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멜라민 파동’이 한창이던 2008년 9월의 일이다. 중국에서 수입한 커피크림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었다고 식품의약품안전청이 발표했다. 검출된 양은 1.5ppm으로, 매우 적었다. 어느 정도냐면 EU의 기준치에 근거해 계산했을 때 몸무게가 50kg인 성인이 이 커피크림으로 하루에 커피를 3086잔 타 마셨을 때에야 비로소 해로운 수준이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식약청은 문제의 제품을 압류했다. 또 이미 유통된 제품에 대해 회수조치를 내렸다. 더 나아가 모든 중국산 유제품에 대한 수입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중국발 멜라민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컸던 시점이었고, 해당 제품뿐 아니라 유사 제품들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일단 중국산 유제품의 유통 자체를 차단하겠다는 게 우리 당국의 판단이었다.

2. 지난 2010년 11월, 일본 시마네현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의심되는 닭이 발견됐다. 그러자 농림수산식품부는 일본산 가금류(닭, 오리) 전체에 대해 검역을 중단했다. 그리고 며칠 뒤, 문제의 닭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PAI)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에 따라 우리 당국은 수입 중단 조치를 취했다. 문제의 질병인 HPAI는 우리나라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검역 당국이 국내에서 유통되는 닭과 오리고기가 위험하다며 판매를 중지시키거나 한 적은 없다. AI바이러스는 보통 75도 이상의 열로 5분 이상 가열하면 죽는 만큼 충분히 익혀서 먹으면 된다며 안심시키곤 했다. 하지만 외국에서 발병한 가축을 수입, 검역하는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사전 예방의 원칙’을 따랐던 것이다.

위 두 경우는 다른 나라의 예를 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의 검역 당국이 취한 조치다. 위와 같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 바로 ‘검역주권’에 대한 이야기다. ‘검역주권’은 주권 국가이자 소비자로서 갖는 중요한 권리다. 소비자로서 결함이 발견된 상품에 대해 반품과 리콜조치, 나아가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것은 상식이지 않은가? ‘검역주권’이라는 것은 (결함이 발견됐지만 그래도 안전하다면) 포기해도 된다거나 할 수 있는 성질이 결코 아니다. 다른 나라도 그러지 않고, 우리나라도 그러지 않았다. 단, 미국산 쇠고기만 제외하고 말이다.

내가 봤을 때 이번 미국 4번째 광우병 발병 사건은 앞에서 인용한 두 경우보다 훨씬 중대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광우병은 소든 인간이든 잠복기를 거쳐 발병하게 되면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멜라민이나 조류독감(AI)에 대해서도 저 정도의 검역주권을 행사한 정부라면, 광우병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젖소라서, 늙은 소라서, ‘비정형 광우병’이라서, 등등의 이유로 문제의 쇠고기가 식용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없으니 계속 수입해도 된다? 어불성설이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쇠고기 수출국(멕시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 대해서는, 그들 나라에서 광우병이 발병했을 때 젖소인지 아닌지, 비정형인지 아닌지 등을 따지지 않는다. 바로 ‘즉각 수입 중단 또는 검역 중단’ 조치를 취하게 돼 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4년 전 정부가 설명했던 여러 ‘팩트’들을 무색케 하고 있다. 먼저 정부는 4년 전 ‘관변 전문가’들을 앞세워 광우병이 2~3년 지나면 사라질 질병이라고 강조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음이 드러났다. 정부는 또 1997년 미국이 ‘강화된 사료 조치’를 취한 이후에는 광우병이 발병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번에 광우병이 발병한 소는 2001년에 태어난 소다.

또한 4년 전 정부의 핵심 주장은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르면 광우병 위험 통제국에서 생산된 쇠고기는 30개월 이상이어도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앞장서서 자신들의 말을 뒤집고 있다. ‘우리는 30개월 미만만 수입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것이다. 누구 덕택에 30개월 미만만 수입할 수 있게 됐는지는 고의적으로 빼먹으면서 말이다.

나는 정말 궁금하다. 왜 미국 쇠고기에 대해서만 우리 정부는 ‘검역주권’을 포기할까? 이렇게 중요한 것을 포기한다면, 그걸 댓가로 뭔가 얻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과연 무엇일까? 도대체 뚜렷하지가 않다. 이뿐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제시한 사실관계와 그것에 바탕한 의문점이 과연 편향적인가? 또는 국민에게 필요 없는 정보인가? 아무리 봐도 그렇지 않다.

그런데 왜 이런 취재와 보도를 우리가 가진 자랑스런 플랫폼, ‘MBC 뉴스데스크’에서 할 수 없게 되었는가? 왜 TV를 놔두고 유투브를 통해 해적방송처럼 제작물을 유포해야 하는가?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검역주권’은 물론이고 ‘언론주권’ 또한 그만큼 절실하다는 생각이 그래서 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