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옹달샘(깊은 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희극인 세 명의 모임을 지칭한다)’도 변호했던 사람이다. 그만큼 심약한 사람이라는 소리다. 나는 다수의 분노가 특정인에게 쏠리는 현상을 보면 덜컥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옹달샘 퇴출운동이 거셌을 때, 이들이 한국의 광연한 가부장적 통념을 무비판적으로 흡수한 뒤 이를 토대로 발화했을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개인의 문제로만 돌리기는 어려우니 이들을 매장하지 말고 반성의 기회를 주자는 글을 썼다. 또한 이 사건이 우리에게 가부장적 통념에 대해 돌아보게 하고, 방송 관계자들에게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억압을 강화하는 코미디를 지양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는 낙관으로 글은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 글은 내 흑역사에 추가되는데…. 옹달샘은 여성 비하 개그에 대해 제대로 반성 · 사과를 하지 않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심지어 이 일을 또 다른 코미디의 소재로 삼기까지 했다. 온라인에서의 상황은 점점 이상하게 흘러갔다. 옹달샘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한 여성 커뮤니티가 동네북이 됐다. (물론 여러 사건이 얽혀 있지만) 여성들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들이 본보기로 이 여성 커뮤니티를 두드려 패는 것도 하나의 이유 같았다. 내 생각보다 더 한국의 가부장적 질서와 여성에 대한 억압은 공고했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러던 중 ‘메르스 갤러리’는 탄산수 한 사발을 마신 것 같은 청량감을 선사했다. 이달 초, 디씨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이하 ‘메갤’)는 ‘반도에 흔한 여성 비하’를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내용으로 패러디한 게시물로 도배됐다(지금은 아니다. 진짜 질병 얘기가 오가고 있다). 메르스의 최초 감염 · 유포자가 여성일 경우 ‘김치녀’ 운운하며 까였을 거라는 얘기를 나누던 디씨 유저들이 ‘김치녀 프레임’이 얼마나 억압적인지 드러내고자 이 ‘운동’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패러디하는 말투는 ‘일베’의 그것일 때가 많다. '김치녀'를 ‘김치남’으로, ‘삼일한(김치녀는 삼 일에 한 번씩 패야한다)’을 ‘숨쉴한(김치남은 숨 쉴 때마다 한 번씩 패야한다)’으로 패러디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이런 김치남은 숨쉴한이 답이라 이기야!”같은 말투. 그래서 어떤 이들은 메갤의 활동을 보고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심약한’ 내가 보기에는 별 문제 없어 보인다. 일베처럼 범죄를 모의하거나, 일반인의 신상을 터는 게시물은 찾기 어렵다. 끔찍함을 풍자하기 위해 실제 온라인에 존재하는 글을 패러디했을 뿐이다. 그것을 본 남성들이 역지사지하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여성과 남성의 위치가 뒤바뀐 가부장 사회를 그리는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온라인 버전인 셈인데, 그래서 메갤 유저들은 ‘메갈리안’으로도 불린다.

메갤을 알게 된 뒤 1박 2일을 꼬박 개념글과 일간베스트글을 보는데 소비했다. 여성의 몸에 대해 다 같이 품평하고 희롱하는 문화, 여성을 대상으로 한 남성 강력범죄 수치, 맞벌이하면서 가사노동은 동등하게 하지 않는 행태, 동남아 섹스 관광의 추태 등. 구체적 통계와 게시판 이용자들의 경험이 속 시원한 패러디를 통해 까발려졌다. 메갤은 일부 남성들에게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계기를, 많은 여성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억압받으며 살아왔는지 각성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불알을 탁 칩니다” 같은 표현을 “브라끈을 탁 칩니다”로 바꿔 말하는 식의 말장난은 ‘갤질’에 감칠맛을 더했다.

   
▲ 최서윤 월간잉여 발행인
 

하지만 반복되면 신선함과 재미의 강도는 약해진다. 나 역시 1박 2일이 지나자 예전만큼 자주 메갤에 방문하지는 않게 됐다. 하지만 페이스북 ‘메갈리아3(www.facebook.com/mersgall3)’ 페이지를 통해 계속 ‘브라끈을 탁 치게 하는’ 소식을 접하려 한다. 메갈리아3의 큐레이팅 활동 역시 훌륭한 언론활동이라고 본다.

현재 ‘메갈리아’들은 페미니즘 서적· 영화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공부공동체’의 역할을 수행하고,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의 연대의 장도 모색하고 있다. 이런 활동이 계속 관심 받고,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이번에야 말로 우리 사회가 특정 대상에 대한 편견과 억압을 경계하는 사회에 다가서기를. 이것 역시 성급한 낙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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