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가 보름 넘게 2NE1 멤버 박봄의 마약 밀수 의혹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세계일보는 지난 1일 1면 기사 <걸그룹 멤버 2NE1 박봄 마약 밀수 ‘봐주기’>를 시작으로 7월 16일까지 약 20개의 기사를 썼다. 오랜 기간 쏟아지는 보도를 두고 뭔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일고 있다. 세계일보의 박봄 기사를 둘러싼 몇 가지 의문을 정리해봤다.

세계일보의 ‘박봄’ 기사는 물타기인가?

도박이나 마약 등 연예인 범죄와 관련된 언론보도가 나올 때마다 ‘여론 물타기’라는 의혹이 제기되곤 한다.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중요한 정치사회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인 한 명을 희생시킨다는 것이다.

세계일보가 박봄의 마약 밀수 의혹을 처음 보도했을 때도 인터넷과 SNS를 중심으로 이런 의혹이 일었다. 세계일보는 지난달 30일 “박봄이 해외 우편을 이용해 마약류의 일종인 암페타민을 다량 밀수입하다 적발됐으나 검찰이 입건유예로 처벌해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박봄이 암페타민 82정을 미국에서 밀수입하다 적발된 날은 2010년 10월 12일이다. 누리꾼들은 4년 전 사건을 세계일보가 터트린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세월호 관련 여론을 덮으려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 7월 1일자 세계일보 1면
 
하지만 세계일보의 박봄 보도를 ‘물타기’로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첫째, 세계일보의 박봄 보도는 결과적으로 여론의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가 한 연예인의 마약 의혹 정도로 묻힐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다, 다른 언론들이 세계일보 보도를 거의 받아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법조담당 기자는 “야심차게 터트린 건데 별로 반응이 없다. 농담 삼아 ‘세계일보가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한 세계일보 관계자는 “박봄 기사는 오래전부터 준비했고, 4월에 내용을 확보하고 보도하려고 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세월호 참사, 유병언, 월드컵 때문에 계속 묵혀뒀다가 7월이 돼서야 기사를 쓴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다른 사안을 덮으려고 터트린 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안에 묻힐까봐 시기를 조절해 쓴 기사였다는 것.

세계일보가 단순히 박봄만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이번 보도를 물타기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여론 물타기’라는 음모론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가진 고위층이 언론에 연예인 관련 정보를 일부러 흘린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세계일보의 칼날은 박봄을 넘어 검찰을 향하고 있다. 그냥 검사 몇 명도 아니고 김진태 총장의 이름까지 나온다. 물타기가 목적이라면 검찰을 비판할 이유가 없다.

세계일보 ‘박봄’ 기사, 목표는 검찰인가?

언론계 안팎에선 세계일보가 박봄의 마약 밀수 의혹 보도를 통해 여론을 물타기 하려는 것보다는 사실상 검찰을 겨냥하고 있다는 쪽에 방점을 찍고 있다. 세계일보가 마약 밀수 혐의로 조사를 받은 박봄보다는 이를 봐주기한 검찰에 초점을 맞춰 ‘조지고’ 있다는 것.

세계일보는 지난 4일 기사에서 엠페타민 밀수를 봐준 배경에 ‘배후가 있을 것’이라며 검찰의 해명이 모순투성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5일 기사 <美 처방 마약은 무죄? 제 발등 찍은 檢 논리>에서 검찰이 “한국에선 불법이지만 미국에서 마약류를 복용한 뒤 귀국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결론”을 내려 모방범죄가 우려된다며 “미국 정신과 치료 패키지를 내걸고 마약사범들을 모아 미국을 다녀오는 여행상품이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다”고 말했다. 세계일보는 7일에도 ‘암페타민을 국내에서 복용할 경우 불법’이라는 점을 박씨 측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문제 삼지 않았다며 검찰을 비판했다.

