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둘러싼 책임론이 옥시 등 기업에서 정부로 옮겨 붙고 있다.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와 늑장대응이 문제를 5년 간 키워왔다는 것이다. 이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이 “옥시의 부도덕한 행위가 핵심”이라며 정부 책임론의 확산을 차단하고 나섰다.

권성동 의원은 1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 섣불리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정치공세를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사건의 본질은 민간기업 옥시가 영업이익을 위해 카페트첨가용 화학물질을 가습기 살균제로 용도변경 없이 사용한 부도덕한 행위”라고 밝혔다.

권 의원은 “당시 우리나라 화학물질에 대한 측정판단 기준 제도 미비로 (사태가) 발생했기 때문에 피해 인과관계가 규명된 2011년 이후의 시각으로 (책임소재를)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또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문제는 20여년전 시작됐고 10년전부터 본격적으로 피해가 발생한 사안이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 옥시가 생산해 판매했다. 2006년에 원인미상의 호흡부전증 어린이 환자가 발생해 조사했지만 원인 규명에 실패했다”며 이전 정부를 거론했다.

▲ 권성동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여당 간사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포커스뉴스

권 의원은 이어 “2011년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확인돼 제품 수거가 이뤄졌고 이는 이명박 정부 때다. 과거 10년 동안 누적된 문제해결을 위해 2013년 박근혜 대통령 때 피해자 조사를 본격 시행했고 피해자 지원방안을 처음으로 시행해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전 정부를 거론하며 박근혜 정부에서 피해자 구제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한 것이다.

권 의원은 기자회견 직후 백브리핑 자리에서도 작심한 듯 정부 책임론에 대한 반박을 이어갔다. 권 의원은 “이 사건의 첫 번째 핵심은 옥시가 정말 나쁜 기업이라는 거다. (화학물질을) 용도대로 써야하는데 용도를 변경하고도 건강에 해가 미치는지 검사하지 않았다”며 “용도변경할 때 새로 검사하게끔 법을 만들어야하는데 법을 못 만든 책임은 국회와 정부에 있다. 공동책임”이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옥시가 주된 책임자고 정부와 국회 책임은 정치적, 도의적 책임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자꾸 현 정부가 무슨 잘못을 했느니 하면 (안 된다)”며 “현 정부는 사건을 규명하고 사건을 규명한대로 피해자 지원을 위해 예산 범위 내에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옥시의 사과 이후 여론의 비판은 미흡한 대처를 한 정부 책임론으로 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윤성규 환경부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11일 열린 환노위 전체회의에서 윤 장관은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장하나 더민주 의원이 “정부 책임도 있는데 공식적인 사과가 아닌 유감 표명에 그치고 있다. 정부의 책임이 있는가? 사과할 의향 있는가?”라고 묻자 윤 장관은 “사실상 그런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답했다.

권성동 의원은 ‘왜 오늘 기자회견을 했나’라는 질문에 “어제 장관에 대한 질의를 통해 정부 입장이 나와 있는데 (언론에) 제대로 반영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부랴부랴 정리해서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국회와 정부 책임론이 제기되는 이유는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3년간 새누리당과 정부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권성동 의원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국회의원이 제안한 법률을 다 통과시키면 대한민국 재정은 펑크 난다”며 “그런 논리면 국회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다 통과시켜야 된다는 건데 그렇지 않다. 수용할 수 있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다”고 밝혔다.

권 의원은 “우리나라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자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런데 ‘선배상’하라는 특별법은)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라며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해주는 게 맞지만 또 다른 피해자도 있을 것 아닌가. 무슨 음식을 먹고 식중독 걸린 사람들도 있고,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피해가 가장 큰 거다”라고 말했다.

