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방송으로 전락한 공영방송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사상 최장기 파업을 벌이고 있는 MBC 노조와 KBS 새노조 구성원들이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단식투쟁에 돌입하는 등 총력투쟁에 나섰다.

역사상 유례없는 언론사의 동시 총파업이 4개월을 넘기고 있는데도 이런 사태를 낳은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방송통신위원회, 차기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 의원과 새누리당 모두 파업 사태를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중동을 비롯한 상당수의 제도권 언론도 대체로 방송파업에 대해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과 김현석 KBS 새노조위원장은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몸을 던지는 투쟁방안을 선택했다.

▷집권세력 방송파업 방치·조중동 외면 왜…“대선까지 이대로”=방송파업이 MBC의 경우 30일로 122일을, KBS 86일, 연합뉴스 77일을 맞고 있지만,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 등 현 집권세력과 차기 대권 실세층은 일체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최근 김재철 사장의 각종 추문에 대해 국민적 또는 정치권의 관심사가 아니라며 분명히 선을 긋고 있다.

정권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 의해 불법해임된 정연주 전 KBS 사장은 28일 밤 인터뷰에서 “4년 전 나를 해임했던 것은 한나라당이 해놓고, 이제와서 정치권 개입의 성격이 아니라는 주장은 모순”이라며 “이들은 공영방송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오만한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 MBC 사장이자 90년대 MBC 노조위원장을 지낸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29일 인터뷰에서 “MBC KBS 연합뉴스 등 국가의 중추 언론이 공정보도를 위해 파업하는 초유의 사태를 방치하는 것은 큰 책임방기”라며 “언론의 정보인프라가 무너졌는데 어떻게 무관심할 수 있나. 국가 전체의 수치이자 무능”이라고 성토했다.

특히 파업의 장기화로 MBC와 KBS 등 공영방송의 각종 뉴스 프로그램은 ‘동물뉴스’, ‘통합진보당 사태 올인’, ‘날씨뉴스’ 등 사상 최악의 식물방송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집권층의 방송파업 방치는 정권에 불편한 소리를 하지 못하는 공영방송 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연주 전 사장은 “4대강, BBK, 내곡동, 파이시티, 디도스, 저축은행 비리 등 수많은 비리가 쏟아져오는데도 동물뉴스나 내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파업사태를 낳은 방송의 정치적 종속·제작자율성 말살, 해직자, 낙하산 등에 대해 집권층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하지만, 아무런 자세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며 “과거 같으면 비판이라도 했을 조중동 역시 함께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공영방송 존재자체를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 교수는 “공영방송의 기능이 정지되는 것이 유리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들 관심은 “쏟아지는 비리·사건에 둔감해져”=29일 언론노조의 여론조사결과 언론사의 동시총파업에 대해 82%가 넘는 응답자들이 알고 있다고 답했다. 파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문제는 과거 촛불시위나 PD수첩 탄압 때처럼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인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분위기라는 데에 있다. 기자 PD들이 언론인으로서 권력의 입노릇을 했다는 뼈아픈 자기반성과 이를 바로잡겠다는 통렬한 각오로 나선 파업이라는 사안의 성격에도 다소 둔감해진 채 120일 넘게 흘러왔다.

윤성도 KBS 새노조 공추위 간사는 “대학교를 다닐 때 KBS가 90년도에 파업한다는 소식이 동아일보에 나온 것을 보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며 “그런데 이번 파업은 조중동은커녕 다른 일간지에도 비중있게 실리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데엔 정권 내내 대형사건과 비리에 끊임없이 터져나온데 따른 ‘사건 피로증’과 방송 외에도 워낙 많은 매체에 의해 정보 습득에 어려움이 없는 점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문순 도지사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피로도가 높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전규찬 교수는 “현 정권 아래 민주주의가 해체되는 것을 비롯해 너무나 심각한 사건을 많이 봐왔기 때문에 ‘공영방송 사수와 재건’ 등에는 둔감해진 것 같다”며 “그동안 방송에 대해 가졌던 불신과 반감도 여전히 파업에 나선 언론인들과 간극으로 남아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지적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은 “언론매체가 워낙 많다보니 방송 몇군데서 뉴스 못한다고 큰 임팩트를 못주고 있다”며 “그나마 KBS와 MBC 모두 뉴스가 굴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19대 국회 개원 시민과 함께 싸움 불붙일 것”=그러나 30일부터 시작되는 19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파업 언론인들은 여론의 결집과 관심을 기대하고 있다. 김재철·김인규 등 낙하산 사장 퇴진 외에도 언론노조를 비롯해 MBC KBS 연합뉴스 등이 요구해온 언론장악 청문회와 방송법 개정 등 정치권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문순 도지사는 “아직 대오가 잘 유지되고 있지만 파업 언론사들이 국내 최대 언론사인 만큼 서로 통합해서 국내외 이슈로 만들어내는 역량과 열정을 모으고, 시민들에게도 좀더 마음을 얻어야 한다”며 “또한 국회의 정치상황을 최대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정 전 사장은 “지금까지 싸운 것은 언론자유와 방송독립, 민주주의에 대한 씨앗이 될 것”이라며 “향후 관건은 시민들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며, 구성원들 모두 패배감 없이 파업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규찬 교수도 “현재로서는 최선을 다해 싸우는 수밖에 없다”며 “언론노조와 시민사회가 똘똘뭉쳐 ‘김재철 퇴진’ 등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투위 땐 못나서는 자괴감이라도 있었다”
정연주·최문순 전 사장 “부역 넘어 정권의 에이전트 노릇”


30여 년 전 박정희 정권의 언론탄압에 맞서다 대규모 해직됐던 동아투위 사건과 현재 방송 대파업의 차이에 대해 “당시엔 파업(제작거부)에 참가하지 못한 기자들이 적어도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지금 정상제작을 하고 있는 이들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동아투위 위원인 정연주 전 KBS 사장은 28일 인터뷰에서 “74년 말 제작거부에 들어갔을 때 동아 기자들은 대부분 다 참가했는데, 동참하지 않은 다른 언론사 기자 동료들은 싸우는데 나서지 못한 데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다”며 “하지만 요새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간부들이나 이른바 회사의 친위세력들은 정권의 입장에 서거나 조중동과 별 차이가 없다”고 밝혔다.

정 전 사장은 “파업에 맞서 회사측을 대변하고, 후배 목을 치고 박해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려할 뿐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다”며 “정권에 대한 부역을 넘어선 에이전트(요원) 노릇을 하는 듯하다”고 개탄했다.

정권의 사태해결 방식에 있어서도 과거 방송사 파업 때와는 크게 다르다는 평가가 나왔다. 1996년 강성구 사장 퇴진 총파업을 이끌었던 최문순 강원도지사는 29일 “당시 22일 총파업을 이끌어갔지만 막판에는 대부분 방문진과 방송위원회가 개입하고 중재해서 다 사태를 풀었다”며 “87년 6월 항쟁 이후 생긴 파업들은 대체로 사장 퇴진과 노조 간부 법적 책임 등 양쪽 모두 책임을 묻는 쪽으로 사태가 마무리됐던 것이 관례였는데 지금은 아예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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