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님, 3개월 후에도 가습기 살균제 기사 쓰실 건가요?”

질문을 하러 간 자리에서 질문을 받았다. 5월 말이면 국회를 떠나야하는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자에게 물었다. 2011년에 본격화된 가습기 살균제 문제, 5년이 지난 이제야 공론화됐다. 이 관심이 지속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2011년 8월 31일 질병관리본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중증 폐질환의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피해자 접수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온 지 2년이 지난 2013년 7월에서야 시작됐다. 정부는 2014년 3월에야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의 원인이라는 공식판정을 내린다. 검찰수사는 그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지난해 10월에서야 시작됐다.

장하나 의원은 뒤늦은 관심에 갑작스레 바빠진 인물 중 한 명이다. 장 의원은 매년 국정감사에서 환경부를 상대로 가습기살균제 피해대책을 물었고 매번 보도자료를 냈다. 2013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처음으로 발의했다. 5월 29일이면 자연인 신분으로 국회를 떠나는 ‘말년’ 장하나 의원이 갑자기 몰려드는 언론 인터뷰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게 된 이유다.

▲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오전 의원실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치열 기자
- 가습기살균제 문제는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됐나

“19대 국회 개원한 초창기에 피해자 분들이 돌아가면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2011년 문제가 터졌을 때 이명박 정부에서 김황식 총리가 주도적으로 TF팀도 구성하고 그 후 조용했다. 해결된 줄 알았다. 그런데 국회의원이 되고 등원하는 길에 그 분들이 서 있는 거다. 그래서 물어봤는데, 아무것도 된 게 없다는 거다. 황당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그 분들도, 나도 잘 만난 거다”

- 그간 피해구제를 위한 많은 법안들이 발의됐지만 통과가 안 됐다. 왜 안 된 건가

“정부는 정부의 책임이 없기에 정부예산, 국민세금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처음엔 환경보건법을 통한 지원을 요구했다. 환경성 질환이면 국가가 지원할 수 있는데,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질환을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한 거다. 근데 정부는 화학제품으로 인한 피해기 때문에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 못하겠다고 했다. 대기가 오염된 경우가 아니니 환경성 질환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면서 국회에서 관련법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진짜 의지만 있으면 정부도 법 만들 수 있다. 근데 국회보고 만들라는 건 새누리당을 앞에 내세워 방어하겠다는 것 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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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었나

“환노위원장이 야당 소속이었기에 여러 피해구제 특별법이 통과 목전까지 갔다. 2013년 8월에는 통과시키려고 했고 8월 임시국회가 열렸는데 정부가 그제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손상을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해서 지원하겠다고 했다.”

- 왜 입장을 바꾼 건가

“특별법 통과가 가시화되자 싸게 먹히는 방법을 택한 거라 본다. 이래서 피해당사자들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거다. 이런 상황 속에서 5년을 보냈다. 그렇게 환경성 질환으로 지정되자 ‘지원 시작했으니 이제 특별법은 필요없겠네요’라며 특별법이 유야무야 됐다.”

- 특별법으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과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해 지원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

“정부가 환경성 질환으로 인정하는 것은 시행령에 의거하기에 언제 어떻게 뒤집힐지 모른다. 하지만 법으로 못 박아놓으면 정치지형의 변화와 무관하게 안정적으로 지원이 가능하다. 또한 지금 이루어지는 지원은 가해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하다 보니 등급을 나눠 엄격한 기준으로 최소인원에게만 지원한다. 사망자에게는 장례비, 생존자들에게는 의료비, 치료비를 지원하는 정도다. 물론 이런 지원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억대의 돈이 들어가는 폐 이식 수술로 인해 엄두도 못 내던 피해자들이 수술을 해서 산소통을 뗀 사례도 많다. 하지만 이런 지원만으로는 부족하다. 피해자들은 바깥출입도 어렵고 경제활동은 꿈도 못 꾸는 처지다. 요양수당, 생계비 지원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특별법이 필요한 이유다”

- 정부의 지원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은 폐 질환 중 딱 한 가지 소견(폐섬유화), 그 증상과 일치하느냐 마느냐만 본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 정도 유독물질이면 폐 이외의 다른 장기손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지금의 기준은 비용을 줄이기 위한 것으로 밖에 안 보인다.”

