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그날이 오면 가슴이 아린 이들이 있다. 호남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그 느낌을 공유하는 이들이 있다. 1980년 5월 18일에 대한 아픔 때문이다. 신군부 폭압에 맞서 ‘민주화의 깃발’을 든 그들을 향해 정부 여당, 언론 등 이 땅 주류세력은 ‘폭도’라는 낙인을 찍었다.

총칼에 짓밟히고 상처를 입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그들이었다. 그러나 아픔은 한동안 속으로만 삭여야 했다. 단지 호남 사람이라는 이유로 차별도 받았다.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뚜렷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면서 호남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덧씌워 나갔다. 드라마에서 조폭의 말씨는 왜 호남 사투리여야 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숨을 죽여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군부에 맞서 민주화의 씨앗을 뿌린 그들을 향해 ‘폭도’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어왔으며, 그들을 동조하거나 옹호하는 것 역시 금기시됐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5·18 관련 영상을 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그날의 ‘진실’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 때문이다.

호남 사람들에게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는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의 재평가 역시 여전히 부족하다. 일부에서는 ‘폭도’라는 인식을 여전히 갖고 있다. 호남사람들이 느끼는 그 아린 기억을 역사가 제대로 치유하려면 국가를 책임지는 정치지도자가 진정성을 담아 따뜻한 가슴으로 감싸 안아야 하지 않겠나.

그들은 폭도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이 땅 민주화의 희망을 알린 행동이었다는 것을, 세상이 그리고 후대가 공유해야 한다는 얘기다. 5·18 민주화운동은 이제 국가 기념일이 됐다. 오전 10시만 되면 주요 방송사에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생방송으로 중계하고 있다.

국가기념일이라면 그에 걸맞은 예우가 필요하다. 입으로만 얘기할 게 아니라 마음으로 행동으로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얘기다. 5·18은 대통령이 참석하던 행사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에 해마다 참석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2008년 5월 18일 광주를 찾았다. 그리고 5·18 묘역에서 이렇게 말했다.

“5.18 정신은 그 자체로 이미 귀중한 자산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국가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광주가 아시아의 문화중심도시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2013년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대통령의 약속이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5·18 기념식에 참석해 호남 사람들 그리고 국민을 향해 약속한 말이다. 대통령의 말이 가벼워서는 안 된다. 적어도 대통령의 말에는 무게가 실려 있어야 한다. 무게가 실리기 위해서는 ‘언행일치’가 필수적이다.

2012년 5월 18일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는 제32회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렸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당 대표와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광주로 내려갔지만, 대통령은 그곳에 가지 않았다.

올해로 벌써 4번째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임기 첫해에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이후 사실상 임기 마지막해인 올해까지 4년째 내리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너무나 중요한 다른 일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다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4년 내내 참석하지 않았다는 것은 5·18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을 의심하게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5·18은 어떤 의미일까. 현직 대통령으로서 국가 기념행사에 참석해 호남 사람들의 여전히 아린 가슴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이번에는 불참은 물론이고 대통령 기념사까지 생략됐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참 딱하고 안타까운 협량의 정치 아닌가. 국가 지도자의 그릇이 정말 그 정도밖에 안 되는가. 호남은 그저 선거 때만 표를 달라고 하기 위해 ‘립서비스’를 하는 그런 공간인가. 이명박 대통령이 알아야 할 점은 올해가 대통령 자격으로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이다.

내년 5월에 그는 대통령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답답한 일 아닌가. ‘포항 대통령’이 아닌 전 국민의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통 큰 정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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