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방송 기술들이 속속 등장한다. UHDTV라는, 기존 방송보다 네 배 이상 화질이 선명한 초고화질 TV 방송도 도입된다. VR(Virtual reality) 영상도 앉아서 360도 전후좌우 화면을 모두 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 정작 시청자들은 TV 앞을 떠나는 상황이다. 이런 첨단 방송 영상 기술은 떠나간 시청자들을 다시 TV 앞으로 불러모을 수 있을까.

김도식 SBS UHD추진팀장 겸 차세대영상콘텐츠TF 간사는 SBS에서 TV의 미래를 고민하고 있다. TV 안팎으로 무한하게 확장되고 있는 양방향·개인화된 방송 콘텐츠 소비 패턴에 맞춰 차세대 영상 방송 전략을 추진 중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3일 오후 서울 목동 SBS 사옥에서 김도식 팀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UHD 방송은 TV 안에서의 혁신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지상파들은 내년 2월부터 지상파 초고화질 본방송을 앞두고 있다. UHD가 본격 도입되면 기존 방송 화면에서 구현되지 못했던 색감과 명암 등이 더욱 다채롭게 표현된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UHD 지상파 방송을 위해 추가로 700MHz 주파수를 받기도 했다.

▲ 김도식 SBS UHD추진팀장.
김 팀장은 UHDTV가 단순히 선명한 화질의 방송 영상을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방송으로 거듭나기 위해 준비작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 주파수를 활용한 쌍방향 방송 콘텐츠 제공을 통해서다.

지상파가 시도하려는 UHD 콘텐츠의 기반은 ATSC 3.0이라는 방송규격으로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차세대 지상파 방송 규격인 ATSC 3.0은 전송 효율이 높고 모든 데이터가 IP 기반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방송과 인터넷 서비스의 융합에 효과적인 기술이라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으로 가기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다. 김 팀장은 “TV 뿐만아니라 집안의 (사물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기기에서 동시에 방송 콘텐츠를 받아 볼 수 있는 콘텐츠의 무한 확장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UHD TV 도입 이후 지상파 방송사들이 공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또 다른 대안으로 재난방송(Emergency Alert System)이 있다. 갑작스러운 재난 상황에서 통신이 끊기더라도 지상파 전파만 받으면 긴급 재난 방송을 듣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UHDTV가 TV 안에서의 혁신이라면 TV밖에서의 차세대 영상 전략은 VR이라고 할 수 있다. 360도 VR이 TV밖에서의 혁신을 상징하는 이유는 직사각형 프레임의 개념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김 팀장은 기존 방송 영상에서는 찍는 사람의 관점과 의도가 화면 프레임에 반영되지만, 360도 VR 카메라를 통해 촬영하면 프레임 밖의 다양한 현상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열린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뉴스 콘텐츠에서도 360도 VR 카메라로 찍은 영상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김 팀장은 “국가정보원 직원 한 명이 경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을 두고 번호판이 바뀌었다는 등 여러 의혹들이 불거졌다. 뉴스가 정해진 프레임으로만 사건 현장을 전달하지 말고 VR로 찍으면 주변 환경을 모두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TV 뉴스 밖 공간을 보여주고 시청자들에게 그 현장을 좀 더 깊고 넓게 연결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VR 영상은 어지럽고 콘텐츠 구현이 어렵다는 한계가 있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 김 팀장은 “이미 나온 기술 수준으로도 보완은 가능하다. 기술을 넘어 상용화 단계에서, 기존 방송 영상을 주로 만들던 현장에서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을 시작한 단계”라고 전했다.

▲ ⓒ iStock.

SBS가 TV 안팎으로의 콘텐츠 혁신을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현장 PD들은 여전히 프레임 안으로 콘텐츠를 넣는데 익숙하다. 기존 영상 제작 방식을 그대로 가면서 당장 VR 카메라를 도입하기도 쉽지 않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360도 VR 카메라로 촬영하면 배우를 둘러싼 수백명에 달하는 스태프들도 모두 찍히기 때문이다. TF팀에서 VR 활용안에 대해 제안하면, SBS의 각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예산과 장비, 촬영 방식 등을 고민하고 실험 하는 중이다.

TV 안의 차세대 영상을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제작 장비부터 세트, 조명 등 모든 제작 환경은 고화질 방송 화면에 맞춰 더욱 디테일해져야 한다. 김 팀장은 “UHD이외에도 다양한 기술을 통해 방송 주파수를 좀 더 가치있게 쓸 수 있는 방안을 고안 중이다. 주파수를 활용해 무료 VOD를 제공하거나 양방향 서비스를 확대하고, UHD 화면을 풀HD 영상 네 개로 쪼개 다양한 화면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여러 방법들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빠르게 빠져나가는 지상파 방송사 시청자들이 고민이다. TV 안팎의 콘텐츠 실험과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탈TV’ 작업을 시청자들이 기다려줄까. 콘텐츠를 만들고 송출하는 플랫폼까지 가진 ‘전통 콘텐츠 강자’인 지상파 입장에서도 빠르게 혁신하지 않으면 이대로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 직면한 이유다.

김 팀장은 “10년 내에 사람들은 TV를 아예 보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TV는 여전히 콘텐츠를 전달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매체일 수 있다. TV 밖에서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 소비들이 이뤄질 것이고, 이 시장을 잡아야 한다. 지상파는 여전히 뉴스 등 다양한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생산자다. TV는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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