- 늦었지만 옥시가 나서서 사과까지 했으니 이제 잘 풀릴까.

“사과할 기회는 5년 전부터 있었다. 피해자들이 1인 시위 매일 하고 한 번만 만나달라고 했는데 그 때마다 기업들은 진상취급, 악질 민원인 취급을 했다. 한 번은 피해자들과 같이 옥시 회사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국회의원이 가니까 그래도 문은 열어줬다. 근데 직원 식당 같은 데 앉혀놓고 책임 있는 사람도 안 나왔다. 이런 히스토리가 있는데 이제 와서 사과하니까, 그 사과가 사과로 안 들리는 거다.”

▲ 5월2일 옥시 레킷벤키저의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 및 사과 기자회견 직후 최승운 가습기살균제피해자유가족연대 대표가 연단 위에 올랐다. 그를 바라보는 옥시 레킷벤키저 관계자들. 사진=이치열 기자
- 지금 상황은 마치 검찰과 정부가 잘못한 기업을 때려잡는 것 같은 그림이다

“포청천 코스프레 하고 있다. 정부가 해당 가습기 판매허가 다 내줬다. 가해기업 책임으로만 몰아가는 것도 어불성설이라 본다. 잠깐 팔린 것도 아니고 15년 동안 800만개가 팔리는 동안 가만 놔뒀으면 그건 정부 책임이다. 구하기 힘든 물건도 아니고 동네마트만 가면 다 널려있었다. 정부의 책임이 없다는 식의 정부 태도가 가장 큰 재앙이고 문제의 본질이다. 이걸 못 고치면 이런 사고 다시 일어난다. 아무리 검찰 수사를 하고 교수를 조지고 옥시를 조지고 해도 죽음의 행렬을 막으려면 정부가 책임인정하고 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하는 것으로 첫 단추를 끼워야한다.

- 검찰 수사 대상에도 이런 정부의 늑장 대응은 포함되지 않았다

“기자들이 정부는 수사 안 하냐고 물어보면 수사 선상에 없다고 한다. 옥시 등 몇 군데만 건드리고, 질병관리본부 발표결과에 없다는 이유로 다른 PB상품은 수사도 안 한다. 하지만 이마트 PB상품만 썼는데도 사망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럼 검찰이 다시 조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 검찰이 시끄럽게 떠들기만 하고 결국 과징금 얼마 내게 하고 끝날 거란 우려도 많다.

“가습기살균제 광고에 ‘아기들에게 무해하다’ ‘99.9% 천연물질’이라고 나왔다. 마셔도 될 것처럼 광고했다. 근데 그걸 사용한 사람들 수백 명이 죽었다. 허위과장광고라고 5200만원 때렸다. 독약에 안전하다고 써 붙여 팔아서 사람이 죽어도 5200만원만 내면 끝인 거다. 그런 선례를 봐왔으니 검찰 수사에 대한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회도 청문회 한다고 하지만 국민의당까지 3당 체제가 됐으니 원 구성이 19대 때보다 2~3개월 더 지연될 수도 있다. 6~7월 되면 더민주, 새누리당 전당대회로 시끄러울 거다. 3개월 후에도, 기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기사를 쓸까? 관심이 식으면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하겠다는 약속을 지킬까.”

-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 후 청문회’를 주장하던데.

“수사에 영향을 준다고 검찰 수사 후에 하자고 한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당연히 수사에 영향을 줘야하는 거 아닌가? 국회가 청문회 통해서 진상을 밝혀내서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쳐야지.”

의원회관 709호 장하나 의원 사무실 앞에는 각종 토론회 포스터가 붙어있다. 가습기 살균제 대책, 노동권, 해고노동자, 동물권 등등. 장 의원이 지난 4년 간 다룬 의제는 이처럼 사회에서 ‘소수의 것’로 취급되면서도 쉽게 해결하거나 (의원 입장에서) 성과를 볼 수 없는 의제들이 대부분이다.  

