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서 평생의 출입처를 꼽자면 ‘구조적인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구조적인 문제란 ‘문제적인 상황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조’를 의미한다. 사건 사고는 대개 구조적인 문제의 돌출적인 결과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언론은 표면적인 사건 사고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면에 틀어박힌 구조적인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 이건 특정 언론인의 잘못이 아니라, 언론이 일을 하는 방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말 인천의 한 장애인 가장이 자신이 세들어 살던 아파트 복도에서 분신해 사망한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꽤 여러 언론이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강제집행으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 남자가 아내와 자녀 둘을 아파트 주차장에 남겨 둔 채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왜 이 남자가 2500만원의 전세보증금으로 30평대의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었는지, 왜 돌려받지 못했는지는 당시 보도에서 드러나지 않았다.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하나둘 알아본 것이 여러 욕망이 얽히고설킨 부동산 복마전과 깡통주택을 악용한 사기행태를 파악하게 된 계기였다. 

전월세를 살아본 사람들은 자신의 보증금이 최소한 얼마 정도는 법적으로 ‘무조건’ 보장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것이 임대차보호법이 규정하는 ‘최우선변제권’이라는 것인데, 이것에 대한 오해가 있다. 부채가 집값보다 큰 ‘깡통주택’에 입주하는 경우엔 이 최우선변제권을 보장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깡통주택에 입주하는 행위가 채권자의 권리를 해하는 ‘사해행위’에 해당돼 최우선변제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대법원의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 판례 이후 소액임차인을 상대로 한 배당이의(異意) 소송이 전국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였다. 배당이의 소송이란 부동산 자산이 경매 등으로 처분되면 채권자들이 낙찰금을 나눠 갖는 ‘배당’을 하는데, 그 배당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이다. 문제는 유독 인천에서 ‘소액임차인을 상대로 한 배당이의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취재의 첫 단서가 된 것은 한 부장판사의 제보였다. 인천지방법원의 민사담당 판사들은 배당이의 소송의 급증에 문제의식을 품었고, ‘최우선변제권이 늘 보장받지 않는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배당이의 소송 급증의 배경은 단순히 세입자가 최우선변제권이란 제도를 오해한 탓이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세입자를 속이는 사기일당들이 시세를 부풀린 매매계약서를 만들어 멀쩡한 집을 깡통주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수십 건의 부동산 등기부등본과 판결문을 열람하고, 채권자와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 변호사, 법무사 등을 취재한 결과였다.

기자가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위법의 가능성이 농후했고, 또 다른 피해자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다. 첫 기사가 지난해 11월1일에 나오자 비슷한 피해를 당했다는 제보가 십여건 정도 들어왔다. 당시까진 수사기관이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사기를 쳤을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수소문하며 찾아다녔다. 첫 보도 일주일 뒤 인천지방검찰청은 수사에 착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지난 2월5일 깡통주택을 악용한 사기일당 총 71명을 입건해 9명을 구속했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 윤형중 한겨레 기자

 

 

검찰 수사 전후로 인천지역 공인중개사들의 온도차는 확연했다. 집을 알아보는 사람을 가장해 취재를 해보니, 수사 이전엔 깡통주택에 입주를 권하며 “최우선변제권이 보장되니까 걱정마라”는 중개업자들이 많았지만, 수사 이후엔 “요즘 깡통주택 잘못 중개하면 안 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피해를 알려온 몇몇 제보자들은 기사 덕분에 자신이 ‘사기 피해자’임을 입증 받아 소송에서 유리해졌다고 전해왔다. 덕분에 이달의 기자상마저 수상했으니, 앞으로도 구조적인 문제에 더욱 천착하라는 격려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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