세계일보는 지난 9일 “주임검사 단독의 판단이 아닌, 검찰 ‘윗선’의 재가를 받고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윗선을 언급했다. 세계일보는 박봄에 대한 입건유예가 ‘차장전결’로 처리됐다며 주임검사, 부장검사, 차장검사 모두 박씨 처분에 대한 의사결정에 관여했을 것이라 말한다. 세계일보는 이어 국민적 관심이 중대한 사건인 경우 전결권자가 차장검사가 아닌 ‘소속 검찰청 수장’이라며 당시 인천지검장이였던 김학의 전 차관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 7월 9일자 세계일보 11면
 
세계일보의 ‘윗선’ 언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박씨가 법무부 홍보대사인 점을 고려하면 인천지검장이 당시 김준규 검찰총장과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도 같은 내용을 보고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급기야 세계일보는 지난 15일 김진태 검찰총장까지 언급했다. 세계일보는 박봄 사건과 유병언, 김학의 사건 등을 예로 들며 “이들 사건은 모두 검찰의 치부와 관련돼 있다. 진상을 파헤치면 검찰의 민낯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며 “검찰이 ‘버티기 모드’에 들어간 것은 김 총장의 의중이라는 해석이 나돈다”고 전했다. 세계일보의 칼날이 박봄이 아니라 검찰을 향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 이유다.

세계일보의 한 관계자는 “검찰을 조지려고 쓴 기사다. 검찰 출입 기자들이 썼지 않나”며 “YG의 양현석 사장이 해명을 하면서 양 사장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고, 박봄에 관한 추가 의혹을 제기하면서 좀 방향이 틀어지긴 했는데 마약을 밀수했다는 것보다 검찰이 봐준 것을 문제 삼는 기사”라고 밝혔다.

   
▲ 7월 10일자 세계일보 9면
 
다른 언론들이 세계일보 보도를 받아쓰지 않는 이유

그렇다면 세계일보가 김학의 전 차관과 김진태 검찰총장까지 겨냥하고 검찰을 비판하는데 다른 언론들이 잘 받아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YG가 언론의 보도를 통제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몇몇 검찰 출입기자들은 “기사가 안 된다”는 입장이다. 한 일간지 법조팀 A 기자는 “2010년에 이미 찌라시에 돌아서 대부분의 기자들이 알고 있는 사안이었는데, 보도가 나와서 뜨악했다. 이야기가 안 되니까 안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일간지 법조팀 B 기자는 “박봄 이야기는 예전에 이미 돌았던 이야기다. 이전에 취재를 했던 언론사도 몇 군데 있다. 입건유예 처분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애초에 사안 자체가 연예인 관련 건인데, 검찰을 비판하고 싶다면 그것보다 훨씬 비판할 거리가 많고, 굳이 연예인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매체의 법조팀 C 기자는 “박봄 이야기는 나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예전부터 언론사 정보보고나 풍문으로 돌던 이야기가 기사로 나오니 ‘왜 이제 이런 걸 쓰지’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C 기자는 “요즘 명예훼손이 많이 걸리고 하니 유명연예인의 경우 갈수록 보도에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다. 예전 같으면 의혹이 하나만 있어도 취재를 잘해서 터트리곤 했는데 소송도 많고 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세계일보처럼 확인이 잘 되면 모르겠는데 그만큼의 준비 기간을 못 거친 입장에서는 조심스럽다”고 설명했다.

B 기자 역시 “한국일보가 사채왕 보도를 낸 적이 있는데, 우리도 그 기사 받아서 쓰고 싶었지만 취재가 잘 안 돼서 못 썼다. 이번 경우도 비슷한 경우”라고 말했다.