- 장하나 의원은 속칭 ‘답 없는’ 이슈들을 파고든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지만, 의원 입장에서 언론에 뭔가 해결했다고 보여주거나 치적을 삼을 수 없는 이슈들을 뜻한다.

“국회의원 의정활동도 언론에 얼마나 주목받느냐로 평가 받는다. 그래서 반짝 하다 마는 경우가 많다. 이슈 되면 이 의원 저 의원이 다루다가 잠잠해지면 다른 이슈로 옮겨간다. 4년 내내 하는 의원은 없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문제도 19대 개원했을 때 특위도 만들고 했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도 잘 안 풀리거나 언론 관심도 떨어지면 안 다루기 마련이다. 나도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100% 만족하지 못한다.”

- 이제 장하나가 없으면 이런 이슈는 누가 다루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다.

“제가 다루는 노동이나 환경 등등이 원래 주로 진보정당이 다루던 이슈인데, 19대 때 진보정당이 내적‧외적으로 어려웠다. 그래서 농담으로 ‘장하나 밖에 안 보인다’는 말도 하신다. 틈새시장에서 활동한 셈이지만 현장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보기엔 장하나의 태생적 한계도 있었던 것 같다. ‘민주당 나부랭이’로는 성에 안 차셨을 거다. (웃음) 20대 국회에선 현장에서 많이 만난 박주민 변호사가 저와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내 정치를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장하나가 박주민을 대신할 순 없고 박주민이 장하나를 대신할 순 없다. 그래서 재선하려고 했지만 또 해야겠다는 생각이 너무 늦게 들었던 것 같다.”

- 더민주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많이 들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운동권’ 이라는.

“당 안에서도 대놓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비권(비운동권) 출신이다. 학생운동도 안 했고. 따라서 ‘운동권 정치인’ 비판은 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감방에 간 적도 없다. 김종인 대표보다 깨끗하다. (웃음) 내가 2번을 달았던 이유는 정치권력을 얻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점, 나도 알고 있고 인정한다.”

- 정치면보다는 사회면에 많이 등장한 것이 재선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생각은 안 했나. 소위 당 안에서 줄도 타고, 라인도 만들고 해야 하는 데 그런 걸 못했으니.

“내가 소수자와 정치적 약자를 대변하겠다고 나선 이상 재선이나 정치권력을 유지하는 데는 유리하지 않은 위치에 서겠다고 마음먹은 거다. 사실 난 정치를 잘 모른다. 4년 있어 봤는데도 모르겠다. 계파니 뭐니 하는 협소한 의미의 정치를 모른다는 뜻이다. 알 수도 있었지만 발 담그거나 연루되기 싫었다. 무엇을 위한 권력싸움일까. 왜 권력을 갖고자 하는 걸까. 국민들도 망각하기 쉽다. 어느새 스포츠경기 보듯 정치를 누가 누구랑 싸워서 이기고 지는 걸로 여기게 된다. 정치가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랑은 달라야 하지 않나.”

▲ 인터뷰 중인 장하나 의원. 사진=이치열 기자

인터뷰 내내 장하나 의원은 ‘일반인’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보좌관 없이 홀로 의원실에서 기자를 맞이했고, 의원실에 걸려오는 전화도 직접 받았다. 인터뷰 도중 택배가 오자 직접 받으러 나갔다. 이제 그도 일반인으로서의 고민을 해야 할 때다.

- 이제 무엇을 하고 살 건가. 4년 뒤 다시 국회로 올 수도 있나

“언제든지 돌아올 생각은 있지만 쉽지 않다. 가난하기 때문이다. 돈 없는 사람이 정치하기 참 힘들더라. 언제든지 다시 정치를 할 생각은 있지만 국회의원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도 집착도 없다. 어제보다 더 멋지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살겠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다시 이슈화되는 것을 보면, 20대 때도 국회에 있었으면 참 좋았을 걸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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