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KBS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하지만 KBS는 아직 이 사태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듯한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 8일 저녁 세월호 유족들은 KBS의 세월호 관련 불공정보도와 김시곤 보도국장의 발언에 항의하며 KBS를 항의 방문했다.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KBS 수신료 인상안’과 맞물려 KBS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KBS는 유가족들의 사장 면담 요구에 응하지 않고 사과 의사도 밝히지 않는 등 이 분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KBS의 이러한 태도는 보도에서도 드러났다. 8일 KBS 뉴스9는 <수신료 인상안 ‘자동 상정’…야·진보단체 엉뚱한 주장>에서 “KBS 수신료 인상안이 국회법 규정에 따라 소관 상임위인 미방위에 자동 상정됐다. 하지만 야당 의원과 진보단체들은 사실과 다른 주장을 내세우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고 전했다.

   
▲ 8일자 KBS 뉴스9 갈무리
 
왜 야당 의원과 진보단체들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걸까. KBS는 지난 2월 국회에 상정된 수신료 인상안이 60일 만에 국회 미방위에 상정된 것은 “제출된 안건은 50일이 지나면 자동 상정된다는 국회법 규정에 따른 절차”라고 강조했다. KBS는 또한 “새누리당은 공영방송의 재정독립을 위해선 33년간 동결된 수신료 인상을 본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야당 의원들은 회의 자체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KBS 보도만 보면 야당이 마치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KBS는 또한 야당이 “진보단체들과 합세해 여당이 수신료 인상을 밀어붙이려 한다는 엉뚱한 주장을 폈다”며 야당과 진보단체들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리포트에 야당과 진보단체의 입장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KBS는 “상정과 대체 토론은 국회법상 당연한 절차인데도 야당이 논의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여야 동수로 구성돼 야당이 반대하면 당연히 부결되는데도 여론을 자극하기 위해 날치기 인상이란 표현을 쓰고 있다”는 새누리당의 입장을 강조했을 뿐이다.

여당 의원만 참석한 가운데 약 25분 만에 단독 상정-대체토론-법안 심사소위 회부 등 절차를 속전속결로 끝마친 것이 ‘날치기’가 아니라는 걸까? KBS는 “수신료 인상은 지금 시점에서는 꼭 필요하다”(민병주 새누리당 의원) “30여 년 동안 지금 수신료가 멈춰져 있는 것에 대해서 국민이 아마 다 이해해주실 것”(이우현 새누리당 의원)이라는 주장을 전했는데, 세월호 참사 와중에 수신료 인상을 추진하는 행태를 어떤 국민이 이해한다는 걸까?

   
▲ 8일자 KBS 뉴스9 갈무리
 
미방위 회의가 열리던 시간 새정치민주연합 미방위 간사인 유승희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여야 간사 합의도 거치지 않고 KBS 수신료 인상안을 상정하겠다는 것은 국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KBS는 이러한 주장을 전하지 않았다. 같은 날 언론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수신료인상 반대 의견을 표명한 사실도 보도하지도 않았다. 수신료 인상 반대 목소리는 전하지도 않으면서 ‘국민이 다 이해한다’는 건가?

KBS의 ‘자사 감싸기’ 보도는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KBS는 9일 아침뉴스타임 <KBS 간부들, 세월호 분향소서 유족과 마찰>에서 “KBS 보도본부 간부들이 조문을 위해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았다가 폭행을 당했다”며 “KBS 보도국 취재주간과 경인방송센터장이 분향소 대기실로 끌려들어갔고,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5시간가량 거친 항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KBS는 같은 리포트에서 “일부 유가족들은 KBS 보도국장이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세월호 희생자 수보다 많다는 취지의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며 보도국장이 직접 분향소를 찾아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또 분향소 주변에서는 KBS 보도국장의 발언을 담았다는 유인물들이 배포되기도 했다”며 “KBS는 이와 관련해 보도국장이 문제가 된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여러 차례 공식 해명했지만 일부 언론의 일방적 기사 등으로 인해 유족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아 이번 일이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 9일자 KBS 아침뉴스타임 갈무리
 
이 보도만 보면 마치 일부 언론이 퍼트린 ‘유언비어’ 때문에 유가족들이 오해를 했고 그로 인해 KBS 간부들이 폭행까지 당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분노를 쏟아낸 이유는 그 발언 때문만이 아니다. 김 국장은 일전에 KBS 앵커들에게 ‘(추모 의미의) 검은 옷 입지 말라’고 지시했고, KBS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는 ‘불공정보도’를 이어가면서 유가족과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이 와중에 수신료 인상안이 추진되고 있다. 어제의 KBS 간부 폭행사건과 KBS 항의방문은 KBS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서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KBS 보도를 보면 KBS는 이 사태의 원인을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듯 하다. 이런 식의 ‘자사 감싸기’ 보도가 이어질 경우 KBS에 대한 불신이 더욱 가중될 수 있다는 점을 KBS 간부들과 경영진은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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