일 것이다. 그는 이 의혹 하나만으로도 감옥에 가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김기춘을 ‘악의 화신’이라 불렀다.

다음으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을 보자. 그는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으로 청와대에 들어간 뒤 작년 1월 고 김영한 민정수석비서관의 사퇴로 대통령의 친인척 관리를 지휘하는 민정수석으로 승진했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과정 곳곳에 그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직권남용과 탈세 의혹에다 대한변호사협회 윤리규정 위반까지 그가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에 저지른 비행과 비리, 불법만 해도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의 사퇴만으로 헌정 사상 유례가 없는 국정농단 사태를 끝내서는 안 된다. 특검 수사를 통해 김기춘, 우병우를 비롯한 관련자들이 저지른 비리와 불법행위들을 철저히 파헤쳐 법의 심판대에 세우지 않으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끝나도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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