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MBC본부(MBC노조)의 차기집행부를 구성하는 MBC노조위원장 선거가 중단됐다. 지난 금요일(23일)까지 후보등록 마감이었으나 아무도 위원장 후보로 지원하지 않았다. MBC노동조합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로 알려졌다. 2012년 공정방송을 위한 170일 파업 이후 MBC내에서 ‘노조위원장’을 아무도 하지 않으려는 상황까지 왔다. MBC경영진이 고대했을 ‘노조의 사망선고’를 MBC조합원 스스로가 알린 셈이다. 

현 MBC노조 집행부의 잘못은 아니다. 누군가는 위원장을 맡겠지, 하는 생각으로 MBC조합원 모두가 무거운 책임을 회피했다. 한국에서 가장 강력했던 언론사 노동조합은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경영진의 노조탄압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2012년 입사하자마자 파업에 나섰던 권성민 예능PD 조합원에 대한 경영진의 해고 통보에도 조합원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위원장 후보 한 명 없는 게 현실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공영방송’ MBC 조합원들은 지금 상황에 부끄러워해야 한다. 

최승호(2003.3~2005.2), 박성제(2007.3~2009.2), 이근행(2009.3~2011.2), 정영하(2011.3~2013.2). 최근 10년간 임기를 마친 역대 MBC노조위원장은 대부분 해고를 당했다. 이 중 이근행 위원장만 복직된 상태다. 현 이성주 노조위원장은 유일하게 해고를 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역대 위원장의 전례를 봤을 때 차기 노조위원장이 제 목소리를 내다 해고 될 가능성은 높다. 과거 선배들도 해고가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선배들은 주어진 사명을 받아들였다. 조합원들의 짐을 짊어졌다. 

   
▲ 서울시 상암동 MBC 사옥. ⓒ언론노조
 

왜 노조위원장 후보자가 등장하지 않았을까. 해고가 두려워서 일수도 있다. 더 이상 MBC 노동운동에 전망이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조합원들이 나를 지켜줄 수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더 이상 내 삶을 바칠만큼 MBC에 애정을 느끼지 못해서일 수도 있다. PD가 마음대로 웹툰을 그렸다가 해고 통보 받는 세상이다. 분노보단 그저 참고 무시하며 현 경영진이 물러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일 수 있다. 정권이 교체되면 경영진이 교체되고 그럼 MBC를 ‘정상화’시킬 수 있을 거라며 스스로 위안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 허상이고 부질없다.

노동조합의 주체인 노동자가 행동하지 않으면 사람만 교체될 뿐 경영진의 탄압은 계속된다. 참고 있으면 더 무시당한다. 2012년 170일 동안 싸우지 않았느냐고 항변할 수 있다. 그 때는 정말 열심히 싸웠다. 공정방송투쟁 역사에 남을 시간이다. 하지만 170일 간의 투쟁이 오늘날 처참한 현실의 알리바이가 될 순 없다. MBC가 2012년 파업 이후 무너지는 동안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의 상당수는 현 노조집행부의 삭발과 눈물을 냉정하게 지나쳤다. 그 결과가 권성민PD 해고다. 

2012년 5월의 어느 날로 기억한다. 벚꽃이 한창이던 서울 여의도 MBC사옥에서 MBC고위간부를 만났다. 그는 노조나 경영진 어느 쪽도 명쾌하게 지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기자에게 단언했다. “파업은 언젠가 끝날 것이다. 파업이 끝나고 나면, 경영진이나 노조, 둘 중 하나도 끝날 것이다.” MBC노조위원장 선거가 중단된 현실을 보며 그날의 벚꽃이 슬프게 떠오른다. 지금이야말로 MBC의 진정한 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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