권 의원은 또한 “멀쩡히 길 가다가 미친놈이 칼로 찔러 사람 죽었는데 왜 국가가 경찰관 배치 안했느냐, 손해배상 해달라고 하면 국가재정이 감당 못한다”며 “예컨대 누가 폭행을 당했는데 폭행한 사람이 무일푼이면 형사 처벌만 시킬 수 있지 돈으로 배상은 못한다. 그런 사람들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예외를 인정하면 피해자 수가 많은 사람만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는 거고 피해자 수가 몇 명 안 되는 사람은 찍소리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이어 “내가 이런 이야기하면 손해 본다. 피해자들이 가만 있겠나”라며 “내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국정을 담당하는 입장에서는 나라 전체를 봐야지 특정분야만 봐선 안 된다. 욕 얻어먹을 각오하고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5월2일 옥시 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 및 사과 기자회견 직후 최승운 가습기살균제피해자유가족연대 대표가 연단 위에 올랐다. 그를 바라보는 옥시 레킷벤키저 관계자들. 사진=이치열 기자

권 의원은 2014년 가습기살균제 환자에게 우선 피해 보상 및 지원을 해주는 ‘환경보건법 개정안’이 환노위에서 논의됐을 때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권 의원은 2014년 12월 2일 환노위 회의에서 “법 일반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환경성질환으로 인해 피해 입은 국민만 특별 보호해주고 교통사고 입은, 범죄행위로 인해서 상해 입은 국민들은 특별대우 안 해준다는 것은 법 원칙에 맞지 않는다. 형평성에 맞지도 않는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백브리핑 자리에서 “자꾸 언론이 (나를) 그리 씹던데 교통사고 당한 사람이 ‘왜 국가가 차를 운행하게 했나’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나오면 어떻게 감당하나”라며 “가습기 피해자들도 정말 원통하죠. 분통 터지죠. 그 심정은 이해하지만 다른 분야의 피해자들과 균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충도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권성동 의원은 야당이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권 의원은 “피해자들이 보상 받으려면 피해사실이 가습기 때문에 생겼다는 인과관계를 인정받아야 하고 이 점을 개개인이 입증하기 어렵기에 정부가 대신 역학관계조사를 도와주고 있다”며 “이 문제를 좀 더 집중해서 잘할 수 있도록 독려할 문제지 나머지는 다 정치적 문제다. 야당이 제기하는 건 다 정치적 문제”라고 밝혔다.

권 의원은 “야당 의원들도 그 당시에 법을 통과시키려는 적극성이 없었다. 내가 법안소위 위원장이었는데 나한테 더 해야 된다는 이야기가 없었다”며 “검찰 수사하고 언론 보도 나오니까 이제와 자기들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처럼 주장하는 거다. 정치권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평상시부터 촉구했으면 되지만 입 다물고 아무 관심 없다가 언론에 보도되니 그제야 이거 해주겠다 저거 해주겠다, 야당은 무슨 이야기든 할 수 있다. 책임이 없으니”라며 “하지만 주어진 예산 내에서 운영해야하는 정부당국 입장에서는 선례가 남을 경우 여러 분야에서 ‘우리도 해달라’는 걸 어떻게 막을 수 있나. 그런 모든 것을 고려해야하는 정부여당의 책임감 차이다”라고 설명했다.

권 의원은 “기자 여러분이 보기에 우리가 미온적으로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다. 환경성질환으로 인정하고 장례비, 의료비 지급하고 추가적 지원을 강구하는 것은 굉장히 진일보한 일이고 나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며 “해줄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해줄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세상사 어떻게 요구하는 대로 다 해주나”라고 반박했다.

야당은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주장하고 있지만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 후 청문회’를 말한다. 권성동 의원은 이에 대해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하든 청문회를 하든 언제 속시원하게 원인 밝히는 걸 본 사례가 있으면 말씀해 달라”며 “여기는 아무것도 못한다. 국정조사라는 건 정치공방”이라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또한 “야당은 진실, 사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보다 여당과 정부 흠집내겠다는 의도로 면책특권을 이용해 없는 사실도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상처 내는 거고 여당은 야당의 정치공세를 방어하는데 급급하다”며 “여태까지 국정조사 한 거 보라. 진상 밝힌 것 있나. 단 한 건도 없다”고 말했다.

권 의원은 “범죄자들은, 자기 죄를 숨기려하는데 우리는 아무것도 없다. 검찰은 압수수색권, 계좌추적권, 구속권도 있고 체포권, 강제수사권이 있기에 모든 자료를 다 받지만 우리는 주는 자료만 받을 수 있고, (관계자들이) 안 나와도 그만”이라며 “원인을 밝힌 후에 하는게 훨씬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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