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하루를 마치고 쉬려는데 집을 울려대며 전철이 우렁우렁 지나가고, 거리거리에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서로 마음 나눌 친구는 거의 없이 외롭고, 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하는 일은 서로 다르고, 그러다보니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혼자 처참하게 죽어 나가도 사건사고 기사로 알려지기 전에는 잘 알지 못하는 그런 곳, 도시.

그런 도시에 있는 자기 집에서 사람이 죽었다. 죽은 지 여러 날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먹다 먹다 죽었다. 손발이 꽁꽁 묶여 음식이 담긴 접시에 얼굴을 처박은 채로. 식탁 아래에는 먹다가 채 못 삭혀 게워낸 토사물이 썩어가고, 구질구질한 음식물이 들어찬 냉장고를 치워보니 벽에 커다랗게 글씨가 쓰여 있다. 왜 죽어야만 했는지 누구든 알아보라고 큼직하게.

‘폭식’(Gluttony), 죽음에 이르는 일곱 가지 큰 죄 가운데 첫 번째 죄.

연쇄살인을 통해 인간의 심연을 파헤치는 영화 <세븐>(1995년, 데이빗 핀처 감독)의 첫 번째 살인 현장 장면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짓게 되는 여러 죄들 가운데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폭식, 정욕, 이 일곱을 콕 집어 죽어 마땅한 큰 죄라고 한다.

   
영화 '세븐'
 

먹는다는 것은 사람이 살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인데, 그것이 죄가 되는 상황은 도대체 어째서일까? 대부분의 생명체는 모두 먹는다. 식물은 물과 땅 속 영양분을, 동물은 자신이 소화시킬 수 있는 푸성귀나 다른 동물을. 그러니 인간이 먹고 마시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폭식’은 죄다. 꼭 성서에 따른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과시하기 위해 먹는 것은 생명의 낭비이며 착취다.

그런데 ‘자유대학생연합’이라는 단체에서 ‘생명 존중 폭식 투쟁’을 한다며 나섰다. 그들이 폭식을 하겠다는 이유는 세월호 특별법을 대통령과 정부가 유가족에게 약속했듯이 제대로 만들어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유가족의 한을 위로하고, 앞으로 다시는 그런 참사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애끓는 단식을 조롱하고 위협하기 위해서다.

공권력과 언론 조작, 정치 놀음으로 막힌 소통의 길을 내는 것이 도시 한복판 광장에서 자기 목숨 살라가며 단식하는 것 말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유가족이 단식을 하고, 그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동조단식을 하는 그 자리에서 ‘폭식’을 하겠다는 것이다.

   
영화 '세븐'
 

그들은 “죽음의 상징, 네크로필리아들의 단식 투쟁에 맞서는! 생명의 상징, 바이오필리아들의 삶의 향연, 폭식 투쟁”이라고 꽤나 어려운 말 써가며 아는 척을 했다. 그러더니 일베에서 세를 모아 경호팀까지 조직해가며 광화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단식 장소에 몰려들어 치킨에 피자에 술까지 먹고 마시며 패악을 부렸다.

알려면 제대로 알았어야지. ‘바이오필리아’라는 말을 처음 쓴 에드워드 윌슨은 생명 사랑이란 본능적으로 ‘다른 생명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특별한 방법’이라고 했다. 인간은 지구를, 미래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리 안의 생명사랑 본능을 깨워야하며, 생명사랑 본능이야말로 다양성을 지킬 힘과 새로운 윤리의 강력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그런데 생명을 먹어 치워 낭비하는 ‘폭식’이 바이오필리아라니!

그들이 어떤 어른들을 보고 배운 것인지 알기에 참 딱하다.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40일 넘게 단식을 하고 있을 때, 그 짐을 나누어지고자 함께 단식하는 사람들 옆에 자리를 펴고 자기들도 단식한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단식 몇 일째라는 표식까지 가슴에 달고서는 악착같이 닭튀김 뜯어먹고 짜장면 비벼먹던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이라는 나잇값 못하는 망나니들의 본을 따른 것이리라. 늙어가면서 나이만 먹은 게 아니라 이기심과 탐욕만 먹어 배만 채우고 영혼은 텅 비어버린 아귀들을 윗물로 삼았으니, 그 아랫물들이 독살스러울 수밖에.

그들은 폭식의 명분이 시민의 것인 광장을 되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광화문 광장 한쪽에 있는 이들도 시민이다. 광장은 먹고 마시고 놀기 위해서만 있는 곳이 아니다. 광장은 고대 그리스 이래 도시 국가에서 시민들이 모여 다양한 활동을 하는 집회장으로 쓰인 야외 공간이었다. 국가에서, 도시에서 광장에 모여 뜻을 나누고, 의견을 밝히는 것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넓은 광화문에는 단식천막 자리 말고도 분수대도 있고, 문화회관도 있고, 넓은 빈 터도 있다. 그리고 도시 곳곳에 공원도 있고, 고궁도 있고, 여가 공간도 많다.

   
지난 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단식농성장 근처에서 '폭식 집회'를 벌인 일베 회원들. 사진=금준경 기자
 

어버이연합이든 일베든 음식을 먹으려거든 잘 살기 위해 먹기 바란다. 피가 되고 살이 되도록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서 자신을 살리고,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바이오필리아의 마음으로 먹는 것이라면 단식을 욕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식하는 사람들이 기꺼이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먹기를 바란다.

그들의 폭식은 자신들만 옳다는 교만,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기,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정의에 대한 분노, 진실이 무엇인지 알려하지 않는 나태, 모든 것을 경제적 이익으로 환산하려는 탐욕, 그리고 자신들의 행위를 비속한 음담패설로 해소하려는 정욕과 같은 죽음에 이르는 나머지 여섯 가지 죄와 얽혀있다.

그러니 진심으로 걱정스럽다. 그들이 폭식으로 죽음에 이르고, 죽어서도 지옥에서 악귀가 될까봐. 오죽하면 같은 편에 있는 하태경 의원까지 '찌질이짓 그만 하라'고 기함을 하고 나섰겠는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