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류경식당(북한식당)에서 종업원 13명이 집단 귀순한 사건이 발생한지 한달이 넘었다. 

북측은 남측 정부 당국이 개입한 '유인납치'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집단탈북한 종업원의 가족들은 CNN과 '납치한 딸을 돌려달라'라고 인터뷰를 했고, 유엔에 가족 송환을 요청하는 서한문을 전달했다. 

정부는 지난달 7일 입국한 사실을 하루 만인 8일 공식 발표했다. 이례적인 조치였다. 그리고 4월 13일 총선이 끝나자 정부 당국은 입을 다물었다. 북풍 공작 의혹이 강하게 일었지만 정부가 침묵하면서 탈북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런데 지난 9일 충격적인 뉴스가 보도됐다. 정부 당국은 탈북자들이 자발적으로 귀순한 것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는데 북한주민보호센터에 있는 탈북자들이 단식 농성에 들어갔고, 탈북자 중 한명이 사망했다는 보도였다.

북한 민간단체 '아리랑협회'가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메아리'는 이날 "긴급소식 남조선에 끌려가 단식을 벌리던 12명의 처녀 중 한명 사망한것으로 추측"이라는 글을 통해 "남조선당국의 유인랍치만행에 의해 서울에 끌려가 독방에서 단식투쟁을 벌리던 12명의 처녀들 중 한명이 사망하였다는 정보가 최근 정보원의 한 퇴직관계자로부터 새여나왔다"면서 "최근에 퇴직한 정보원의 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집단탈북했다고 하는 처녀들속에서 여러명이 단식을 하다가 빈사상태에 빠져있어 청와대와 정보원이 매우 당황해하고 있으며 얼마전에는 생사기로에 헤매던 한 명의 처녀가 끝내 사망했다고 한다"고 밝혔다. 관련 보도는 한 재미동포가 메아리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밝힌 것을 북한 전문 통신 매체인 NK투데이가 인용해 기사화하면서 알려졌다. 

자발적으로 남측의 땅을 밟았다던 사람이 북으로 돌려보내달라고 농성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사망한 것이라고 한다면 정부 당국의 주장은 거짓말이 된다. 북측은 ‘유인납치’에 대해 합당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는데 유인납치로 볼 수 있는 정황인 사망사건이 확인되면 실질적 무력 조치가 나오면서 남북대결이 격화될 수 있다. 국제사회도 '유인납치'라는 북측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며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를 추궁하고 인도주의적 문제로 남측을 비판할 수 있다. 

파장이 클 수 있는 뉴스임에도 조용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우선, 취재원이 가려져 있는 미확인 정보라는 점에서 일방적인 주장을 담은 북측의 흠집내기 전략일 수 있다. 관련 보도가 다른 매체로 확산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가 크다. 또한 국정원이 관련 의혹에 대해 일체 확인을 시켜주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공개적인 자리를 통해 이들의 신원과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도 의혹으로 그칠 공산이 많다.

