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느끼는 경영진과 젊은 구성원들, 양쪽은 바뀌었다. 그런데 중간은 그대로다.” 김민성 한경닷컴 뉴스래빗 팀장은 한국 언론의 혁신에서 ‘중간 관리자’와 ‘취재기자’의 변화를 과제로 꼽았다.

김민성 팀장은 지난해 한경닷컴에서 ‘뉴스래빗(LAB IT)’을 만들고 혁신 실험을 하고 있다. 일간지 ‘닷컴’하면 기사 제목을 자극적으로 바꾸고 어뷰징을 하는 공장처럼 인식되지만 그는 “혁신을 실험하고 이를 언론에 이식하는 부서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4월 시즌2 개편을 앞두고 있는 뉴스래빗의 시행착오를 듣기 위해 지난 6일 한국경제 사옥에서 김 팀장을 만났다.

“CMS 못 넣는 인터랙티브 기사, 한계 분명”

‘디지털 혁신’을 표방한 기사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이 나온 이래 국내에도 비슷한 인터랙티브 기사는 쏟아졌다. 뉴스래빗의 디지털 콘텐츠는 “워싱턴포스트니 뉴욕타임스니 외국 사례만 따라하지 말고 우리가 직접 만들 수 있는 시도를 해보자”는 취지로 만들게 됐다.

▲ 김민성 한경닷컴 뉴스래빗 팀장. ⓒ김민성 제공
▲ 김민성 한경닷컴 뉴스래빗 팀장. ⓒ김민성 제공
디지털 혁신을 하는 언론사는 적지 않지만 김 팀장은 “우리는 CMS 기반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뉴스래빗을 통해 디지털 환경에 맞는 프로토타입 기사들을 만들었다. 별도의 페이지를 만들어서 제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러나 언론사 사이트 내에서, 기사 페이지에서 상상이 구현되지 않는다. CMS에서 ‘안 된다’고 하니까 자꾸 상상을 포기하거나 바깥으로 나가서 콘텐츠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난관이 있었다. 김 팀장은 “포털이 큰 벽”이라고 꼬집었다. “네이버와 다음은 가장 옛날 포맷의 텍스트, 사진만 담도록 하고 있다. 포털에서 구현이 안 되니 혁신 작업이 지체되고 있다. 유튜브 영상을 기사에 넣는 것도 원천적으로 막아서 협의 끝에 풀게 될 정도다.

”최근 뉴스래빗이 선보인 ‘서울커피맵’은 서울의 카페 전수조사를 통해 어느 프랜차이즈 카페가 어느 지역에 있는지, 시기에 따라서는 프랜차이즈가 얼마나 생겨났는지를 보여주는 빅데이터 활용 기사다. 여기에는 특정 카페 이름을 클릭하면 위치를 띄우는 식 효과가 있지만 일반 이미지처럼 텍스트 기사 안에 들어 있다. 회사에 ‘CMS를 외부 프로그램과 연동할 것’을 요구하고, 일일이 테스트를 거친 결과다.

▲ 뉴스래빗의 서울커피맵 기사. 기사 텍스트 안에 인터랙티브 툴을 넣었다.
▲ 뉴스래빗의 서울커피맵 기사. 기사 텍스트 안에 인터랙티브 툴을 넣었다.

이처럼 CMS에 인터랙티브 기사를 접목하는 이유는 ‘지속가능성’ 때문이다. 뉴스래빗은 지난 1년 동안 만든 20여개 프로토타입의 디지털 기사를 만들어 일반 기사에 적용하는 게 목적이다. 대표적인 프로토타입 기사는 체험형 콘텐츠 ‘레빗GO’다. 기자들의 체험을 동영상, 인포그래픽, GIF(움직이는 이미지)를 활용해 선보였다. 직접 전기차를 타고 춘천까지 가는 체험 기사에는 지도를 GIF이미지로 바꿔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식이다.

