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을 파괴하고 국기를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 또는 ‘공동정범’이라는 사실이 많은 증거를 통해 밝혀진 박근혜가 검찰 조사를 거듭 미루고 있다. 그의 변호인 유영하는 지난 17일 “대통령의 일정과 저의 준비 상황을 감안할 때 검찰의 대통령 관련 의혹에 대한 조사가 완료될 수 있다면 저 역시 최대한 서둘러서 변론 준비를 마친 뒤 내주에는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하겠다”고 기자들에게 밝혔다. 최순실이 기소된 다음에 공소장 내용을 보고 조사에 대처하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셈이다.

‘1백만 촛불’의 퇴진 함성에 귀를 막은 채 한 주 가까이 몸을 사리고 있던 박근혜는 17일, 검찰이 ‘부산 엘씨티 비리 의혹’을 엄정하게 수사하라고 지시하면서 그동안 포기하고 있던 ‘국정’의 일선에 나섰다. 그러자 야 3당과 시민단체들은 “피의자가 검찰에 수사 지시를 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그렇다. 박근혜는 지금 피의자일 뿐 아니라 주권자 95%로부터 실질적으로 ‘파면 선고’를 받은 정치적 금치산자이다.

▲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박근혜가 주권자들의 퇴진 요구를 무시한 채 청와대를 지키겠다는 아집을 버리지 않자 야권과 법조계에서는 그를 체포해서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낸 국민의당 의원 천정배는 17일 당의 모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 대통령은) 범죄 혐의로 봐도 주범 중에서도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한 주범으로 혐의를 받고 있다. 빨리 검찰이 입건을 하고 피의자로 처리를 해 체포를 시도해야 한다. 헌법에 대통령은 소추, 기소를 받지 않는다고 되어 있을 뿐이지 수사가 불가능하다고 볼 이유는 전혀 없다.” 변호사 이재화는 16일 민중의 소리에 기고한 칼럼에 아래와 같이 썼다.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당연히 그를 입건하고 피의자로 소환조사를 해야 한다. 소환조사에 불응하면 강제수사로 전환해야 한다. 검찰은 지금이라도 대통령을 제3자뇌물수수, 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입건한 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해야 한다. 장소도 제3의 장소가 아닌 검찰청으로 정해야 한다. (···)

대통령이 제3자뇌물수수, 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의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음은 이미 증거에 의해 입증되었다. 대통령이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출석하라는 검찰의 요구에 불응하면 체포영장 발부의 요건은 모두 충족된다. 검찰은 당장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대통령을 체포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든 희대의 ‘국기문란 사건’에 대해 그 진상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이것만이 검찰이 살 길이자 대한민국이 살 길이다.”

나는 검찰이 박근혜를 형사소송법에 따라 강제 수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내란죄’ 혐의를 적용해 형사상 소추를 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 이유를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 11월12일 민중총궐기 당시 모습. ⓒ최창호 작가
헌법 제84조에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형법 제87조(내란)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91조(국헌문란의 정의)에는 박근혜를 형사소추할 수 있는 근거가 명확히 나와 있다. “1.헌법에 또는 법률에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 하고 헌법 또는 법률의 기능을 소멸시키는 것. 2.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하여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 검찰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인 청와대 전 정책조정수석 안종범, 부속비서관 정호성, 그리고 누구보다도 최순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의자들의 다이어리, 휴대전화 기록 또는 구체적 진술 등을 통해 박근혜가 ‘국헌문란’을 자행한 사실들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박근혜 자신이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왜 그렇지 않은지를 변호인을 통해 밝혀야 할 것이다.

검찰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시기는 물론이고 이명박·박근혜 정권 8년 9개월 동안에도 청와대에 맞서 정당하게 권한을 행사하지 못했다. 검찰 상층부뿐 아니라 평검사 다수조차 인사권과 감독권을 장악한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이제 검찰은 그런 굴종과 기회주의를 훌훌 떨쳐버려야 한다. ‘1백만 촛불’이 대변하는 ‘박근혜 퇴진 투쟁’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헌정파괴의 주범들을 엄정하게 수사해 기소함으로써 법정에 세우는 작업은 2016년 가을의 항쟁을 명예혁명, 평화적 시민혁명으로 승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 이 글은 <뉴스타파>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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