하지만 총선 이전 대대적으로 집단탈북을 발표한 이후 여러 의혹을 낳고 있는데도 당국이 적극 해명하지 않으면서 의심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6. 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언론본부는 성명을 통해 “정부의 주장대로 자유의사에 의한 탈북이라면 탈북자들의 공개 기자회견 및 인터뷰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정부가 북측의 요구나 국내에서의 해명 요구에 귀를 막는 것은 새로운 형태의 이산가족 문제를 만드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또한 언론본부는 “정부는 북측 종업원들의 국내 입국은 신속히 발표했지만 북측의 가족 면담 요구 등에 대해 간략하게 거부 이유를 밝혀 대외적인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며 “남측 정부의 발표대로 집단 귀순이 이뤄졌다면 공개적인 절차 등을 통해 이를 신속히 입증하는 노력을 정부가 생략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의혹을 해소시키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정부 당국이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입국 경위를 밝히고 입장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해명이 늦어지면서 일본의 북한 납치 피해자 단체가 동경 주재 한국 대사관에 진상요구서까지 제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단체는 국내 북한 인권단체와 함께 진상요구서 초안을 작성하고 있다. 북측이 주장하는 유인 납치에 대해 진상 조사를 통해 밝혀줘야만 과거 북측의 일본인 납치에 대한 비판도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일본 납치 피해자 단체의 주장이다. 납치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진상을 밝혀야 하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오히려 북한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한 일본인의 경우 스페인에서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가 평양에 도착해 납치 논란이 일었고, 북측은 현재 남측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일본인이 여권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입국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에서도 이번 사건은 자발적 탈북이 아닌 당국이 개입된 '납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탈북자 지원 활동을 했던 김희태 목사(북한인권선교회장)는 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납치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집단탈북이 어려운 구조, 입국 절차상 문제 등을 들어 정부 당국의 개입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목사에 따르면 외국 주재 북한식당 종업원은 3명이 한 조로 묶여 서로 감시하고 보고하는 체계로 이뤄져 있어 탈북과 같은 얘기는 외부로 발설될 수 없다. 특히 북한은 개인이 여권을 가질 수 없고 지배인이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김 목사는 "지배인이 종업원들에게 새로운 북한 식당이 오픈되니 그쪽으로 가자고 했을 것이라는게 상식적인 추론"이라면서 탈북한 종업원 중 이 같은 사유로 뜻하지 않게 귀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번 집단탈북의 루트는 중국에서 북한과 무비자협정을 맺고 있는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를 탄 다음 경유지인 방콕에서 한국으로 입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목사는 "말레이시아행 비행기는 무비자로 탔지만 방콕에서 한국으로 올 때는 한국 대사관의 도움이 필요하다. 탈북자들은 임시 여행 허가증을 발급받고 방콕에서 출가 허가 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 정부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하다. 우리 정부가 사전에 모두 기다린 것"이라고 말했다. 종업원 중 일부가 방콕 경유지에서 목적지를 모른채 한국으로 입국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정부 당국은 자기 소유의 여권을 가지고 입국해 자발적 탈북이라고 해명했지만 탈북한 지배인이 일괄적으로 여권을 관리하고 들어왔다면 출입국관리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다.



김 목사는 그동안 정부 당국이 탈북자들을 외면해왔던 행태와 비교해서도 이번 집단탈북은 당국이 적극 개입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주장했다. 김 목사는 북한사람들이 중국 주재 한국 대사관을 찾아 탈북을 요청하면 이들을 북경에 소재한 민박집으로 데려가 탈북 브로커를 소개해줘 비공식라인으로 탈북을 시키고 있다고 털어놨다. 김 목사는 "대사관에 들어오기 전에는 미안하지만 도와줄 수 없다고 하고 우여곡절 끝에 대사관에 들어갔더니 밖으로 나와 탈북 브로커를 소개시켜주는 게 얼마나 황당하냐. 그동안 정부 당국은 탈북자들을 외면해왔는데 이번 집단 탈북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국정원도 집단 탈북을 적극 회유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에 있는 국정원 요원은 탈북을 원하는 사람이 있어도 적극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보를 캐기 위해서라도 중국에 남도록 해 정보원으로 활용하기를 원하는데 이번 집단탈북의 경우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한국 정착 지원금 등으로 회유하고 당국이 개입해 일사천리로 탈북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2011년 2월 5일 북한 주민 31명은 선박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다 서해북방한계선을 넘어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조사 초기 북한 주민 전원은 귀순 의사가 없었지만 결국 이들 중 4명이 자유 귀순 의사를 밝혔다며 나머지 27명만 송환을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표류 선박으로 판단할 경우 대부분 송환을 결정해왔다. 김 목사는 "국정원이 당시 3박4일 동안 북한 주민을 관광시켜줘 설득을 했고 결국 귀순 의사를 밝혀 사람만 남은 것인데 이번 사건도 유추를 해보면 충분히 회유를 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북한주민보호센터에서 단식 농성 사망한 탈북자가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단식을 해서 무슨 일이 터질 경우 문제가 커지기 때문에 어떡해서든지 생명을 유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사망했다는 것은 정보는 없지만 간헐적으로 단식을 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시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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