   
▲ 7월 2일자 조선일보 13면
 
세계일보의 박봄 기사가 나가고 난 뒤 이루어진 양현석 사장의 해명, 그로 인한 동정여론 탓도 있다. A 기자는 “세계일보 최초 보도 후 조선일보에서 ‘박봄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갔는데 많은 기자들이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넘어가는 문제였다. 미디어오늘에서 ‘왜 이런 기사가 나왔나’라고 쓰면 몰라도 사건 자체를 다시 논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C 기자는 “박봄이 예전부터 우울증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래서 인간적으로 짠했던 면도 있다”며 “일부 기자들은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보도하는 건 너무 심한 것 아니냐’ ‘그냥 치료용이었던 것 같은데’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세계일보, 숨은 의도 있나? vs 특별한 의도 없다

다른 언론들이 ‘기사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데 세계일보만 유독 기사를 20개 이상 쏟아 내다보니 세계일보가 검찰을 비판하는 데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A 기자는 “영문을 잘 모르겠다. 그 당시에 다 끝난 사안인데, 검찰한테 서운한 게 있어서 작정을 한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고, C 기자는 “세계일보가 공정심에 의해 썼다기보다 뭔가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들린다”고 전했다.

또 다른 법조팀 D 기자는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세계일보랑 검찰이 사이가 안 좋다. 이번 건 말고도 검찰을 여러 번 비판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10월 세계일보 기자가 황수경 KBS 아나운서 부부의 파경설을 SNS에 흘린 혐의로 구속된 사건을 두고 세계일보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검찰을 비판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관련 기사 : <"검찰은 왜 가수 박봄의 마약 밀반입을 봐줬을까?">

C 기자는 “세계일보 기자가 구속당했던 사건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도 예전 일이다. 그런 것 가지고 아직까지 그랬을까 싶다”고 말했다. B 기자는 “황수경 부부가 당시 선처를 원한다는 의사도 전달했고, 그걸 가지고 세계일보가 건수 잡아서 비판하는 건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별다른 의도가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B 기자는 “검찰 출입기자들은 언제나 검찰을 비판하고 싶어 한다. 별 의도는 없는 것 같다”며 “김진태 총장까지 겨냥하는 보도를 보며 ‘그렇게까지 써야하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언론사 내부의 판단이다. 정상적인 보도”라고 밝혔다.

   
▲ 7월 15일자 세계일보 1면
 
세계일보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봐주기 수사에 관한 내용을 알았기에 쓸 수밖에 없었다는 것. 세계일보의 한 기자는 “검찰 출입기자가 검찰 비판하는 데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하나. 특별히 검찰에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쓴다기보다 그냥 알아냈으니 쓰는 걸로 안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의 또 다른 기자도 “검찰은 4년 전에 다 끝난 일이며 입건유예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며 “검찰 쪽에서 세계일보가 의도적으로 조지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걸로 아는데, 특별한 의도가 없다는 점은 기사 내용을 보면 (누구나) 다 납득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일보가 박봄 보도를 이어가는 데에는 특별한 의도가 있다기보다 언론사 특종보도 고유의 특성이 반영됐다는 의견도 있다.

D 기자는 “한 번 비판하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가야하는 법이니까. 세계일보 기자들이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B 기자는 “어느 언론사나 하나의 건을 잡으면 좀 밀어붙이는 측면이 있다. 자기들이 발굴한 사건에 대해 애착을 가져서 그런 건데, 그런 태도의 일환인 것 같다”고 말했다.

A 기자는 “뭔가 하나 기사를 지르면 한 번 쓴 게 있어서 후속기사를 무리해서 쓰는 면이 있다”며 “누군가 세계일보 관계자한테 이유를 물었는데 페이지뷰가 잘 나온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후속기사를 쓰는 건 페이지뷰 때문이라고 이해를 하더라도 처음 보도는 무리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C 기자는 세계일보 법조팀의 특성을 언급했다. C 기자는 “세계일보가 그런 의혹들이 나오면 지르는 특성이 있다. 좋게 말하면 시원하게 지르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팩트 하나 가지고 부풀린다고 볼 수도 있다”며 “세계일보 법조팀은 유우성 사건 때도 그랬듯이 하나 잡아서 깊게 판다. 상대가 뭐라고 반박할 지 다 준비해두고 이런 반론이 나오면 다시 반박하고 그러다 보니 기사가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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