기자와 기술의 ‘협업’, “기술진은 어시스턴트가 아니다”

기자와 기술진의 협업을 통해 ‘뉴스래빗’의 실험을 ‘편집국’으로 옮기는 시도도 하고 있다. 김 팀장은 “기존 신문사의 가장 큰 문제는 협업문화가 없다는 사실”이라며 “기자가 텍스트를 쓰고 보내면 기술팀이 이걸 토씨하나 바꾸지 못하고 그대로 넣어야 한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기본 텍스트가 고리타분하면 전혀 새롭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뉴스래빗이 ‘연중 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을 내걸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1기자1랩’ 시리즈를 만든 배경이다. 뉴스래빗의 비쥬얼 에디터, 영상 에디터, 데이터 에디터가 취재기자를 한명씩 만나 협업을 통해 디지털에 특화된 콘텐츠를 제작하는 실험이다. 미국의 금리문제를 비둘기와 매의 대화로 풀어낸 “‘더 버드 2015’ … 매둘기의 역습”이 대표적이다.

김 팀장은 “사실상 실패한 기획”이라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스토리텔링 방식을 고민해봐”라는 제안이 기존 기사 형식에 익숙해진 기자들에게는 힘든 미션이었기 때문이다. “보람찼다”는 피드백도 많았지만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김 팀장은 “기자들은 기존의 노동을 그대로 해야 하는 데다 글 기사 형식에 익숙해진 상황에서 변화를 주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협업’이 취지와 달라지는 경우도 있었다. “기술팀과 기자가 유기적으로 소통해야 하는데 우리 팀이 언제부턴가 어시스턴트처럼 변해가고 있었다”고 김 팀장은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기술인력도 독립된 저널리스트다. 그들에게 동등한 지위가 부여되고, 결과물에 이들의 시각이 반영되지 않으면 상상력이 발현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 뉴스래빗 CI.
▲ 뉴스래빗 CI.

“리뷰를 해 보니 우리도 문제가 있었다. 해당 기자의 특성을 잘 모른 상태에서 협업부터 시작하니 한계가 분명했다.” 뉴스래빗은 시즌2에서 연령대가 높은 기자를 위한 ‘맞춤형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다. 기자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악한 다음 가장 잘 할 수 있는 소재를 발견해 접목하겠다는 것이다.

“어떤 기술을 쓸 것인지도 데스크가 판단해야”

김 팀장은 지금까지 여러 언론사의 사례를 공부하며 디지털 실험을 외면하는 데스크를 목격해왔다. “나는 잘 모르니, 젊은 기자들끼리 알아서들 해봐”라며 손을 놓고 있거나 디지털 기사에서도 오타만 잡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는 “누구보다 데스크가 알아야 취재하는 기자들을 설득할 수도 있다”면서 “실전에 뛰어들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하고, 콘텐츠 제작과정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데스크는 이슈가 있으면 어떻게 맞춤화한 스토리텔링으로 끌고 갈지 정해야 한다. 무작정 기술을 쓰라고 할 게 아니라 ‘이 현장 기사에서는 VR을 써야 한다’. ‘이번 인터뷰에는 GIF이미지를 넣자’ 등의 결정까지 해야 한다.”

▲ 뉴스래빗의 VR콘텐츠.
▲ 뉴스래빗의 VR콘텐츠.

혁신 조직에서는 트래픽 압박을 막는 것도 그가 꼽는 중간관리자의 역할 중 하나다. ‘혁신’ 타이틀을 내건 시도는 많았지만 스낵컬쳐 콘텐츠나 온라인 이슈대응 등을 통한 ‘트래픽 장사’로 귀결되는 현실이다.

김 팀장은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시간’이라고 말한다”면서 “트래픽도 챙기면서 실험도 잘 하라는 건 비현실적이다. 중간관리자 선에서 트래픽 압박에 방벽을 쳐야 한다. 당장 돈이 안 될 것 같아도 맛없는 반찬 10개보다 맛있는 거 하나가 확실한 브랜드 제고 효과를 갖는다는 걸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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