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민주노총 강제진입 이후 사라졌던 철도노조 지도부가 조계사에 있는 것으로 25일 확인되자 26일 일부 언론들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조계사 측은 이들을 보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국 불교의 본산과도 같은 조계사에 공권력을 투입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은 관련기사 제목부터 철도노조가 종교계를 끌어들였다는 취지로 잡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이와 별개로 철도노조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도 이날 지면을 통해 이어나갔다.

조선일보는 1면 <종교계 끌어들이는 철도노조> 기사에서 경찰관계자의 말을 빌려 “종교계를 불법파업에 끌어들여 갈등을 부추기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고, 3면 <“철도노조, 이제 와서 종교계에 중재 요청 자회사 출범 무산시키려는 시간끌기 전략”> 기사를 통해 “대통령까지 나서 부인하는데도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민영화 수순’이라고 우겨온 철도노조가 느닷없이 종교계에 중재를 요청한 것은 순수하지 않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전문가들’의 주장이라며 “가뜩이나 정치 투쟁으로 확대돼 해결점을 찾기 어려운 철도파업 문제에, 이제 와서 종교계까지 더 끌어들이는 것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치권 사회단체에다 심지어 종교계까지 끌어들인다면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해결책 없이 시간만 계속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그 ‘전문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 조선일보 12월 26일자. 3면.
 
동아일보도 사설을 통해 철도노조 지도부의 조계사 진입에 대해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동아일보는 <철도노조, 조계사를 불법파업 성소로 이용 말라> 사설에서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누구든지 자신의 주장을 펴고 방어할 수 있게 됐음에도 종교시설을 집단 이기주의나 정치적 목적을 관철하는 도구로 삼는 것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며 “지금 철도노조 수배자들이 가야 할 곳은 조계사가 아니라 경찰서”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조계사 극락전에 일부 불교 신도가 찾아가 퇴거를 요구한 것은 불법파업을 계속하기 위해 사찰을 이용하지 말라는 불교신도들의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며 “경찰의 (철도노조 지도부) 검거 과정에서 불교계와 마찰이라도 일어난다면 철도 파업의 원군이 될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떳떳치 못한 계략”이라고 주장했다.

   
▲ 동아일보 12월 26일자. 35면.
 
철도파업 시작부터 꾸준히 이번 파업의 모든 책임을 철도노조 측으로 돌려온 이들 언론들로서는 노조 지도부의 조계사 은신으로 사태의 장기화가 예상되는 것이 달가울리 없다.

중앙일보는 4면 <단골 피신처 된 조계사…2002년 후 공권력 투입은 없어> 기사를 통해 “(박태만 철도노조 수석부위원장) 그의 ‘조계사행’으로 파업 상황이 길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경찰의 강제 체포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는 과거 조계사 농성 사례를 들며 “이런 게 가능했던 건 종교시설의 특수성과 비난 여론을 의식해 정부가 공권력 투입에 신중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중앙일보 12월 26일자. 4면.
 
이들 언론들은 그동안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대화를 통한 조속한 해결’을 강조하는 듯 했지만 민영화에 대한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해버리고 파업으로 발생한 문제를 노조의 탓으로 돌렸다. 조선일보는 이날 대체인력 투입으로 철도사고 우려가 높아지는 것도 철도노조 탓이라고 강변했고 동아일보는 노사 합의 사항까지 꺼내 철도노조를 ‘철밥통’이라고 비판했다. 이런 언론들이 ‘갈등 해결’이라는 말을 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더욱이 수배 중인 철도노조 집행부로서는 민주노총마저 공권력에 의해 강제침탈을 당한 상황에서 종교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지 않고 이들 언론들이 ‘종교계를 이용하지 말고 경찰서에나 가라’면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6일 동아일보는 6면 <“고비마다 헛발질로 불통논란 키웠다” 청의 자성론>을 통해 “‘불통 프레임’은 야권이 박 대통령을 공격하기 위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측면이 있지만 청와대도 주요 국면에서 헛발질을 함으로써 논란을 증폭시켰다는 자기반성”이라며 ‘청와대의 불통’을 다루기는 했다. 하지만 민영화 우려를 ‘괴담’으로 치부해버리는 이들 언론들이 오히려 소통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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